쓰레기를 버렸다.

by 이연

일요일,

오늘은 짜장면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뉴가 결정될 때까지 우리 모녀는 주중 5일 동안 꽤나 진지하다.

이제는 딸을 독립시켜야 할 것 같아 주말에 에게 음식을 한 가지씩 만들어 보게 해야겠다 생각했다.

이렇게 했더니 주말도 기다려지고 재미도 있다.


오늘 아침밥으로는 끓여 놓던 추어탕과 조기구이, 저녁엔 짜장면을 만들어 먹으면 식과 분식으로 맛과 일거리를 적절하게 즐길 수 있 된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저녁 메뉴가 소주안주로 적합한가이다. 소주 한 잔으로 을 부딪히면서 한 주간의 수고를 위로하고 우리 모녀의 단합을 도모하는데 딱 좋은 분위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고른 음식 장면은 소주 안주로 적합하지는 않지만 딸이 짜장면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한다. 고기를 많이 넣 짜장을 만들면 안주로 괜찮을 듯싶다.


아침밥을 맛있게 고 나자 분이 좋아진 우리는 집안 곳곳을 말끔히 청소하자고 했다

딸은 제 방 청소를 하고, 나는 나머지 공간을 정리하고 청소하고, 구석구석 버려야 할 것들을 찾아 내 분리수거 철저히 해 버.

단순히 내 집이 깨끗해졌다는 가벼움을 넘어 내 마음에 에너지가 새로 차오다.


이 기분을 몰아 운동까지 하기로 했다.

초록의 나뭇잎들이 춤추고 새들이 지저귀는 아름다운 호수가로 나갔다.

호수 주위를 한 바퀴 두 바퀴를 돌아들고 있을 때 갑자기 '너 안에 있는 감정 쓰레기는 안 버리냐?'라는 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그래, 감정 쓰레기! 그동안 왜 한 번도 생각 못했지?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가 꽤나 오래 았는데...

내 마음속는 그 누구보다도 감정 쓰레기가 켜켜이 많이도 쌓여 있을 텐데...

필요 없는 물건이 있으면 꼴을 못 봐서 애들것까지 내 맘대로 싹싹 버려서 엉엉 울까지 만든 내가 정작 버려야 할 것은 안 버리고 살고 있었다.

딸이, 학교에 다닐 때는 기숙사 생활을 했고 취업 후에는 자취생활 하느라 리는 오랫동안 떨어져 살다. 리고 함께 산지 5년이 되었다,

힘이 들어 마음에 안 든 게 있어도 싫은 소리 잘 못하는 착한 딸 덕분에 평화롭게 잘 살았었다. 그런데 요즈음 들어 내게 불쾌하게 대할 때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내가 딸을 많이 짜증 나게 했다. 히 옷 입는 것 가지고 지적질을 많이 했다. 듣기 싫어하는 딸에게 '너를 위해서야!'라고 하면서.

딸도 더 이상 참고 사는 게 한계에 도달했는지 옷에 대한 말을 하면 불끈 화를 다.

어제는 물컵에 보리차 끓인 물을 따라 주었는데 보리차 찌꺼기가 떠 있었던 모양이다. 불만스러운 말투로 중얼거리며 방으로 들어가는 딸을 쫓아 들어가 불만 있으면 말하라고 따져 물었다.

"물에 뭐가 떠 있는 게 싫어서~"라고 한다.

그래? 그런 것쯤이야~

바로 차 우리는 촘촘한 망을 꺼내 다시 보리를 넣어 새로 끓였다.

그런데 눈물이 난다.

'나 앞으로 어떻게 살지?'

딸의 표정이 밝지가 않다.

내가 뭘 물으면 겨우 대답하는 딸을 대할 때 내 마음이 슬졌고,

착한 딸이 엄마에게 그렇게 해놓고 마음 쓸까 봐 아무렇지도 않은 척할 때 슬다.

요 근래만 해도 이렇게 저렇게 서운한 감정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정신이 바짝 났다. 그런 게 다 뭐라고!

나와 함께 걷고 있고 나와 함께 즐겁게 짜장면을 만들어 소주 한 잔 짠하고 잔 부딪혀 줄 사람, 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을 사랑하는 람 내 딸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딸! 그동안 엄마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 미안했어!

리고 네가 내 딸이어서 고마워!라고.

딸이 대답한다. "엄마! 내가 더 미안해~ 엄마에게 내가 더 잘해야 하는데."

"아니야, 아니야 내가 미안해!"

딸이 대답한다. "엄마가 나 위해 그런 거잖아~"


아! 가볍다. 오늘 새가 되어 하늘을 날아가도 될 것 같다.

쿨하게 딸의 독립을 돕고, 나도 혼자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평소 청소에 진심이었던 내가 오늘 새롭게 중요한 한 가지 철학을 발견했다.

청소는 정신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왜냐하면 청소는 나 자신이 주체가 되어야 할 뿐 아니라, 청소 하면서 '깨끗해지는 것'을 볼 때 기분이 좋아지고, 버리고 난 뒤에 오는 후련함은 다시 나를 살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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