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앞의 범죄
베이커 가에 내리자마자 지나가게 된 지하도, 볼일을 보던 남자는 우리가 자신의 집 안방 화장실을 문을 뜯어내고 들어오기라도 한 듯 화들짝 놀란다.
오전부터 사람들로 붐비는 이곳이지만 놀랍게도 식당들은 대부분 11시 30분을 넘어야 열기 시작한다. 영국 슈퍼마켓인 Sains's bury를 두어 바퀴 돌고도 시간이 남아 들어간 작은 로컬 가게. 각자 마트를 휘젓고 돌아다니던 셋은 어느 순간 가게 한가운데 한 곳을 응시하며 서있다.
세명과 한 외국인의 시선이 모이는 그곳에는 한 흑인 남성이 있다. 눈가 주변으로 눈곱인지 눈물인지 모를 무언가가 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며, 큰 두 눈은 붉은 핏발이 서 충혈되어있다. 그는 자신의 청자켓 품 안으로 액상 빨래세제 세 봉지를 거칠게 밀어 넣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점원의 동태만을 두어 번 살피다 도난방지 기계의 빈자리를 빠른 걸음으로 지나쳐 가게를 빠져나갔다. 남겨진 사람들은 그 자리에.
공범이라도 된 듯 벌렁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포르투갈식 닭튀김을 파는 음식점인 Nando's로 향했다. 처음 보는 상호에 의문이 들지만 개장 10초 전, 어디선가 나타나 줄을 맞춰 일렬로 가게 안으로 뛰어들어가는 작업복 차림의 인부들이 맛에 대한 걱정을 덜어준다. 먹을 땐 몰랐었지만 난도스는 안 보이면 섭섭할 정도로 런던 전역에 퍼져있는 난도스로 위치를 기억하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
독일에서는 볼 수 없었던 배스킨라빈스에 크게 동요하는 두 명. 나는 차분함을 유지할 수 있다.
해진 의자, 깜빡거리는 전등, 창틈으로 쾌쾌한 먼지 냄새가 들어오는 낡은 튜브를 타고 숙소로 간다. 문을 열자마자 풍기는 빨래세제 냄새. 열쇠도 있고, 아무도 없지만 법 없이도 살 세 명은 서면으로 약속한 두시가 지날 때까지 절대 방으로 올라가지 않는다. 마시멜로우 두 개씩 받아 갈 실험군이 세명이나 한자리에 모여있을 확률은 얼마일까.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
금요일과 토요일만 연다는 보로우 마켓(Borough market)이 첫 번째 목적지이다. 한 치 앞도 못 보는 여행지에서 비타민 A 결핍될 걱정 하나는 뜨거운 햇볕에 녹아 사라졌다. 런던의 상징, 빨간색 2층 버스에 드디어 올랐다. 신사의 나라에서 나도 신사답게 옆자리 사람의 체취를 차분히 감당해낸다.
마켓에 채 들어가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갓 만들어져 나오는 음식들이 와보라고 손짓하지만 배불리 먹은 뒤라 정중하게 거절한다.
이곳에 온 진짜 이유는 Monmouth coffee를 먹어보기 위함이다. 핸드드립이야 말로 섬세한 바리스타의 기술과 감각이 필요한 영역으로, 이 곳의 바리스타는 뜨거운 물을 한 바가지씩 퍼붓는 꽤나 터프한 방식을 고수하는 듯하다. 각얼음과 유기농 설탕 맛이 일품이다.
마켓을 떠나는 나의 심장 가장 가까운 곳에는 보로우 마켓의 정취는 물론, 오늘 하루를 책임져 줄 카페인의 흔적이 배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