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어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아지고, 그 답을 못 찾아 괴로와하길 반복하던 긴 암흑의 시기가 지나고, 드디어 여름이 찾아왔다. 매일 오전 일곱 시, 창문 밑에 침대를 둔 나는 돋보기 밑에서 타들어가는 개미의 신세를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고, 더위를 피해 오후 느지막이 집 밖을 나오면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으며, 밤 열한 시쯤이 되어야 완전한 밤이 찾아오는 그런 시기가 찾아왔다. 즉, 길을 걷다 그늘을 벗어나는 순간, 땀이 흐르고, 숨통이 턱턱 막히는 그런 시기다.
실내라고 해서 더 나아지는 건 없다. 독일 사람들에게도 아직 생소한 이 폭염에, 실내에 에어컨을 설치하기는커녕, 그들도 당황하며 허둥대고 있는 실정이었다. 아무 카페나 들어갔다가는 더위에 헉헉대며 선택의 여지없이 뜨거운 커피를 마실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그나마 에어컨이 있는 스타벅스 매장과 버스나 트램도 있었지만, 그들은 에어컨이 있는 사실만을 자랑하고 싶은 것 같았다. 어쩌다 선선한 날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파워냉방을 가동해 덜덜 떨게 만들고는 진짜 더운 날에는 냉방을 하지 않고, 이 공간에서 느꼈던 추웠던 기억으로 위안 삼으라 한다. 도통 이해할 수 없다.
학교 도서관은 그나마 사정이 나았지만 그렇기에 여느 때보다 붐볐다. 활자와 잠시 시간을 갖기로 합의한 나는 아침 일찍부터 도서관에 자리 잡고 앉아있기도, 활자 주변에도 가기 싫었기에 해당사항이 없다.
냉수로 샤워를 하고 나오는 순간 바로 땀이 나는 이 상황을 타개할 나만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비교적 고층(14층)에 사는 나는, 내 방의 지리적 위치 때문에, 내 방의 큰 창과, 내 방문, 그리고 바깥쪽으로 나있는 부엌 창문 3개를 동시에 열어두면 바람을 위한 실크로드가 형성돼 그 길을 따라 일직선으로 바람이 몰아치게 된다는 것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 방법은 방문을 닫을 수 없다는 것과, 모기가 들어올 수 있으므로 방 불을 킬 수 없다는 치명적 단점들이 있었다.
귀가하면 씻고 나와 불을 켜지 않은 깜깜한 방 한가운데 의자를 두고 앉아 불어오는 바람을 정통으로 맞으며 머리를 말리곤 했는데, 맞은편에 살던 플랫 메이트는 화장실을 가려다 걸음을 멈추고 내 쪽을 쳐다보며 자신의 눈을 의심한다. 그의 두 눈이 어둠에 적응하는 그 몇 초간의 정적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과정을 거친 후, 여름 내내 내 방문은 여느 때보다 활짝 열려있었다.
땀방울이 등을 타고 흐르던 어느 날,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학교 실외 수영장에 가기로 했다. 내가 사람을 낚는 어부였다면 이곳에서 낚싯대를 던졌으리라. 물 밖에서는 이미 포화상태로 보였지만 물 안에 들어가니 나 하나 정도 떠다니기에는 충분했고, 많은 사람들의 체온에도 차가움을 유지하고 있었다. 교실 밖에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몇몇 애들도, 천 조각만을 걸친터라 더욱 보고 싶지 않은 상태로 눈에 들어온다. 나무 밑에 둘러앉아 과일도 먹고, 카드게임도 하고, 배구(하는 시늉)도 하며 물기를 털어낸다.
앞뒤 과정이 조금 번거롭긴 하지만 더위를 이겨내기에 물놀이만 한 것이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 나는 혼자서라도 호수 수영을 가기로 했다.
어느 가을날, 조깅을 하러 나간 나는 로젠호헤에서 이어지는 숲길에서 집으로 돌아오기보다 더, 더, 더 가기로 했고, 한 호수에 도착했었다. 그 호수를 가려고 마음먹었지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은 그곳이 누드 비치라는 구글맵 리뷰였다.
사전답사차 도착한 그곳은 가을날 황량했던 모습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생명력이 들끓고 있었다. 그들의 옷을 벗어던지게 한 것은 무엇일까. 해방감? 자부심? 빨래하기 싫은 마음? 의도하지 않아도 시야에 들어오는 허연 덩어리들에 어쩐지 불편해진다.
며칠 뒤, 수영복을 아래에 챙겨 입고, 살색 무리를 피해 구석진 바위 위에 자리를 잡은 후, 호수에 입수했다. 차가운 물, 생각보다 깊은 수심, 물 위 막을 형성하고 있는 미끄러운 무언가에 주춤하지만 영법을 배영으로만 한정하여 호수를 떠다니기로 한다. 호수 한가운데 누워 석양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어들기도 했지만 발가락 사이를 스치는 소름 끼치는 나무뿌리들, 소금쟁이들이 만들어내는 작은 파동들, 스스로 귓방망이를 후려치게 만드는 모기들에 쫓기듯 나와 대충 물기를 닦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그렇게 긴 여름을 하루하루 이겨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