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피렌체: 가죽 가죽 가죽

두오모 성당이 뭐죠?

by Terry

피렌체로 가기 위해 기차에 올랐다. 피렌체에 다가갈수록 기차 안은 시끄러운 사람들로 가득 찬다. 숙소에 가까운 애매한 역에서 내리니 역무원이 따라와 잘못 내린 게 아닌지 재차 확인한다.

황량한 거리를 좀 걸으면 주거지역이 나타나고, 그중 하나가 우리 숙소다. 미닫이 문이 있는 침실과 주인이 준비해준 와인 한 병에 깊게 감명받았다.

동전을 손에 꼭 쥐고 버스가 오기를 기다린다. 한참을 가 도착한 피렌체 산타 노벨라 역은 안개가 자욱했다. 애매한 감성의 크리스마스트리와 영화 세트장처럼 톡 치면 종잇장처럼 뒤로 넘어갈 것만 같은 건물들이 보인다.


아빠의 말에 따르면 '무더운 여름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하드 하나 물려주면 좋다고 하던 어린아이'였던 나는 수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욕심내는 건 젤라또뿐이다.

이번 여행에서 입맛에 꼭 맞는 음식을 먹지 못했던 우리는 한국인들의 애증의 레스토랑인 자자에 가기로 했다. 적어도 이곳의 맛은 최상은 아닐지언정 익숙한 맛일 것이라 짐작하며 기다림을 감내했다. 앞에도, 뒤에도, 가게 안에도 한국인들이다. 특히 고기에는 아낌없이 후한 아빠가 티본스테이크 세 개를 주문해 한 사람씩 먹는다는 것을 겨우 뜯어말려 티본스테이크 두 개와 파스타로 합의를 본다. 물릴 때까지 고기를 먹었다.


그날 밤 숙소에서 와인을 마시며 난 고민에 빠졌다. 내일 피사의 사탑에 갈 것이진 명품 아울렛 더 몰에 갈 것인지를 두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도움을 청해 보지만 '둘 다 가면 되지.'라는 대답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새벽, 깨어나기 직전

새벽 4시쯤 됐을까. 시차 적응에 완벽히 실패하신 부모님은 이른 아침을 만드시느라 분주하다. 밝게 빛나는 형광등 불빛은 부엌 옆 소파베드에서 자고 있던 내 눈꺼풀을 위로 쏟아져내렸다.


피사의 사탑에 갔다 오면 아무것도 남지 않지만 더 몰에 갔다 오면 뭐라도 남을까 싶어 더 몰에 간다. 산타 노벨라 역을 뱅뱅 돌다 보면 더 몰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 물 한병도 제공된다.

계속 둘러보다 보니 이제 뭐가 괜찮은 물건인지 판단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점심을 먹고, 다시 둘러본 후에야 우리 셋 모두가 동의하는 가방 하나를 살 수 있었다. 엄마가 쇼핑백 하나를 손에 거머 줬으니 목적 달성이다.


다시 돌아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창문으로 구찌 매장의 출입문이 보인다. 나오는 사람마다 큼지막한 쇼핑백을 들었지만 얼굴은 심히 지쳐있다.


다시 도심으로 돌아가 피렌체 가죽 장인의 집을 찾아갔고, 물건을 산 것뿐만 아니라 제 값을 잘 치른듯해 만족감이 든다. 이곳에서의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아버지는 매우 자애로워, 나는 생각지도 않게 지갑과 동전지갑까지 손에 거머쥘 수 있었다.


또다시 새벽. 공항버스 첫 차를 타고 피렌체 공항으로 갔다. 왜 아무도 피렌체 공항이 이렇게 작다고 말해주지 않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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