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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연 Oct 30. 2016

사물들

60년대 프랑스속 제롬과 실비와 지금의 한국을 살아가는 나


사물들

조르주 페렉.


스물을 갓 넘은 제롬과 실비가

사회에 진입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묘사한 내용.

60년대 프랑스 상을 압축적으로 서술한 이야기.


큰따옴표 안에 말한마디 조차 없이

오로지 묘사와 서술로 진행되는 책 이다.


처음 이 책을 서점에서 손에 들었을 때,
얇디 얇은 책의 두께에
어쩐지 사기 머뭇 거려졌다.
꽤 작은 내손에 가볍게 들려진 책을 보니
이 자리에 서서 단숨에 다 읽을 수 있을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채 몇장을 넘기지 못하고
이 책을 사기로 결정했다



이 책은 분명 60년대의 프랑스가 배경인데
오늘의 한국을 살아가는 내가 매우 공감하며
책에 줄을 긋고 있었다.
사실, 무척 외롭고 절망적이며 회한적이고
공허한 내용으로 가득찬 글이며
어쩐지 그 구절하나하나에 공감하는것 자체가
쓸쓸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시공간이 다른 곳에서 살아간 이들과
비슷한 감정과 생각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큰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 구절구절을 다시한번 곱씹고 싶었다.
그리고
혹시 모를 나처럼 느낄
누군가에게도 공유하고 싶다.






..이대로 영원히 취기어린 상태로
그 유혹에 자신들을 내맡기고 싶은
강렬한 욕망에 빠져들고는 했다.
하지만 욕망의 끝은 냉혹하게 꽉 막혀 있었다.
커져만 가는 불가능한 꿈은

상상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은 안락한 가운데 미를 추구하며 살고 싶었다.
그들은 목청을 높이며 감탄하곤 했는데
이것이 바로 그들이 부자가 아니라는

제일 확실한 증거였다.
몸에 배서 너무나 당연한 것,

몸의 행복에 따르기 마련인,
드러나지 않고 내재하는 진정한 즐거움이
그들에게 부족했다.
그들의 즐거움은 머리로만 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사치라 부르는 것은
지나칠 정도로 돈을 전제한 것이었다.
그들은 부의 기호에 쓰러질지경이었다.
그들은 삶을 사랑하기에 앞서 부를 사랑했다.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들의 생각은 분명했다.
자신들이 바라는 행복과 자유가 무엇인지 알았다.
하지만 그들은 어긋나 있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미 돌아설수도 없고, 끝도 알 수 없는 길에 들어서
끌려다닌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두려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대개는 조바심을 낼 뿐이었다.
자신들은 준비가 된 것 같았다.
자신들은 채비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삶을 기다렸다.
그들은 돈을 기다렸다.







 


제멋대로 흐르게 놔둔 시큰둥한 성향이
어디로 자신들을 이끌지 알지 못했다.
시간이 그들을 대신해 선택해 주었다.
물론, 그들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무엇인가에 온전히 자신을 바치고 싶었을 것이다.
흔히 사람들이 천직이라 부르는
내부의 강력한 이끌림을 느끼며,
그들을 뒤흔들 만한 야망,

충만케 해줄 열정을 느끼며
자신을 쏟아붓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란 말인가

그들은 단 하나만을 알았다.
더 잘살고 싶다,
이 욕망이 그들을 소진했다.









...조금이라도 생각할 여유가 있었다면 달랐겠지만
당시 그들은 생각이란 걸 하지 않고 살았기에,
어느정도 까지 자신들의 가치관이 바뀌었는지

의식하지 못했다.
외모 뿐 아니라 자신들을 둘러싼 모든것,
중요하게 여기던 것들이 얼마나 변해 버렸는지
그들의 전부가 되어버린 것들을
돌이켜 생각해 볼 수 있었다면,
진정 놀랐을 것이다.
모든것이 새로워졌다.
변해버린 감수성, 취향, 지위가
이전까지 신경쓰지 않던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게 했다





그들이 좇는길 새롭게 눈 뜬 가치, 전망, 욕망, 야망
이 모든 것이 종종 어쩌지 못할 만큼
공허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위태하거나 모호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바로 이것이 그들의 삶,
암울함 이상으로 알 수 없는 불안의 근원이었다.
무엇인가 입을 무한히 크게 벌리고 있는것 같았다.








자신에 대해, 세상, 온갖 것, 별 볼일 없는 것,
취미, 야망에 대해 떠들어댔다.
어느 도시나 있기 마련인 편안한 바를 찾아 내서
새벽 1시까지 위스키와 브랜디 진토닉을 앞에 두고
저버린 사랑, 욕망, 여행, 거부와 열정을

되풀이해서 말했다.
그러면서 서로의 레퍼토리가 똑같은 것에 대해
조금도 놀라워 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했다.







