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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rry Mar 05. 2020

(2) 프랑스 알자스: 콜마르

인생은 회전목마

 잠시 상상 속 짐싸기를 멈추고 간 헬스장에서 만난 지은 언니와 얘기하면서 괜찮다는 얘기를 몇 번이고 들어서인지 피곤해서인지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마음은 진정됐지만 내일 프랑스에 가려던 계획은 수정이 필요해 보인다. 승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침 버스표를 취소하고 오후 버스를 다시 예매했다.


2019년 3월 27일


 외국인청이 문이 열기 전에 도착해 기다린다. 하지만 기다림이 무색하게 예약자들이 두 어명 있어 길을 비켜줘야만 했다. 그렇게 초조하게 기다리는데 알라나가 걸어온다. 그녀도 임시 거주 허가증을 받으러 왔다는 말에 희망이 보인다.


 드디어 방에 들어갔다. 복도에서는 느낄 수 없던 여유로운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추궁당하기 전까지는 최대한 말을 아끼려고 꼭 필요한 말만 내뱉었다. 14유로만으로 쉽게 거머쥔 임시허가증에 어안이 벙벙하다. 알라나와 기쁨을 나눈다. 햇살이 따사로운 날이다.

 

 야호! 나도 프랑스에   있다. 빵을 하나  플릭스버스에 올라탔다.

 늦은 오후가 돼서야 콜마르에 도착한다. 기차역에 들어가 물 한 병을 계산하기 전까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새치기하는 인간과 운율감있게 말하는 점원을 보자 실감이 난다.

 남쪽으로 내려왔는데 왜 더 춥지? 바람을 뚫고 걸어가 여유롭게 쇼핑하고 있는 승원이를 만났다. 마음이 편안해졌지만 한편으로는 초록색 스카프를 두른 그녀의 센스에 감탄한다.

사랑의 맴매?

 소외 없는 세상을 꿈꾸며 꼼꼼하게 살펴본 팜플렛 구석에는 귀여운 일러스트가 자리 잡고 있었고, 이를 거부하지 못하고 한시 박물관으로 향했다. 화가/일러스터이면서 독립운동가였던 한시 아저씨가 알자스 지방이 독일 치하에 있던 시기에 그린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시간을 초월하여 공감과 웃음을 자아낸다.

 알자스 지방에 와서 와인을 안 마실 순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와이너리에 들러 와인 2병을 샀다. 그렇다고 와인만 마실 수도 없으니, 이에 맞는 저녁을 준비했다. 처음 먹어본 토르텔리니는 파스타는 감동이었다. 내 독일인 플랫메이트는 대마라면 아니면 토르텔리니로 끼니를 때우곤 했는데 독일인이지만 맛을 좀 아는 친구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2019년 3월 28일

  

 이 즈음은 내가 불면증에 시달리던 시기였는데 여행지에서도 예외는 없다. 눈을 뜨니 새벽 4시. 졸리지만 다시 잠들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승원만의 우렁각시 노릇을 자처한다.


 팜플렛에 의지하며 길을 찾아 나선다. 나는 길찾기를 게을리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옳은 길은 잘 찾지 못하는 편인데, 또 열심히 찾은 만큼 확신이 강한 사람이었다. 내가 주장하는 방향에서 180도를 회전하면 옳은 길이 나온다.

 이곳은 '하울의 움직이는 ' 배경지다. 할 말이 없으면 약속이라도  , 인생의 회전목마를 흥얼거린다.  팜플렛에 표시된 순서대로 가다 보면 노르망디 건축양식 물론 독일에서  수학여행 학생 무리들도 계속해서 마주칠  있다. 손에는 같은 팜플렛을 들고 있다.



 기차표를 사고 분수대에 앉아 기차를 기다리는데 승원이가 비밀스럽게 귤을 건넨다. 프랑스 남부를 여행하고 온 그가 그곳에서 공수해 온 귤이다. 귤을 까는 손은 멈출 줄을 모르고 몇 분 뒤 우리 둘 사이에는 귤껍질 무덤이 생긴다.


 가난한 학생인 우리는 미묘한 가격차이 때문에 가장 빠른 기차의 다음 기차를 타기로 했다. 시간보다는 돈을 아끼기로  것이다. 잠시 망각하고 있었던 사실은  기차가 연착되고, 우리 기차는  연착된 시간에 더해  연착되어버리는, 이곳이 프랑스라는 사실이었다.


립밤 다 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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