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일기를 쓰고 있다.
꿈 일기는 말 그대로 꿈의 내용을 적은 일기이다. 잠에서 깬 후 꿈이 머릿속에서 휘발되기 전에 꿈의 내용을 적으면 일상의 아이디어를 붙잡는데 효과적이라는 글을 읽고(게리 베이너 척의 자기계발서였나) 꿈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존 레논이 꿈에서 이름 모를 노래를 듣고 잠에서 깨자마자 멜로디를 기록했는데 그 곡이 <Yesterday>가 되었다는 전설적인 일화를 생각하면 꿈 일기에 대한 효용성은 그럴듯해 보인다. 그런 일화를 보며 다짐했다. 나도 꿈 일기로 팔딱팔딱 살아 있는 신선한 아이디어를 캐치해야지.
아무튼 그래서 요즘 꿈 일기를 쓰고 있다. 마침 꿈도 자주 꾼다. 꿈을 자주 꾸는 편은 아니었던 내게 오랜만에 찾아온 ‘꿈 성수기’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최근 꿈 일기에 기록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7월 6일 목요일
좁은 집에서 끊임없이 바퀴벌레를 잡는 꿈을 꿨다. 주방 싱크대에도, 침대 위에도, 환풍구 안에도 바퀴벌레가 있었다. 바퀴벌레가 많은 것에 비해 집은 사방이 윤이 날 정도로 깨끗했다. 환풍구에 몸을 욱여넣고 바퀴벌레를 잡을 때에도 환풍구 안은 방금 닦은 것처럼 반질반질 윤이 났다. 그 안에서 바퀴벌레 한 마리가 더듬이를 나팔나팔 움직이고 있었다.
7월 27일 목요일
물에 잠긴 선착장에서 표를 끊고 유조선 만한 배에 헤엄 쳐서 올라 사다리를 타고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꿈을 꿨다. 선착장에서부터 배에 오를 때까지 나를 안내한 낯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여유로운 모습을 따라 물속에서의 두려움을 물리치고 배에 오를 수 있었다. 배에서 안락한 객실을 찾아 부지런히 움직였지만, 정작 꿈의 막바지에 도착한 곳은 파이프라인이 벽을 따라 얽혀 있는 거대한 기관실이었다.
8월 11일 금요일
화창한 날 도쿄역에 도착해서 역 안에 있는 식당들의 음식을 맛보는 꿈을 꿨다. 벚꽃이 만개한 풍경을 보면서 당고와 타코야끼 같은 음식을 마음껏 즐겼다. 어렸을 적 수학여행 가기 전날 밤의 설레는 기분을 꿈속에서 느꼈다. 도쿄역에는 생전 가본 적이 없는데 어쩌다 이런 꿈을 꾸게 되었는지는 의문이다.
8월 20일 일요일
늦은 밤에 친척들과 이름 모를 구식 아파트에서 반갑게 재회하는 꿈을 꿨다. 다들 많이 반가웠는지 아파트 복도에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왁자지껄 떠들었지만 늦은 밤에도 불구하고 아파트에는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모양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무얼 하려고 모였던 걸까.
8월 23일 수요일
납골당처럼 생긴 오래된 철물점에서 곽준빈과 일하는 꿈을 꿨다(곽튜브의 그 곽준빈 맞다). 철물점임에도 불구하고 가게 안에는 공구보다 봉지과자가 더 많이 진열되어 있었다. 곽준빈과 함께 매대에 쌓인 과자를 부지런히 정리했다. 어째서 나는 그 가게를 과자 가게가 아닌 철물점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가게의 전체적인 인상이 철물점의 그것과 비슷했던 모양이다.
꿈을 기록하며 생각난 사람은 프로이트였다. <꿈의 해석>을 쓴 그 프로이트. 그는 어떻게 꿈의 기록으로 인간의 정신세계를 학문의 영역에서 탐구할 수 있었을까. 내 꿈의 기록은 그저 '무의식의 난장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꿈이 신기한 점은, 자는 중에 일어나는 상상일 뿐이지만 육체와 정신이 적극적으로 반응한다는 점이다. 기괴한 꿈을 꾸고 눈을 뜨면 몸에 힘이 없고 정신이 멍하다. 바퀴벌레를 잡는 꿈을 꾸다가 깼을 때는 그대로 눈을 감고 다시 잠에 들고 싶어진다. 반면 기분 좋은 꿈을 꾸고 일어나면 머리가 맑고 몸이 개운하다. 하루를 산뜻하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꿈 일기를 보면 기억 속에서 꿈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꿈 일기가 아니었다면 진작 휘발되었을 기억들이 꿈의 기록을 통해 마음속에 알알이 박힌다. 이런 기록을 통해 팔딱팔딱 살아 있는 신선한 아이디어가 오는 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꿈 일기를 쓰고부터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오늘은 어떤 꿈을 꿀 지 기대하는 버릇이 생겼다. 나의 꿈 일기에는 또 어떤 내용이 적히게 될까. 환풍구를 기어 다니거나 물속을 헤엄치는 꿈은 괜찮지만 바퀴벌레를 잡는 꿈은 부디 그만 꾸었으면 한다. 나팔나팔 움직이는 더듬이는 이제 그만⋯!
이미지 출처: Mo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