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은 날들의 기록이 괜찮은 이유

계획 없이 퇴사한 직장인의 일기

by 예슬

글을 쓸 때면 나는 종종, 예전에 적어둔 날 것의 일기와 메모를 다시 읽으며 영감을 얻곤 한다. 내가 쓴 글이지만 몇 번이고 다시 찾아 읽게 되는 기록들이 있는데, 이상하게도 대부분은 '최악이었던 날'의 기록이다.


회사에서 일하며 울화통이 터졌던 날,

퇴사를 결심하며 엉엉 울었던 날,

돈 때문에 힘들었던 날,

남편과 크게 싸웠던 날,

매장을 운영하며 비참함을 느꼈던 순간들까지...


처절하고, 찌질하고, 불쌍한 기록들을 읽다 보면 드라마 한 편을 보는 것처럼 재미있기도 하고, 눈물이 날 만큼 짠하기도 하다. 멋진 경험도, 대단한 교훈도 없지만 글 속 주인공인 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으면 연민이 조금씩 애정으로 변해간다.

항상 괜찮은 척, 밝은 척하지만 사실 나는 때때로 어둡고, 부정적이고 나약한 사람임을 기록을 통해 솔직하게 마주 하게 되었다. 이런 암흑 같은 나의 기록들을 엮어 리추얼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플랫폼 '밑미'의 '오프더레코드' 전시에 제출했던 적이 있다. 읽는 사람에게 우울함이 전염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많은 분들이 자신과 비슷하다며 공감과 응원의 방명록을 남겨주셨다. 글이 인상 깊었다며 기회가 된다면 나를 만나보고 싶다는 분도 계셨다. 삶을 열심히 사는 사람의 글에서 느껴지는 에너지는 빛이 난다고 이야기해 주신 분도 계셨다.


그때 깨달았던 것 같다.

실패의 잔해는 반짝인다는 것을.

그리고 내 글이 성공 이야기가 아니라 실패이야기였기에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닿을 수 있었다는 것을.


퍼블리의 창업자 ‘박소령’님의 『실패를 통과하는 일』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스타트업 이야기라 나와 큰 연관은 없었지만, 많은 부분을 공감하며 몰입해서 읽었다. 소령님께서 겪은 고생은 분명 크기나 결은 나와 다르겠지만, 일의 무게에 짓눌려 심장이 조여 오고 잠이 오지 않을 만큼 두렵다는 감정은 나도 최근에 겪고 있기에 글이 더 생생하게 와닿았다.


책을 덮고 나니 '박소령'이라는 분을 지극히 개인적이고 인간적으로 좋아하게 되었는데, 만약 이 책이 대단하고 거창한 성공담이었다면, 그저 경험과 통찰력에 감탄하고 끝났을 것이다. 사람을 진정으로 좋아하게 만들고 진한 여운을 남기는 것은 결국 성공했는지 결과가 아닌, 얼마나 최선을 다해 삶을 통과해 왔는지 과정에 대한 것이었다.


최근 남편과 저녁식사를 하며, 남편은 내가 퇴사 이후 이것저것 시도하며 겪는 어려운 일들로 미안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고 했다. (둘 다 퇴사하여 불안정한 상황이므로). 나는 이 또한 내가 선택한 것이니 어려움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고, 덕분에 고통스러운 과정을 기록할 수 있었는데 이 기록물이 꽤나 재밌으니 오히려 잘된 것 같다고 대답했다.

지금도 여전히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잘 되지 않을까 두렵고, 이렇게 고생하고 많은 시간을 들였는데 결과가 좋지 않을까 걱정된다. 22년에 적어둔 메모를 다시 보니, '실패할 용기란 내가 고통스러울 각오를 하는 용기'라고 기록되어 있다. 아마 앞으로도 고통스러운 순간들은 계속될 것이고 생각만큼 잘 되지 않는 일들도 많은 것이다. 때로는 엉망진창이고 진흙탕 같은 경험도 하게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멀어지는 인연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얼굴에 진흙이 튀었다고 함께 깔깔 웃을 수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며, 언젠가는 과거의 고생담을 웃으며 꺼낼 수 있는 날도 올 것이다. 그래서 나는, 흙탕물이 튀더라도 나의 길을 계속 걸어가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