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서 우는 게 아니야
2018년 12월 31일
프랑크푸르트의 가게들조차 오후 두 시까지만 영업한다는 사실을 모른 채 우선 쌀국수부터 먹으러 들어갔다 나온 우리는 기념품 하나 사지 못한 채 공항으로 떠나야 했다.
오늘은 엄마, 아빠가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날로 우리는 공항 안 한 카페에 둘러앉았다. 레모네이드를 마시는 나에게 누군가 최면이라도 건 듯 순식간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여행 내내 3초에 한 번씩 짜증을 내질 말든지 눈물을 흘리지 말든지 하나만 할 것이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도 아니고, 부모님이 가시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나오는 눈물도 아니다. 아마 내 노력으로는 미치지 못하는 부모님의 사랑에 대한 깨달음에서 나온 눈물일 것이다. 게이트까지 배웅할 때까지는 해도 웃으며, 시야를 가리는 눈물을 흘려보내는 기괴한 모습이었는데 뒤돌아서자 진정 눈물밖에는 남지 않았다.
나사가 풀려버려 느슨해진 눈물샘의 수도꼭지는 제어가 되지 않는 상태이지만 머리는 다음 교환 학생이 보내온 질문에 성심껏 답변을 길게 달 수 있는 상태이다. 눈가와 두 볼에 자극이 되지 않도록 닦지 않고 흐르도록 둔다. 돌아가는 S반에서, 민정이네 집으로 가는 트램에서 조용히 눈물만 눈물만...
민정이네 집에 도착했고 다행히 우는 비율은 점점 줄어드고 웃는 비율은 점점 늘어난다. 함께 토마토 수프, 냉동피자, 웨지감자를 만들고, 헝가리에서 사 온 로제 와인과, 이 집에 사는 라후라가 만들고 남은 디저트로 마지막 저녁을 장식했다.
몰래 옥상 침입이 가능하다는 내 기숙사에 다 같이 모였다. 독일에서는 매해의 마지막 날에 불꽃놀이를 한다고 한다. 자정까지 기다리지 못한 사람들의 폭죽 소리가 밖에서 희미하게 흘러들어온다. 쏟아낸 눈물을 대체할 액체가 필요했던 걸까 내 몸은 어느 때보다 빠르게 주류를 흡수해낸다.
자정이 가까워진 시각, 술을 마셔 한껏 용감해진 나는 옥상으로 올라가는 사다리의 선두에 섰다. 올라가니 한쪽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폭죽을 준비하고 있어 반대편에서 폭죽을 준비한다. 라이터를 든 나는 얼어붙은 손으로 폭죽에 불을 붙이느라 여념이 없는 와중에 새해를 맞이한다. 우리가 준비한 앙증맞은 폭죽들을 다 터뜨린 후에도 사면에서는 한참 동안 폭죽이 터지고, 이내 회색 연기가 가득해진다.
옥상에 먼저 올라와있던 사람들은 폭죽 대신 조명탄을 가져왔는지 엄청난 소음과 붉은 섬광이 시선을 빼앗는다. 누구 하나 눈이 멀거나 귀가 먹어야 그만둘 거 같은 이들을 뒤로하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우리 기숙사 입구에는 거대한 플라스틱 쓰레기통이 있는데 폭죽에 녹아 감쪽같이 녹아내린 걸 보고 옥상에 있는 친구들은 소꿉놀이 수준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상일이가 내 브리타 정수 물통을 깨 먹은 것을 제외하면 순조롭게 새해가 밝았다. 떡국을 끓여먹고 애들을 돌려보내고, 설거지를 하고, 침대에 누워 작년의 피곤함을 달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