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짓고는 못 사는 불법체류자
2019년 3월 26일
봄이 만연해야지만 찬바람이 몰아치는 고독한 분위기가 풍긴다. 하지만 독일에서의 새로운 학기는 예정대로 시작되고 있었다. 문득 비자 연장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학교에 문의 메일을 보내곤 뿌듯해했다.
그렇게 시작된 생산적인 리듬에 맞춰 외출을 계획한다. 베를린에서 먹었던 포케는 그즈음 새벽마다 나를 찾아왔고, 오늘 그 갈증도 해소해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홀로 밥 한 끼를 먹으러 프랑크푸르트행 기차에 올랐다.
기차에 몸을 싣자마자 핸드폰에 알림이 울린다. 아까 보낸 메일의 답장이다. 이번 학기 비자 테어민 날짜와 필요한 서류들, 그리고 덧붙여 혹시 나의 거주 허가증 기간이 만료되었는지 묻는다. 지갑에 넣어놓고 내내 가지고 다니던 거주 허가증을 새삼스럽게 꺼내보곤 충격에 휩싸였다.
난 독일에서 2주째 불법체류 중이었다.
만료되었다는 내 말에 최대한 빨리 외국인청에 가서 임시 허가증(fixtionsbescheinigung)을 발급받으라 한다.
오늘은 수요일. 망할 외국인청은 마침 14:00까지 운영한다. 바로 되돌아간다 해도 오늘 가는 건 불가능하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이 사실이 (누군가에게) 발각돼 추방명령을 받고, 짐을 싸는 내 모습이 그려진다. 이불이랑 식기는 어떡하지?
당장 어찌할 도리가 없음을 인정하고 김치소스를 얹은 포케를 포장했다. 평일의 휑한 거리는 독일의 마지막 풍경으로 남기에는 너무 초라하다.
혹여나 김치 냄새가 새 나가진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에 탔다. 텅텅 빈 기차의 하고많은 자리 중에 하필 내 맞은편 자리에 한 할아버지가 앉는다. 불체자에겐 짜증 낼 권리는 주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핸드폰으로 기차의 와이파이를 연결할 수 없다며 도와달라는 말로 말문을 연 그는, 자신을 소개한다. 미르. 며칠간 노숙을 하다 온 것 같은 행색과는 어울리지 않게 앙증맞은 이름이다. 립스틱 색이 나와 잘 어울린다는 통하지도 않는 칭찬을 늘어놓더니 대뜸 자신에게 독일어를 배우란다. 일단 안배울건 확실한데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때마침 기차는 다름슈타트 역에 도착했고, 나는 안도한다. 미르는 자신도 여기서 내린다며 같이 플랫폼을 걷자고 한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이젠 끝이라는 생각에 또다시 안도한다. 하지만 같은 버스에 오르는 미르. 내려야 하는 정류장은 가까워지고 나의 거주지 정보가 노출될까 걱정스럽다. 학교에서 독일어 수업을 받는다는 말은 그에게 거절이 아니다. 맥락을 못 읽는 로미는 왓츠앱을 교환하잔다.
영어를 하며 수줍어하는 단계는 지난 지 오래다. 영어를 잘 못 알아듣는 미르의 귀에 당신에게 독일어를 배울 마음은 추호도 없으며, 어디서 내릴 거냐며 추궁한다. 평소 웃는 상인 나는 혹시라도 은은한 미소를 띠지 않도록 주의한다. 다행히 미르는 이내 버스에서 내린다.
미르의 자존감이 다다른 경지에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다. 잠시나마 불법체류에 대해 잊을 수 있었지만 이내 다시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로부터 5개월쯤 지났을까. 난 미르가 내렸던 그 정류장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됐다. 레베 봉투를 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그날 그가 날 따라 버스를 탄 건 아니라는 사실에 조금은 덜 몸서리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