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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웁살라: 카페와 펍

웁살라 대학생의 하루

by Terry

유서 깊은 웁살라 대학에는 13개의 네이션이 있다. 초기에는 스웨덴 각 지역에서 온 학생들의 고향 모임의 역할을 하였으나 오늘날에는 출신지에 상관없이 학생들이 자신과 잘 맞는 성격의 네이션에 자유롭게 가입할 수 있다. 네이션 내에서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카페나 펍 등을 운영하고, 행사를 주최하는데 당연히 웁살라 대학교 학생이 아니라면 참여할 수 없다. 하지만 나에겐 승원이라는 비장의 열쇠가 있다.


도시 한가운데 설치된 공동묘지를 지나 승원이의 놀랜즈 네이션에서 운영하는 카페에서 집에서 싸온 점심을 먹으며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콘크리트 터널 뒤로 형형색색의 색종이들이 반짝이는 곳이 네이션 카페란다. 그동안 모은 쿠폰으로 사용해 승원이가 커피를 사주는 동안 카페 안을 가득 메운 학생들을 구경한다. 낡은 공기와 오래된 가구로 미루어보아 이곳의 시간은 꽤 흘러갔지만 그곳에 앉아있는 학생들은 계속해서 청춘이다. 커피가 무한 리필되는 이곳에서 인생을 고민하고 싶지만 이내 밖으로 나선다.


피카(Fika)라는 스웨덴 문화를 전해 들은 그 날부터 카페에 갈 때면 굳이 피카를 들먹이곤 했었는데. 이러한 증상은 스웨덴 여행이 가까워질수록 심해졌다. 하지만 바쁜 일정에 아직 피카 한 번 하지 못했고, 마지막 날이 다가와버렸다. 어느 카페를 데려갈지 신중히 고민하는 승원을 보니 어디라도 괜찮을 거 같다. 도착한 카페는 형편이 넉넉한 집들의 오래된 테이블과 의자들만 빼내어 모아둔 곳이었다. 공주가 좋아해서 이름 붙여진 연두색 프린세스 롤, 부다페스트 롤,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 링곤베리 파이를 주문했다. 7종류의 비스킷이 있는 정식 피카상은 아니지만 견줄만하다. 색, 모양, 식감이 다른 디저트를 통해 끊임없이 당을 섭취하니 정신이 선명해진다.


(6) 스톡홀름


스톡홀름에서 사 온 옷가지들로 반쯤 빈 캐리어를 꽉 채워 돌아가겠다던 나의 우스갯소리는 현실이 되었다. 짐을 내려놓자마자 웬만하면 이케아에서 온 것들로 채워진 주방에서 마지막 저녁을 해 먹는다. 요리 중간에 플록스타 스크림 시간인 열 시가 되자 승원이는 잠시 단전에 힘을 모아 창밖으로 소리를 내지르고는 다시 묵묵히 자기 일을 한다. 간단히 먹고 MAX햄버거를 먹으려 했는데 손도, 위도 너무 큰 나머지 어렵게 되었다.


배불리 먹고 방에 들어와 오늘 산 옷을 이것저것 입어본다. 내가 생각했던 내 모습과 달리 카메라에는 도도하게 발끝을 세운 복덕방 아저씨가 담겨있다. 애써 각도의 문제라고 위안 삼으며 황급히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다. 다행히 마지막에는 승원이에게 헤이↗헤이↘만 잘하면 스웨덴 사람인 줄 알 거라는 최고의 찬사를 들을 수 있었다.


마지막 목적지는 V-Dala 네이션에서 운영하는 펍. 이곳은 네이션 카드가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 승원의 친구에게 빌린 카드로 입장하는터라 내심 긴장이 됐지만 역시나 고맙게도 동양인 얼굴을 전혀 구분하지 못하는 문지기다.


위층으로 올라가니 벽에 초상화들이 2열로 나란히 걸려있는 홀이 나타난다. 파티 때는 초상화들의 감시를 받으며 학생들이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든단다. 바텐더에게 이름부터 상큼한 블루베리 샷을 주문했다. 오늘 일하는 학생은 한낱 임시 알바생 신분이지만 그 배포만큼은 사장으로 안면이 있는 캘리에게 두 잔을 내어주며 그냥 가라고 한다. 그녀의 인맥에 감탄하며 루프탑으로 올라와 샷을 털어 넣었다.


입맛을 다시며 맥주를 주문하러 갔다.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곳이라 그런지 아직 미숙한 구석이 있었다. 네트워크 이상으로 카드 결제가 안 되는 것을 대뜸 오늘 쇼핑했냐는 질문을 던지며 대책 없이 쇼핑을 해댄 사람으로 몰아갔고, 그럴수록 우리도, 맥주도 점점 김이 샌다.


맥주를 마시며 둘러보니 옆 테이블에는 음악을 안주 삼아 혼자 고독하게 술은 마시는 청년이 있다. 알고 보니 스웨덴 일반 마트에서는 3.5도 이상의 술을 팔지 않고. 주류 전문점에서만 술을 살 수 있는데 이마저도 20시 이후에는 구할 수 없기에 밤에 술을 마시고 싶을 때 달리 갈 곳이 없다고 한다. 도란도란 얘기하다 보니 하늘이 점차 밝아지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새벽바람을 맞고 들어와 피곤하지만 오늘이 가는 게 너무나 아쉬워 쉽게 잠들지 못한다. 새벽 6시 30분. 정든 플록스타를 떠나 공항으로 향했다. 아침잠이 많은 그녀는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PB&J와 납작 복숭아를 가방에 넣어줬다.


5월에 스웨터에 가죽잠바를 입고 독일 공항을 걸어가는 나는 매우 이질적이다. 애써 외면하며 도착한 루이젠 플랏츠에서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고 나서야 정말 스웨덴을 떠났음을 실감한다. 그리고 그 날 오후에는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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