...하지만 <엑스프레스>만이

그들의 삶의 방식과 맞아떨어졌다.
그들은 이 잡지를 읽으면서
사실을 왜곡한다느니 변질시킨다느니 비난했지만,
자신들의 삶에서 매일 관심 있어 하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이 잡지에 퍼붓는 경멸 역시
자기 합리화의 기쁨을 맛보게 해주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격렬한 반응은 그 만큼 그 잡지에
예속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때로는 잡지의 형편없음에 대해

끝없는 경탄을 표하기도했다
하지만 그들은 엑스프레스를 읽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었고,
거기에 젖어 살았다.






온 종일 사방에서 슬로건, 포스터,

네온사인, 불밝힌 진열장이
그들의 머릿속에
자신들이 늘 사다리의 아래에 있다고
세뇌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잘 깨닫고 있었다
한술 더 떠, 가장 나쁜 몫이 아닌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어린시절기억은 엇비슷 했다.
그들이 앞으로 가게 될 길이 닮아 있는 것처럼.
집안 배경 없이 더디게 일어서는 것이나
자신들이 선택한 미래가 비슷한 것처럼.







뭐니 뭐니해도 그들의 가장 큰 즐거움은
함께 잊는 것, 기분전환하는 일이었다.
가끔 저녁 시간을 온통 술을 마시며

보내기도 했는데...
자기가 누리고 싶은 삶에 대해,

앞으로 쓸 책에 대해, 해보고 싶은 일에 대해,

보았거나 볼 영화에 대해, 인류의 미래에 대해,

과거의 휴가에 대해, 짧은 여행에 대해

끝도 없이 떠들어댔다.
가끔 집단 망상에 빠져

거기서 헤어나오기는 커녕
암묵적 공모로 끊임 없이

허우적 거리고는 했다.
그러다 결국 현실감각을 완전히 잃고 마는 것이다.






....강렬한 기쁨이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것들을 고양시키는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조화로운 상태가 무너지는 것은

순간이었다.
사소한 불협화음, 대수롭지 않은 주저의 순간들
무례한 태도만으로도
그들의 행복은 무너져 내렸다.
원래의 상태로 돌아갔다.
잠깐의 행복한 순간이 사라지면서
그들은 더 위험하고 더 불확실해 보이는
일상과 삶으로 내동댕이 쳐졌다.




또 어느 여름 밤,

낯선거리를 오랫 동안 쏘다녔다.
하늘 높이 걸린 보름달이

만물에 소리없이 빛을 던지고 있었다.
인적이 끊긴 길게 뻗은 큰길로
그들이 동시에 내딛는 발걸음 소리가
널리 퍼져 나갔다.
...
그럴때면 자신들이 세상의 주인이 된것 같았다.
마치 굉장한 비밀이나 어마어마한 힘을
소유하기 라도 한 것 처럼,
알 수 없는 흥분을 느꼈다.






사람들은 흔히 아직 서른이 되지 않은

청년들에 대해서
독립성과 자기 방식대로 일할 줄 아는

융통성과 열린사고,
다양한 경험 다면성을 높이 사다가도,
일단 서른 고개를 넘어서면
미래의 동반자들에게 확실한 안정성,
시간엄수라든가 진지한태도
자기 통제와 같은 것을
증명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이었다.






덫에 걸린 쥐처럼 사방이 막힌듯했다.
그들은 단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전히 많은 기회가 있으리라 믿었다.
정해진 근무시간,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을
하나의 족쇄처럼 여기고,
이를 지옥이라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 하지만 아무일도 하지 않으며 보내는 날들,
게으름 피우며 눈뜨는 아침
소설책을 쌓아 놓고 뒹구는 아침나절,
한 밤중에 센 강변을 따라 걷는 산책,
문득 가슴 벅차게 차오르는
자유의 느낌들을 사랑했다.
 
물론 그들도 그들이 갖는 자유의 기분이
환상에 불과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그러함을 아는 것은
아무 소용 없었다.
그것이 그들의 처지였다.






오늘날 현대사회는
사람들이 점점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게 되어가고 있다.
누구나 부를 꿈꾸고 부자가 될 수 있는 시대이다.
여기서 불행이 시작된다.






그들은 삶을 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은 둘러싼 사방에서
삶을 누리는 것과

소유하는 것을 혼동했다.
그들은 시간의 여유를 갖고 싶고,
세상과 거리를 두고 싶어 했지만
그들에게 무엇하나 가져다 주지 않는
세월은 마냥 흐르기만 했다.






