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무하는 잡지사는 독자들이 응모한 글을 중심으로 월간지 지면을 꾸린다. 그래서 달마다 하는 일이 있는데, 바로 우체국에서 응모 우편을 수령하는 일이다.
회사에 막 들어온 내게도 처음으로 우편을 수령하러 갈 일이 생겼다. 편집장님이 말했다. “응모량이 많을 수도 있으니까 무거우면 들 수 있을 만큼만 들고 오세요!”
어림없는 소리. 편집부 팀원 여섯 명 중 남자는 나 하나였다. “무거워서 도무지 전부 싣고 올 수 없었어요!” 같은 모자란 소리는 할 생각이 없었다. 편집부에 남자가 왜 필요한지 오늘 알려주리라. 우체국에 무엇이 얼마나 있든 모조리 들고 오리라.
바퀴가 달린 바구니 모양 끌차를 이끌고 회사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탔다. 우체국에 도착해 회사 사서함으로 온 모든 우편을 끌차에 실었다. 양이 꽤 됐지만 못 가져갈 정도는 아니었다. 1층 창구에서는 몇몇 독자에게 보낼 우편을 발송하고 영수증도 잊지 않고 챙겼다. 기름칠한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모든 일이 매끄럽게 흘렀다.
개운한 기분으로 우체국을 나왔다. 끌차를 번쩍 들어 버스에 오르니 애매한 시간이라 그런지 승객이 없었다. 버스 뒤쪽 좌석에 앉아 나른한 오후를 즐겼다.
그렇게 멍하니 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창밖에는 낯선 풍경이 흐르고 있었다. 이건 회사 방향이 아닌데. 서둘러 지도 앱을 켜 보니 버스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지?
알고 보니 내가 탄 7737번 버스는 번호가 같아도 전용 차선과 인도로 오는 버스에 따라 노선이 달랐던 것이다.
그렇게 연세대학교 앞에서 다시 버스를 탔다. 한가하던 버스는 금세 학생들로 꽉 찼다. 대학생들 틈에 끼어 끌차를 엉거주춤 잡고(바퀴가 달려 있어서 정말 꽉 잡아야 했다) 졸지에 통학 러쉬를 경험했다. 두 시간 만에 회사에 도착하니 등에 땀이 줄줄 흘렀다.
같은 번호지만 노선이 다른 버스⋯ 이건 흡사 사회악 아닐까. ‘번호가 같으면 방향도 같다.’ 이 자명한 논리를 사회는 왜 지키지 않는 것인가. 노선이 다르면 번호 역시 다르게 구분하면 안 되는 걸까.
자고로 대중교통은 몇 호선을 타고 어디에 내려서 몇 번 버스로 갈아타면 집에 도착한다는 식으로, 번호만 알고 있으면 생각 없이 타고 내려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번호라도 인도에서 타는 버스는 홍대입구로 가지만 전용 차선에서 타는 버스는 연세대학교로 간다거나, 같은 호선이라도 어떤 열차는 인천으로 가고 또 어떤 열차는 천안으로 가면 못쓴다는 말이다.
내가 국토부장관이 된다면 바로 이 문제부터 해결할 텐데. 우리나라에서 국토부장관으로 일한 사람 중 아직 길치는 없나 보다.
자리에 앉아 땀을 식히고 난 뒤에 편집부 동기 두 명에게 이 사실을 단단히 일러뒀다. 우체국에서 회사로 돌아올 때는 반드시 인도로 오는 7737번 버스를 타야 한다고.
나 못지않은 길치인 그들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국토부장관이 된다면 바로 이 문제부터 해결하리라 믿는다.
이미지 출처: 서울교통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