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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혜 Dec 30. 2021

애송이 미니멀리스트, 서른 이전 독립의 꿈

우당탕탕 독립 회고하기



2021년 1월

전세 입주 D-한 달


퇴근 뒤 물건을 비워내고, 박스 안에 차곡차곡 집어넣어 정리했다. 분류하고 포장하는 일이 지치긴 했지만 설렘 또한 있었다. 본가에 지내면서 나름 2년간 많이 비워 왔다 생각했는데 이삿짐을 챙기며 보니 어마한 물건 가짓수에 완전히 질려버렸다. ‘아직 갈길이 멀고, 미니멀 라이프는 끝이 없구나’ 하고 생각이 들던 것도 찰나. 지체하지 않고 계속 물건을 정리했다.



중소기업청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독립하게 된 아파트였다. 전세 거품이 있던 때라 공시가가 안 맞아 은행 대출 요건이 안 되거나, 한두 부분이 마음에 걸리는 아파트밖에 없었다. 그렇게 1~2개월 동안 집 보러 다니고 공인중개사 전화하고 전셋집을 찾아다녔는데 오래됐지만 관리가 잘 되었고, 집주인이 문제없는 물건으로 잘 택했다.


‘기다림이 승리했다!’



좋은 게 좋은 거라지만 일이 잘 풀리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차올랐다. 가구 샀던 것들이 도착하는 일정도 체크해야 했고, 인터넷이랑 TV, 대출 심사와 실행되는 것도. 계약일에 잔금 처리하는 것도.. 또 어떤 빠진 것들이 있을까 고민하느라 신경이 곤두서 있는 연속. 하지만 독립한 지 1년이 되어가는 지금 돌아보니 큰 문제없이 잘 살고 있다. 당장 일어나지 않을 걱정에 대해 스트레스 받지 말자. 라고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자리매김 해 있던 막연함 들도 지나고 나니 '경험'이 됐다. 지금까지 정체되어 있는 느낌으로 머물어 있던 나의 스물여덟이 움직이는 것 같아 두근거리기도 했다. 앞으로 잘 살 수 있을지 같은 것의 적당한 긴장감이 맴도는 두려움! 무엇이 되어도 무엇이 되지 않아도 나답게 잘 살고 싶은 마음이 폴폴 일었다.






이삿짐센터 없이 가족끼리 짐을 옮겨 이사 계획. 당일날은 정신없을 것 같아서 연차도 냈다. 2~3주 전부터 주문했던 가구들이 오전에 집을 비워주신 후에 도착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집은 생각보다 깨끗했다. 많이 심각한 경우엔 입주 청소를 불러야 하나 고민했기 때문이다. 바닥과 창틀. 화장실. 등 동생과 함께 그냥 열심히 닦고 치웠다. 1월 말, 손발이 얼고 추웠지만 몸을 열심히 움직였다.






두 번째 날은 가구를 옮겼다. 냉장고. 피아노. 동생이 쓸 책장 등. 용달차를 빌려 열심히 옮겼다. 이외에 세탁기, TV 등 최소한의 가구는 구입했다. 옵션이 있는 원룸이 아니었기에 없는 것들은 새로 사야 했다.



낯선 공간에서의 첫 밤. 도착하지 않은 가구가 있어, 박스는 버리고 몇몇 짐은 바닥에 꺼내 뒀다. 아직 짐을 덜 풀어 텅 빈 느낌의 방 분위기가 좋았다. 겨울의 쌀쌀한 공기와 포근한 이불속의 조화가 좋았다.



이후 도착한 카펫과 블라인드. 스탠드 조명 등. 살아가며 있으면 좋을 것 같은 것들을 구입했다. 늘어나는 물건들에 마음 한편도 함께 무거워졌지만 오래 잘 쓸 물건을 내 것으로 들였다고 생각하며 넘겼다.

내가 추구하는 미니멀 라이프는 '쓸데없는 것에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을 남기고 비우는 것'이 었기 때문이다. 극단적 미니멀 라이프는 내가 지속하지 못한다. 있음으로 내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면 남겨두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며칠 뒤, TV와 인터넷 설치도 끝났다. TV장을 샀었는데 발송 전에 구매를 취소했다. 안 쓰는 미니 테이블 2개를 이어 붙이니 거뜬했기 때문. TV를 올려둔 모습이 보기에 썩 이쁘진 않지만 나중에 커다란 배경천을 두르면 깔끔하겠다고 생각을 해뒀다.





살다 보면 짐이 늘어나겠지만 최대한 이렇게 유지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이 순간의 생각을 남긴다.


원체 가구 위치를 이리저리 옮기고 레이아웃 바꾸는걸 좋아해서 지금은 또 사진과 달라진 풍경 속에 살고 있다. 이렇게 작년 12월부터 올해 1월의 생각을 돌아보니 감회가 새롭다. 우여곡절 서른 이전 독립의 꿈을 이뤘다. 만족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나만의 집을 가꾸며 살고 있다. 지금을 유지하기 위해 꾸준히 정돈하며 산다. 많이 비우고 지금의 내가 있지만 비워도 비워도 비울 것은 마법같이 생겨난다. 묵묵히 그것들을 덜어내며 마음도 홀가분해진다. 


나 스스로를 '미니멀 애송이~'라고 말하며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조금만 해이해져도 물건은 금방 불어난다. 마음의 짐이 함께 불어난다. 기억하기 위해 기록한다. 다잡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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