...자신들이 가장 불행한 것은 아니라고 자위했다.
아마 옳은 말일 것이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타인의 불행을 지워버림으로써
본인의 불행을 확대해 보여주기 마련이다.
...가난보다 더 끔찍한 것은

궁색함, 옹졸함, 얄팍함이었다.
일어날것 같지 않은 기적이나
사상누각에 세운 어리석은 꿈외에
다른 출구가 없어 보였다.
미래 없는 꽉막힌 삶으로
암울한 세계를 살아 가고 있었다.

질식할 것 같았다.
침몰하는 느낌이었다.
 







사회의 서열관계를 증오하기로 작정했다.
기적으로라도 해결책은
세상이나 역사로부터 나와야한다고 생각했다.
롤러코스터 같은 삶이 계속 되었다.
이것이 그들의 기질에 맞는 것이기도 했다.
불완전한 세계에서 그들의 삶이
가장 불완전한 것은 아니라고 쉽게 넘겨버렸다.
근근히 살아갔다.

...그래도 인생은 살만하다고 생각했다.






'미래', '앞을 내다 볼 수 없음' 이
자신과 자신들 세대를 가장 잘

정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전 세대는 스스로에 대해서나 세계에 대해
분명한 가치관을 지녔으리라 짐작했다.
...당시에 맞닥뜨려야만 했을 문제들이

 더 분명해 보였다.
자신들은 함정이 놓인 문제에 둘러싸였을 뿐이다.






가장 비관적인 전망들,
가령 결코 궁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건 아닌가,
진창에서 허우적대다 끝나는 건 아닌가,
궁색한 삶을 벗어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눈앞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매일 그들을 위협하는 사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어떤 때는 뭐든 할 각오가 되어 있다가도
그 다음 날이면 삶이 위태롭고

미래가 암울해 보였다.
탈출과 전원생활을 꿈꿨다.
여유 있는 유럼선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자신들이 하는 일이 중요하고, 필요하며,
둘도 없이 소중한 일일이라는 것을
증명할 만한 무엇인가를 원했다.
두려움에 찬 노력이
의미 있고, 자신들이 필요로하던 그 무엇이기를,
자기자신을 알게해주며, 변화를 가져다 주고
살게끔 해주는 무엇이기를 원했다.





어떤 때는 자신들이 인생을

채 시작하지도 않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그들의 삶이 위태롭고

덧 없이 흐르는 것 같았다.
마치 채워지지 않은 욕망, 불완전한 기쁨,

잃어버린 시간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기다림과 궁색함 편협함이
자신들을 마모시켜 무력하게 만들었다고 느꼈다.






그냥 흘러가게 놔두면 될일이었다.
삶이 그들을 달래줄 것이다.
몇 달이고 몇 년이고
변화도 없고 그들을 구속하는 법도 없이
인생은 계속될 것이다.
거의 미미한 변화만 있을 뿐,
어떤 동요 비극적인 사건도 흔들어 놓지 못할
영원한 감미로움을 맛 볼 것이다.
그러다가도 어떤 때는


더 이상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들은 속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조롱하는 세상의
충실하고 고분고분한 소시민이었다.
기껏해야 부스러기밖에 얻지 못할 과자에
완전히 빠져 있는 꼴이었다.





하나 둘씩 차례로

거의 모든 친구들이 항복해갔다.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던 삶에서

안정을 찾아 떠났다.
우린이제 더이상 이렇게 못살겠어. 라고 말했다.
이렇게 라는 말은
모호한 동시에 계획성 없는 삶,
너무짧은 밤, 얼간이, 낡아빠진 재킷, 지겨운일,
지하철과 같은 말들을 담고 있는 것 이기도 했다.
 
우정이란서로 도와주고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을 때만 가능한 것 같았다.





광기에 사로잡혀 살아갈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토록 많은 것을 약속하면서
실은 아무것도 주지않는

이 세계에서의 긴장은 너무 심했다.
그들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다.
어느날 자신들에게

피난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새로운 출발에 대한 생각의 싹은

뻗어나가는 법이 없었다.
그들은 실제로 가능한지 혹은 불가능한지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일을 그만두고 모든 것에서 벗어나

모험을 떠나는 것을 꿈꿨다

원점에서 다시 출발하는 것,

전혀 새로운 토대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을

상상했다.
단절과 이별을 꿈꿨다.





 모든 것이 불투명했다.
그들이 삼은 팽팽한 줄위에서
끊임없이 춤춰야하는 꼴에 지나지 않았고,
미래는 꽉 막혀 있었다.
극심한 공허감 기댈 곳도 없으면서
끝을 모르는 비참한 욕망에 시달렸다.
그들은 소진된 느낌이었다.
은둔하기 위해, 잊기 위해,

자신들을 달래기 위해 떠났다.
 
그들의 삶은 마치 고요한 권태처럼

아주 길어진 습관 같았다.
아무것도 없진 않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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