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 들이기
2019년 1월 14일
김정수가 온다. 오전 수업 내용은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 핸드폰은 엎어놓자마자 다시 확인하는 걸 반복한다. 불판 위였다면 앞 뒤로 노릇노릇하게 구워졌을 것이다. 이미 공항에서 도심까지 오는 방법을 오른쪽, 왼쪽만 안다면 잘 찾아올 수 있도록 안내서를 보내 놨지만 심부름 보낸 아이를 기다리듯 마음이 초조하다. 재촉하고 싶진 않아 버스정류장 앞 은행 안 의자에 앉아 창밖을 응시한다.
몇 대의 버스를 보내고, 한 번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은행의 2층 구조까지 살펴본 후에야 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 연락을 취하려던 찰나 내가 약속 시간보다 24시간 일찍 나와있음을 확인한다.
다음 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다시 나왔다. 전날에 연습한 대로 다시 그를 기다린다. 긴 기다림에도 불평 한 마디 나오지 않았다. 익숙한 옷에 커다란 이민 가방을 들고 버스에서 내리는 그를 보는 순간 반가움이 인다.
정수는 나의 고등학교 동문이다. 이 만남은 몇 달 동안 거의 빌다시피 해서 성사된 것이었다. 가는 사람 잡지 않고, 오는 사람 막지 않는 사람인 내가, 아쉬운 소리 하지 않는 내가, "제발 와줘."라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여 성사한 만남인 것이다. 결정적으로 그의 마음을 움직인 건 왕복 비행기표를 사서 몸만 온다면, 내가 식사와 잠자리를 책임지고 (나름대로) 귀빈처럼 모시겠다는 조건이었다. 입이 방정이다.
기숙사에 도착해 어제 만들어놓은 토마토 양배추 수프를 선보였다. 몇 번 만들어본 터라 자신 있는 요리였다. 이번에는 바질이 들어간 토마토소스를 이용하는 바람에 완전히 만족할만한 맛은 아니었다. 정수는 한 입 먹자마자 한국에서 자신의 어머니가 만들어주시는 수프와 똑같은 맛이 난다며 소름 돋아했다.
아무것도 안했는데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