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로마: 우리 가족 왔다감

'Rome'ing around

by Terry

아픈 기억으로만 남은 나폴리를 떠나 로마로 향한다.


나폴리만으로 이탈리아를 평가했다면 큰일 날뻔했다. 로마 테르미니역의 인파에 바짝 긴장했지만 일행을 이끄는 리더로서 침착하게 숙소에 연락을 취하는 동시에 지하철 표를 구입해, 숙소로 향하는 길을 안내한다. 가장의 무게를 느낀다.


숙소는 말 그대로 바티칸 제국의 성벽 맞은편이다. 역에서 숙소까지 가는 그 몇 분동 안 길가의 트럭 장수들과 엉성한 명찰을 매고 말을 거는 사람들에 부정적인 에너지에 휩싸인다.


숙소 앞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이 전화를 받지 않아 짜증에 길바닥에 주저앉을때쯤, 회갈색 빛 피부에 대비되는 하얀 치아와, 가슴 근육을 돋보이게 만드는 목걸이를 찬 하이디가 나타나 활짝 웃으며 우리를 안내했다. 숙소는 감동 그 자체였다. 복층으로 구성되어 고풍스러운 장식들이 있었고, 하얗고 깨끗한 침구, 이탈리아라는 걸 보여주는 에스프레소 머신과 에스프레소 잔에 흐뭇해진다.


하이디가 알려준 길을 따라 관광을 시작했다. 시작하기 앞서 아무 가게나 들어가 샌드위치를 샀다. 시금치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느껴지는 짜릿한 짠맛에 놀라움이 계속된다. 말씀은 안 하시지만 부모님의 얼굴에서도 만족감은 읽히지 않는다. 가게 바로 옆 맥도날드가 왜 성황을 이루고 있는지 한번 더 생각해볼걸 그랬다. 평소 식욕을 주체 못하는 나지만 샌드위치 반쪽은 조용히 가방 속에 넣고 봉인한다.


지도를 보며 한 언덕을 올랐다가 메인 스트릿을 지나 콜로세움까지 가야 한다. 여행의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 엄마의 마음은 조급하다. 무언가 건지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이 가게 저 가게를 모두 들른다. 엄마가 손에 쇼핑백을 하나 쥔 후에야 그 거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하이디가 분명 짧은 거리라고 했었는데.


콜로세움의 형체가 보일 때쯤에는 이미 해가 지고 있었고, 도착하니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이 망할 비수기. 짙은 남색의 하늘과 오렌지색 가로등 불빛을 반사하는 콜로세움이 신비롭다.


버스를 타고 다시 도심으로 이동해 걸었다.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다 보면 가끔 웅성대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곳으로 가면 어김없이 유명 명소가 자리하고 있다.


비싼 밥

하이디가 추천해준 레스토랑까지는 꽤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찾아갔다. 어둡고 차분한 분위기의 레스토랑. 현지인 맛집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하지만 실패다. 내 입맛이 충분히 고급이 아닌 것일 까. 원재료인 밀가루의 맛만을 그대로 보존한 파스타, 호기심에 시켜봤던 비릿한 엔초비, 무난한 라자냐 모두 어딘가 뜻뜨미지근하다. 평소 영수증을 받아 든 아빠의 얼굴은 잔뜩 굳어있다. 하이디 이 자식.


꺼져가는 핸드폰을 어르고 달래, 겨우 버스 정류장까지는 왔다. 자정이 넘어서인지 춥다. 핸드폰은 이내 꺼졌다. 내려야 할 정류장 이름과 거쳐가야 할 정거장 수를 중얼거리며 버스에 올랐다.


아 뿔 싸. 버스 내에는 시각적으로도, 청각적으로도 어떠한 안내도 제공되지 않고 있었으며, 늦은 시각에 승객이 별로 없는터라 벨을 누르지 않으면 정차하지 않고 정류장을 넘어가고 있었다.


미어캣처럼 창문에 달라붙어서 익숙한 풍경이 보이면 바로 뛰어내리기 위해 이마는 창문에 다리는 복도에 내놓고 긴장한다. 오늘 도착한 로마에 익숙한 풍경이 있을리 만무했고, 직감대로 내렸다.


지도에 쓰인 몇 안되는 거리 이름과 계속 대조하며 걷다 보니 반가운 맥도날드의 m이 보인다. 살았다.

내려야 할 정거장 한정거장 전에 내린 걸로 확인됐다. 만약 한 정거장만 더 갔다면 숙소 코 앞에서 내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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