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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ry Oct 09. 2019

(6)영국: 런던 시내 활보하기

범상치 않은 무리들


 어느덧 마지막 날은 성큼 다가왔고, 다음 날 오전 비행기로 돌아가는 우리는 바깥에서 밤을 새우고 공항으로 가기로 해 숙소를 잡지 않았다.


 현자들은 긴 하루를 미리 대비하여 느지막이 나가자고 하지만 마지막 날을 앞두고 있는 내 마음은 어쩐지 조급하다. 일요일에 모든 가게들이 일찍 닫는 것을 많이 겪어본 터라 더욱 그렇다. 그런 조급한 마음을 반영한 듯(물론 어제 먹은 아이스크림도 유죄다) 내가 눈을 뜬 시각은 채 여섯시도 안 된 시각, 맞춰놓은 알람도 울리기도 전이다.

 나갈 준비를 모두 마치고도 흰 이불에 쌓여있는 나의 모습은 허물벗기를 무사히 마치고도 세상에 나가기 두려워 그 허물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과 같다.


 오늘 아침은 가까운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카페에서 먹기로 한다. 시답지 않은 농담이 오고 간다. (1)지나가는 건물 옆으로 사이렌을 울리며 서있는 여러 대의 경찰 밴, (2)집 울타리 밖에 맨발로 나와 검지로 전방을 가리키고 있는 꼬마, (3)넓은 도로에 인적이 드문 그늘 진 가로수길. 이 모든점을 인지하면서도 그냥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4)길바닥에 떨어져 있는 야구모자 하나를 지나쳐도 아무말없이 지나치지 못한다. 주워다 쓰라며 애꿎은 에너지를 소비하며 걸어가는데 모자 안의 빨간 얼룩이 피가 아니냐고 묻는 날카로운 눈썰미의 채민언니.


 두둥. 쓸데없는 건 꼭 확인하고 넘어가야 직성이 풀리기에 굳이 다시 돌아가 얼룩을 살피고 있었다. 그때, (5)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한 여자가 '그 아이들'의 행방을 묻는다. 어떤 애들이냐는 내 질문에 답하려다가 옆 골목에 있는 무리들을 확인하고 숨어 전화로 경찰에게 그들의 위치를 알린다. 그리고 우릴 보고는 빨리 가라고 손짓한다. 궁금하지만 자리를 떠난다. 하지만 식당에 가는 길에 (6)계속 사이렌을 울리며 빠르게 돌아다니는 경찰차들에 용의자 목격자들의 흥분은 쉽게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한다.

강력범죄다,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카페는 손님들로 가득했지만 서버들은 친절함을 잃지 않는다. 독일에서 왔다 하니 독일어 한 문장을 할 줄 안다는 친절한 서버. 그 한 문장을 들은 순간 이 공간에서 내 독어 서열이 한 단계 강등된 것을 느낄 수 있다. 


 사건에 대한 관심은 쉽사리 가시지 않고, 목격자로서 어떤 의무(예를 들어 제공해준 항공권으로 런던으로 와 제공되는 호텔에 머물며 영국 법원에서 증언하는 것)도 기꺼이 질 의향이 있지만 도통 무슨 사건인지 모르는 우리는 급기야 지역 뉴스를 검색하기에 이른다. 소름끼치게도 우리가 용의자들을 목격한 그 거리는 약 일주일 전 강간 범죄 피해자가 탈출해나와 구조된 장소였다.


 따가우리만치 뜨거웠던 햇살은 어느새 구름 위로 가려지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래저래 당장 소다스트림을 목구멍에 꽂아 넣고 싶다. 인근 호텔을 짐을 맡기고는 각자의 길로 떠났다.


 튜브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돌면 그린파크와 버킹엄 궁전을 볼 수 있지만 우리는 곧장 영국 시골에서 탄생한 따뜻한 감성의 디자인을 만나러 캐드키드슨으로 향했다. 그리고 버킹엄 궁전을 뒤로한 채 계속 전진한다.



 흡사 타임스퀘어를 상기시키는 곳에서 다시 재회. 삼일 동안 나를 곁에서 지켜본 결과 내가 커피 마실 시간이 됐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날카로워진 심성을 갈아낼 필요가 있다. PRET에서 마시는 커피. 아침에 애써 억눌러두었던 조급함이 조금씩 고개를 내민다. 테이크아웃할 요량으로 서서 커피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는데 먼저 음료를 받아가 자리에 앉는 상일. 심성이 돌아와 이기적으로 굴 순 없으나 다리는 주체할 수 없이 떨리고, 손가락은 계속해서 브릭레인으로 가는 교통편이 나온  페이지를 새로고침 한다. 채민언니가 예리했던 것일까 사방으로 들썩거리는 엉덩이가 보였던 것일까 다행히 빠르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 가보고 싶었던 브릭레인으로 향한다.


 가까운 튜브역에서 내려 브릭레인으로 올라가는 길. 이곳은 흑백 필터를 씌운 듯 생기가 없고, 무섭기까지하다.



서로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음식점들을 지나 몇 블록 올라가 브릭레인 구역으로 들어오니 순식간에 벽은 그래피티 가득해졌고, 드문드문 보이는 서로 모르는 척 하지만 서로의 한국 국적을 알고 있는 관광객들로 인해 마음이 놓인다.


 빈티지 옷들은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제품과는 달리 가게에 들어갔을 때 어떤 것들을 마주하게 될 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이러이러한 것을 사겠다는 계획보다는 그저 열린 마음으로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내 마음은 문짝이 떼어져 나간 지 오래고, 70년대 연극 코스튬에 잠시 머뭇거리는듯 싶었으나 계속 두드리는 소리에 채민 언니 마음도 열리는 듯 보인다.

pm 20:00, 모든 가게가 마감하는 것을 지켜보고 난 후, 목적지를 잃은 둘. 디저트란 말에 다가간 인도 디저트 가게 쇼윈도 너머론 사모사가 진열되어있다. 튀김... 그리고 세 번째 아시안식, 떡볶이를 먹으러 향한다.


 꽤 걸어가 도착한 한식집. 문을 연 순간 우리를 맞아주는 에어컨 바람에 잘 찾아온 것만 같다. 한국인 점원은 우리가 자신에게 큰 빚이라도 졌지만 특별히 주문을 받는 관용을 베푼다는 식으로 주문을 받았고, 음료보다 먼저 처음으로 나온 음식은 한가운데 숟가락이 꽂힌 공깃밥이었다. 그녀에게 자신도 모르게 빚을 진 사람은 비단 우리뿐만이 아닌 듯했다. 할 수 있는 복수는 좁은 가게에서 다 먹고도 오래 앉아있는 것밖에는 없어 보인다.


저 구멍으로 손이 나와 요거트를 두고 간다.

 늦게까지 영업한다는 마켓으로 길을 걸어가면서 다른 건 미련이 없지만 프로즌 요거트를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라며 말하는 나. 그리고 모두 퇴근한 큰 건물 1층.  화려한 조명을 뽐내며 유일하게 문을 연 곳은 프로즌 요거트 가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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