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피는 못 속인다

가족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질 용기

by 앵날



사람의 성격은 타고난 게 삼분의 일, 세 살 이전에 부모님 품에서 형성된 게 삼분의 일, 후천적으로 형성된 게 삼분의 일이라고 한다. 내 경험을 비추어 보면 이 말은 꽤 신뢰할 만한 것 같다. 비록 엄마와 오랜 기간을 떨어져 살았지만 지금 나의 성격 중 상당 부분은 어릴 때 엄마에게 받은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엄마는 어렸을 적 나의 장난기를 다정하게 받아주다가도 이건 아니다 싶으면 즉시 불호령을 내리는 '투 페이스' 육아법을 운용했다. '아수라 백작' 육아법, 또는 '냉정과 열정 사이' 육아법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엄마의 눈앞에서는 밥알이 그릇에 한 톨이라도 남아 있으면 밥상에서 일어날 수 없었고, 어른에게 인사를 빼먹는 모습을 보였다가는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냐는 야단이 곧바로 날아왔다.


나는 편의점에서 오랫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인사를 하지 않고 나가는 손님을 볼 때면 어딘가 위화감을 느끼고는 자연스레 엄마를 떠올렸다. 사람들에게 바르게 인사하라는 엄마의 불호령을 떠올리면서, 어렸을 때 받은 가정교육은 삶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엄마의 성격을 요약하면 감정적즉흥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 날씨 좋다, 고기 먹으러 가자! 하고 수요일 저녁에 갑자기 연락을 하는 식이다. 엄마는 MBTI 검사를 해본 적이 없지만 예상하건대 ENFP와 INFP 사이 어디쯤인 것 같다. 언젠가 엄마의 MBTI가 궁금해서 검사를 슬며시 권해봤는데, 엄마는 몇몇 문항을 반대로 찍더니 못해먹겠다면서 중간에 그만둬버렸다. 이마저도 ~NFP스러워서 새삼 속으로 감탄했다.


INFP끼리 대화를 나누면 서로 동족이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아본다. 자신과 비슷한 부류를 감지하는 더듬이가 특히 예민하게 발달한 집단이 INFP이기 때문이다. 논리보다는 감정을, 경험보다는 직관을 품은 성격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나 역시 다섯 번의 검사에서 모두 INFP를 벗어나지 못한 ‘본투비 INFP’다. 생각난 김에 오랜만에 MBTI 검사를 해보니 역시나 이번에도 결과는 INFP. 직관형 83%, 여행갈 때 계획 따위는 없는 열정적인 중재자.


생각해보니 아빠의 성격도 나와 비슷한 점이 많다. 아빠 역시 계획적이기보다는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편이고, 특별한 경우이긴 하지만 술을 마실 때만큼은 감정적으로 변한다. 발이 넓고 나가 놀기 좋아하는 성격을 보면 아빠는 ENFP에 가까운 것 같다. 동생 말로는 자신은 한결같이 INFP로 나온다고 하는데, 이쯤 되면 가족력이라는 단어가 무서워질 정도다.




가족이란 뭘까. 태어날 때 가장 먼저 엮이는 집단이라고 하면 너무 삭막한 표현일까. 코로나 때문에 참여한지는 꽤 됐지만 예전에는 주기적으로 독서모임을 나갔었다. 거기서 <완벽한 아이>라는 책을 놓고 여덟 명의 멤버들과 가족을 주제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완벽한 아이>는 광신도였던 아버지의 잘못된 신념으로 인해 15년 동안 집에만 갇혀 지내다가 성인이 되어 세상으로 탈출한 프랑스 출신 심리치료사, 모드 쥘리앵의 에세이다.


1957년, 모드는 프랑스 릴과 됭케르크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어느 한적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아버지와 교육학을 전공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녀는 겉으로 보기에는 이상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란 것으로 보이지만, 사이비 성향의 사교 단체인 프리메이슨의 열성적인 일원이었던 아버지의 잘못된 신념으로 인해 모드는 세 살이 되던 해에 철책으로 둘러싸인 집에 감금되었다.


모드의 유년기는 기이한 훈육 방식과 그로 인한 공포로 얼룩진 시간이었다. 모드의 아버지는 자신의 딸을 초인으로 만드는 것이 신성한 의무라고 믿는 광신도였고,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에 대비해 생존 기술을 익혀야 한다는 믿음을 가진 강박적 인간이었다.


인간으로서의 약점을 제거해야 한다는 이유로 모드는 어린 시절부터 말도 안 되는 훈련을 강요받았다. 쥐들이 들끓는 깜깜한 지하실에 갇혀서 명상을 하거나, 전기 울타리를 움직이지 않고 몇 분 동안 잡고 있기도 했다. 독한 술을 마시며 알코올을 견디는 훈련도 받았다. 이 모든 게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 나이에 일어났다.


내가 놀란 점은, 이 책을 주제로 독서모임에 참여한 멤버 중에 가족에게 큰 상처를 받은 사람이 대다수였다는 점이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눴던 사람들 중 큰 상처를 고백한 사람들의 근본적인 원인이 대부분 가족에게 있었다.


아버지가 왼손잡이인 자신에게 강제로 오른손만 사용하게 해서 결국 양손잡이가 되었다는 군대 후임, 아버지가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을 인정하지 않아서 되도록 집에 연락을 하지 않는다는 대학원 선배, 어머니에게 어릴 때 받은 정신적육체적 학대를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한 독서모임 멤버까지⋯ 이들 모두 가족에게 받은 아픔을 타인에게 용기를 내어 고백한 사람들이다. 그런 아픔을 밖으로 꺼내지 않고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는 사람까지 포함하면 내가 만난 사람들 중 가족으로 인해 고통을 겪은 사람은 얼마나 많을까.




결국 피는 못 속이는 법이다. 외모로, 성격으로, 서류상으로 우리는 가족과 끊임없이 연결된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과의 관계가 너무도 지긋지긋해서 연을 끊기로 다짐한 순간에도 마음속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저항감이 일어난다. 나를 낳았다는 이유로, 나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나와 오랜 시간을 부대꼈다는 이유로 우리는 그 굴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다가도 거스를 수 없는 불가항력을 느끼며 다시 굴레 안으로 떨어진다.


그럼에도 나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족이라는 굴레를 끊고자 하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다. 그것 또한 삶이라는 길 위에서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방향일 뿐이다. 그런 선택을 포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족의 의미는 가족 구성원 개개인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할 때 단단해지는 법이다. 만약 자신이 가족에게 유대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도리어 가족으로 인해 큰 고통을 겪고 있다면, 가족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지고 세상에 두발로 서는 것은 포기가 아닌 용기가 되는 거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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