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
배는 부르지만 유명하다고 들었던 베이글을 살짝 아쉬워했더니 돌아가는 길에 그 가게가 나타난다. 포장해 나와 한입만 베어 물고 가방에 넣어두었다. 인생의 좋은 일과 나쁜 일은 결국에는 서로 상쇄되는 것일까.
다들 무사히 볼일을 마치고 셋은 가방을 찾으러 간다. 프런트 데스크 뒤에서 새벽 추위에 대비하여 주섬주섬 옷을 더 걸쳐 입는다.
한 백인 남자가 황급히 호텔로 뛰어들어온다. 말을 하기 앞서 그는 우리에게까지 턱을 살짝 쳐들며 쿨하게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의 턱짓에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다. 자신은 옆 건물에 숙박하는 사람이며, 오늘 밤 변압기가 꼭 필요해 이를 빌리러 왔단다. 주인은 너무나 빌려주고 싶으나 이미 자신의 숙박객이 빌려가서 못 빌려주겠다고 말한다. 거짓말의 향기를 나만 맡은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간청하고서 나가는 그.
콘센트가 하나밖에 없을 상황을 대비하여 스위치로 전원 차단이 가능한 3구 멀티탭까지 챙긴 나의 허를 찔렀던 영국의 콘센트 전압. 우리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공항에서 7.45유로짜리 변압기를 하나를 구입했었고, 밤마다 난롯가에 모인 작은아씨들처럼 변압기 주변으로 옹기종기 모여 핸드폰을 충전했었더란다.
오늘은 여행 마지막 날. 더 이상 필요 없어진 변압기를 처분할 절호의 기회다. 이 변압기를 6-7.5유로(3으로 나누어 떨어져야 함)에 저 남자에게 팔고 싶다.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길 건너에서 얼마에 팔지 수군거리며 그 남자가 모든 시도 끝에 좌절하기만을 기다린다.
또 한 번의 거절, 흡연, 다시 시도. 오뚝이 같은 그의 노력은 결국 빛을 보고야 만다. 큰길을 사이에 두고 희비가 엇갈린다. 그는 변압기를 들고 나오다 우리를 확인하더니 승리의 전리품을 우리 쪽으로 자랑스럽게 내보였다. 그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우리는 미련 없이 떠난다.
디지털 세대, Z세대인 우리는 웨스트엔드 공연장에서 뮤지컬 라이온 킹을 보는 대신 컴퓨터로 실제보다 더 생생하게 재현해낸 3D 실사 라이온 킹을 감상한다. Zzz...
추운 버스정류장에서의 선명한 기억을 끝으로 자는 것과 조는 것을 끊임없이 넘나들며 우리는 돌아간다.
내 서랍 속, 오이스터 카드와 남은 파운드.
나는 언제든 다시 돌아갈 준비가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