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Senja, Norway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by Terry

3월 8일


센야로 떠나는 오늘, 아침부터 남은 재료들을 이용해 요리를 한다며 부산을 떤다. 부엌에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온전하게 버려진 에너지 음료 캔 대여섯 개다. 판트를 모르는 이들에게 뭔가 피곤한 일이 있었음을 짐작한다. 그 쓰레기통의 직선 방향으로는 리셉션 데스크가, 그리고 거기엔 자연 머리 기름으로 환경친화적 스타일링으로 멋을 낸 직원이 하릴없이 서있다. 매우 위험한 작업이지만 최대한 조심스럽게 캔들을 비닐에 옮겨 담는다. 임무 도중 직원과 눈이 마주쳤지만 멈출 수 없어 모두 담아냈다. 쓰레기통에는 구겨진 캔들과 나의 존엄성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수거한 캔들을 판트 하러 바로 마트로 향했다. 오늘 가려는 센야의 숙소는 외딴곳에 위치해 그로 인한 인플레이션에 대비해 이것저것 구매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모닝커피를 마신다. 커피를 마시려 들어선 곳은 생선가게와 커피숍을 동시에 운영하는 곳으로 생선 비린내를 맡으며 왜 이런 가게들이 별로 없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던 질문의 답을 얻는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는 게 이런 걸까. 어젯밤 길었던 밤의 여파로 고드름 돋친 성품을 서로를 위해 녹여낸다.


마트에서 산 양상추 한 통과 같은 물품을 캐리어에 욱여넣고 나니 캐리어는 중심을 잃은 채 휘청이며 바닥으로 기울어진다. 이 캐리어를 들고 가는 나를 달래려 빵과 커피 한 잔을 더 선물했다.


배에 타기 직전 눈치로 안 사실이지만 자연스럽게 녹음기에 대고 내 이름과 출생 연도를 말하고 배에 탑승한다. 카드게임, 초콜릿도 먹기, 잠자기. 일정을 성공적으로 소화하고 매점으로 향했다. 콜라의 가격을 확인하고는 콜라 없이 소소하게 핫도그에 양파 후레이크를 듬뿍 뿌려 먹기를 택한다. 노르웨이 첫 외식이다.


어느새 도착한 자그마한 센야 항구. 센야 숙소는 큰돈을 투자한 곳으로 이곳에 거는 기대가 컸는데 예상대로 흡족스러웠다. 연두색 모자를 쓴 프랑스인 사진작가가 우리를 픽업해 도착한 곳은 나도 모르게 내가 원하던 것을 실현해놓은 곳이었다.


주인장의 거대한 멘션 뒤로 6개의 손님방이 있는 건물이 서있다. 우리가 묵을 5번 방의 문을 열면 복도에 차례대로 침실, 널찍한 건식 화장실이 위치하고, 이를 지나면 부엌과 거실, 그리고 통유리창을 통해 모두를 매료시키는 풍경이 이어진다. 방문을 열고 나가 열 걸음 정도 걸으면 눈 속에 파묻힌 자쿠지가 상시 대기하고 있다.


옷을 갈아입고 후다닥 뛰어 눈으로 둘러싸인 자쿠지 안에 몸을 담갔다. 그 안에서 바라보는 노을 지는 모습 때문인지 자쿠지의 제트 기능 때문인지 내 마음은 계속해서 요동친다.


본디 추워야 하는 겨울의 자연을 거스른 벌일까. 자쿠지를 닫고, 방으로 돌아갈 때까지 걸리는 몇 분 사이 연하게 불어난 살가죽을 덮치는 한파에 속절없이 붉고 가려운 상처들이 피어난다.



오로라는 흐릿하지만 이곳의 자랑, 투명한 외벽을 가진 전망돔을 누리겠다는 마음으로 그곳에 들어섰다. 괘씸하게도 시설 수리 중이라 하나의 콘센트 밖에 쓸 수 없어 램프와 온풍기를 번갈아 꼽으며 별을 헤어 본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추억은 더 깊이 각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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