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피구: King’s court

그곳의 냄새나는 열기를 그리워하며

by Terry

일주일이 지나 두 번째 수업 날이 되었다. 체육관으로 가는 길은 머리는 잊을 수 있을지언정 몸이 기억하고 있는 길을 지난다. 갈아 신을 체육관용 신발이 없어 내쫓김 당할까 두려워 자연스럽게 복도를 헤매던 나를 관리인은 친절히 도와줬다.


한국의 교육을 비판 없이 수용하며 성실성과 시간에 대해 나 자신에 엄격한 사람으로 성장한 나는 첫날을 빠진 학생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체육관용 신발조차 준비해오지 않는 얼빠진 학생으로 보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겨우 이겨내며 체육관에 들어섰다.


냄새나는 체육관에 들어서 동양인, 한국어, 여자 뭐하나 확실히 내가 이 그룹의 주류는 아니라는 걸 두 눈으로 보고 있으니 돌아갈까 말까 하는 내적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렀지만 고민하는 사이 수업은 시작됐다.


코치가 다가와 게임 방법에 대해 설명해주고는 이해했냐고 묻는다. 내가 확실히 알아들은 건 ‘이해했어?’라고 묻는 구간밖에 없지만 ja(yes) 병 말기를 지나고 있던 나는 ja라고 답한다. ‘그래 봤자 피구가 거기서 거기지 뭐’ 나는 생각한다.

(참고로 영어로 말해 달라고 하면 그렇게 해줬을 거라고 이백 퍼센트 이상 확신한다.)


첫 주의 ‘체육관 찾아오기’라는 어려운 미션을 통과한 자들이 모인 이곳의 피구는 내 학창 시절의 피구 시합과는 사뭇 달랐다. 공이 두세 개인 것까지는 괜찮았지만 죽은 애들이 부활하고, 그러다 어느 순간 경기가 끝나버린다. 그저 눈치껏 들어가라고 하면 들어가 열심히 공을 피해 본다.


경험으로부터 규칙을 터득해나갔고, 최상위 실력은 아니지만 꽤 괜찮은 실력을 가진 나는 게임을 진정 즐길 수 있다. 특히, 개강 후, 독일어 수업에서 탈모 증상을 가진 친구가 자신을 21세라고 소개하는 걸 듣고 놀란 후에 이 피구 경기장에서 내가 코치 다음으로 연장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더욱 편하게 경기에 임하는 꼰대의 마음이 크게 도움되었다.


피구와 같은 무료 스포츠 수업뿐만 아니라 수강료가 있는 수업들도 체험 수업이라는 명목 하에 무료로 들을 수 있고, 그래서인지 바쁜 시험기간에는 출석률이 썩 높지는 않았다. 어느 날, 코치는 무단결근을 했고 학생들은 다섯 명도 오지 않은 날,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려는데 온 공을 든 채로 세 발자국만 움직일 수 있는 규칙의 좀비 피구를 하자고 하는 한 학생. 코트도 없이 온 체육관을 휘저었던 격렬한 피구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들뜬 기분을 느낀다.


마지막 수업 날, 독일에 놀러 와 있는 김정수를 달고 피구 수업에 가는 길. 현지 학생 체험을 시켜주고 싶은 욕심과, 항상 인원 부족에 시달리던 것을 떠올리며 일단 데리고는 왔지만 가는 내내 코치가 안된다고 하면 조용히 밖으로 나가서 기다리라고 당부한다. 체육관으로 들어선 나는 최대 인원을 갱신한 현장에 당혹스럽다. 어찌 됐든 코치는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내가 데려온 것에 일종의 책임을 느꼈지만 정수의 뿌리가 깊이 박혀있는 버드나무와 같은 살랑임 몇 번으로 이미 적들의 쉬운 표적이 되어버린 것을 보며 참여에 의미를 두고,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기로 한다.


동양인이어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사회성이 0에 수렴하는 나는 한 학기 동안 피구를 함께한 이들과 호형호제를 하지는 않았지만 매주 한 팀으로 혹은 적으로 게임하며 이들에게 위로를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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