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위해 요리하는 요리사처럼 일할 수 있다면

계획 없이 퇴사한 직장인의 일기

by 예슬

'가장 아름다운 운명,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놀라운 행운은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


내 사무실 책상에 늘 붙어있었던 문구다. 인간은 삶의 대부분을 일하며 보내야 하기에, 내가 좋아해서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을 할 수만 있다면 그 대부분의 시간 역시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나에게는 무슨 일을 하느냐가 중요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따라 곧 나의 행복이 결정되는 것 같았다. 일에서 의미를 찾기보단, 어떤 회사를 다니는지와 어떤 종류의 일을 하는지에 따라 삶의 좋고 나쁨을 판단했다. A회사를 다닐 때의 나는 불행했고 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았으며, C일을 할 때가 B일을 할 때보다 더 괜찮았다는 식으로 말이다.


어쨌건 10여 년간 일을 해오면서 천직까진 아니어도 나름 열정을 쏟으며 일해왔는데도 일하는 것이 즐겁다기 보단 여전히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가 고민인 것을 보니, 열정의 유무에 따라 일의 가치를 판단했던 나의 가치관을 돌아보게 되었다.

가시미 이치로의 《일과 인생》이란 책에서는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낄 때, 자신을 좋아할 수 있고 일도 즐겁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내가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에게 공헌할 수 있는 일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떤 일을 하느냐보다는 그 일에서 공헌감을 느낄 수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한마디로 공헌감을 느끼지 못하는 일은 의미가 없다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내 안에 좋은 것이 동요해야만 그 일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누군가를 위한다는 마음은 조금 낯설었다. 회사를 다닐 때는 일이 재밌는지 여부를 생각했고, 퇴사한 후에는 스스로 성과를 내야 했기에 돈이 벌려야만 뿌듯함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유독 일에 관해서는 나 자신에 대한 자책을 자주 했다. 왜 나는 아직까지 무슨 일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는지, 왜 만족할만한 경제적인 성과는 못 내는지 스스로 낮게 보며 위축되곤 했다. 내가 하는 일은 분명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인데도 나는 늘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얼마나 잘하고 있는가'만을 만족도의 기준으로 삼고 일의 가치를 평가했다.


얼마 전 시청 한 '흑백요리사 2'라는 TV프로그램에서 최종 미션으로 '나를 위한 요리'를 하라는 과제가 주어졌는데, 요리사들은 매우 당황해한다. 그들은 평생 일하면서 남을 위한 요리만 해왔지, 자신을 위한 요리는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였다. '내가 만든 음식을 남들이 맛있게 먹어주는가.' 그것 말곤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요리사는 가장 순수한 직업이라고 한다. 나도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꿈은 지금과는 달리, 위대한 과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과학이 재밌기도 하였지만, 과학 기술을 개발해 세상에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나이가 들면서 순수함은 잃어가고, 단순히 돈을 잘 버는 일이 하고 싶어 지면서 남을 위한다는 공헌감이라는 단어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


일을 시작한 이후로 일은 내게 늘 고민거리였다. 일과 사투를 벌이기도 하고, 일 때문에 웃고 울기도 했다. 이제는 나를 더 좋아하고 인생을 더 즐겁게 살기 위해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자주 떠올려보려고 한다. 어쩌면 일은 단순히 생산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는 행위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책에서 말하듯, 일한다는 것은 몽상하는 것이고, 글을 쓰는 것이고, 공원을 산책하고, 독서에 깊이 잠기는 일이기도 하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더라도 내가 보내는 그 시간들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든다면, 결국 나는 누군가 함께할 때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을 찾는 것보다, 괜찮은 사람으로 누군가의 삶에 함께할 수 있는 것.


어쩌면 내가 오래도록 고민하고 있던 답은

'어떤 일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