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리썬: 독일 Wild사의 과즙 음료 브랜드
결정은 했으나 카프리로 가는 티켓을 사는 것은 쉽지 않다. 울다 지쳤기에 배에 오르자 금세 잠에 빠진다. 배에서 내려 허기진 배를 달래려 선착장 앞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대충 비쌀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가격에 한참 못 미치는 맛이다.
한 배를 타고 왔지만 다들 제갈길을 찾아 떠났고, 우리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택하는 재주를 십분 발휘해 인적 드문 골목으로 들어섰다.
이곳이 여름 휴양지임은 틀림없는 것이, 겨울엔 위로 올라갈수록 바람이 머리채를 잡고 흔들어재낀다. 추위에 아기자기한 기념품 가게 주인들은 문을 닫고 떠나버렸지만 광장에 즐비한 명품 샵들을 보니 이곳이 부자들의 휴양지임을 알 수 있다.
광장에서 사진을 몇 장 찍어보지만 흩날리는 머리칼에 이내 포기하고, 다른 방향을 향해 걸었다.
선인장을 따라가니 큰 저택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느 집이 빌 게이츠의 별장일지 고민해본다. 별장 앞으로 바다가 펼쳐지고, 붉은 노을이 비추기 시작한다. 이 집이겠지?
곳곳에 심어져 있는 레몬과 오렌지 나무들. 문득 카프리썬이 뇌리를 스쳐지나고, 카프리썬의 의미를 파악한다. 오호라. 남의 집 마당에서 오렌지를 몰래 주워다 먹어봤다. '가공'식품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한참을 걸려 다시 선착장으로 내려왔지만 넉넉하게 잡아놓은 일정 덕분에 꼼짝없이 두 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가게들은 이미 가게 밖의 의자들을 정리하고 있었고, 애석하게도 바람과 추위는 더 날카로워진다.
기둥 뒤에도 서봤다, 오토바이 옆에도 쭈그려 앉아보며 바람을 피하는 최적의 장소를 찾아다니던 중, 저 멀리 나폴리가 보이는 바닷가에 도달했다. 이곳에서 보니 세계 3대 미항이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 분홍빛 석양과 나폴리 항구의 빛이 합쳐져 아름다움을 더한다.
나보다 약 20여 년을 더 사신 아버지는 돌을 보고 계신다. 네모난 구멍이 뚫린 벽돌 사진을 찍으라고 하는 것도 모자라 파도가 꾸준함으로 만들어낸 구멍 때문에 얼핏 화강암처럼 보이는 (거대한) 흰 돌은 주머니에 챙긴다. 그저 그런 돌덩이에서 지질학적 가치를 보셨다.
돌아가는 배에서 누군가 아버지의 불룩한 안주머니를 열어보라고 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불안감에 휩싸였지만 다행히 아무도 주머니 속을 궁금해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