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학과가 박물관학 수업을 듣는 이유

방랑객 노라의 고군분투 미국 교환학생 적응기 EP_6

by 보통의 다지

글/ 사진 보통의 노라


"노라, 수강신청 실패했어?"


확정된 시간표를 공유를 하는 자리에서 친구들이 물었다.


"응? 아니? 나 완전 성공적인데."
"근데 Intro to Museum 이 생뚱맞은 과목은 뭐야?"
"이거 내가 젤 힘들게 넣은 거야."


친구들 표정이 심상치 않다. '얘는 도대체 뭐하는 애지.' 하는 얼굴로 날 오랫동안 쳐다본다.


그렇다. 나는 전공과 멀어도 한참 먼 Art History 전공에 있는 박물관 학 수업을 듣기 위해 대학 생활 처음으로 교수님께 찾아갔다. 음, 찾아간 것보다는 일단 무작정 오티에 가서 불쌍한 척을 했다고 해야 하나.


전공 학점이 한참 부족한 상태였지만 듣고 싶은 과목을 포기하면서까지 학점을 채우고 싶지는 않았다. 대학교에 입학한 후 다른 건 몰라도 이 하나만은 지키자고 스스로 다짐했기 때문에.


'성적을 낮게 받는 한이 있더라도, 배우고 싶은 건 다 배우자.'


한국의 취업 생태를 1도 알지 못하는 애송이가 하는 소리 같겠지만, 사실 맞긴 하지만, 이 다짐을 지켰기에 결과적으로 4년 반의 대학생활 동안 수강 과목에 대해서는 단 1%의 후회도 없다. 이걸 나중에 이력서에 어떻게 녹여낼지는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어떻게 하다 보니 사범대를 떨어지고 전혀 다른 분야를 전공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나의 꿈은 '그림 그리는 역사 선생님'이었다.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나마 기억나는 건 가장 오래된 나의 어린 시절 추억에도 항상 사극 드라마와 역사책이 있었다는 것. 대하드라마를 좋아하시던 부모님과 함께 '대장금', '허준', '근초고왕', '천추태후' 등 방영된 사극 드라마는 거의 다 봤던 것 같다. 용돈을 받으면 가장 먼저 사는 게 역사책이었고, 타임머신을 타고 책에서만 보던 문화재들과 사람들을 만나는 박물관이라는 장소가 나에게는 가장 신선하고 재미있는 장소였다. 대학교에 와서도 데이트 장소로 서대문 형무소를 택했으니 말 다했지.


하지만, 내가 진학한 대학에는 박물관학이 연계전공으로 있다가 인원과 재정 부족으로 사라져 버렸고, 사학과 수업은 역사를 즐겁고 깊게 공부하기에는 역부족이 있는 '대형 강의 + 주입식 강의'여서 잔뜩 실망을 하고 나왔다. 그런 와중에 교환학생으로 오게 된 학교에서 이 아쉬움을 풀 수 있는 기회를 만난 거다. 게다가 '미술'과 '역사'를 함께 배우는 박물관학 수업이라니! 한국사와 동아시아사만 공부해왔던 나에게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지만, 그래서인지 더 가슴이 뛰었다. 인기가 많은 과목이라 그런지 홈페이지에는 이미 정원이 다 차있는 상태로 떴지만 1년밖에 있지 않을 이 곳에서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 무작정 오티에 들어갔던 것이다.


자기소개를 포함해 꽤 긴 오리엔테이션 시간 내내 끝까지 첫 줄에 앉아 있던 교환학생의 부탁을 이 친절한 교수님은 차마 외면하지 못하셨고, 그렇게 나는 수업 내 유일한 타과 생으로 이 수업에 참여를 하게 되었다. 이땐 알지 못했다. 이 교수님이 내 힘든 교환학생 시절에 얼마나 큰 위로와 희망이 되어 주실지.


학교의 중심부에 있는 커다란 미술 박물관에서 진행하는 이 수업의 반은 박물관의 역사와 역할 등을 배우는 이론적인 부분과 함께 큐레이터 출신의 교수님과 함께 박물관을 돌아보며 어떻게 작품을 고르고 배치하는지부터 레이블을 작성하는지까지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로 구성이 되었다. 과제로는 한 박물관을 방문해 배운 것을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하고 반 친구들에게 소개하는 자리도 있었는데 그 덕분에 처음으로 국경을 넘어 버스를 타고 토론토에 위치한 '온타리오 박물관'을 방문하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이 수업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경험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경매 프로젝트' 내가 직접 박물관의 큐레이터가 되어 가상 혹은 실제 물건을 소개하고, 왜 이것이 내가 정한 박물관에 전시되어야만 하는지에 대해 설득하는 자리였다. 20분 남짓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나면, 내가 밖으로 나간 사이에 박물관의 담당자 역할을 맡은 반 친구들이 투표를 하고, 교수님이 그 결과와 이유를 알려주시며 간단한 피드백을 받는 식이었다.


고민이 많았다.

이 세상에 가치 있고 소중한 유물은 너무 많지만 미국인들 사이의 한국인 학생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물건을 소개하고 싶었다. 이왕이면, 흔하게 볼 수 없는. 그리고 이왕이면, 식민지 시대의 질서에서 승자였던 나라이기에 모를 수도 있는 역사의 흔적을 담은.


고민 끝에 내가 고른 장소는 제2차 세계 대전의 모습을 가장 잘 기록하고 전시해 놓은 워싱턴의 전쟁 박물관의 2차 세계 대전 전시관이었고, 내가 고른 물건은 힘없는 식민지 국가의 여인으로 전쟁에 끌려 나가 성 노예가 되어야만 했던 '위안부 수습 옷'이었다. 2017년 나리타 야마 기모토 해군비행장 위안소에서 발견되어 국가 기록원에 의해 보존 처리되었는데, 이 옷과 관련된 식민지 한국 역사의 참혹함과 일본 제국주의의 잔혹함에 대해서 알려주고 싶었다. 그 이유는 이렇다.


1) 대체로 미국은 유럽과 미국 역사 이외에는 관심이 없다. 특히 아시아의 역사에 대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지만, 대체로 서양에 비해서 수준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전공 수업을 듣는데, 첫 수업 주제가 '할리우드는 어떻게 전 세계의 미디어를 점령했는가'였다.
2) 식민지 역사를 잘못 가르친다. 한국의 광복 이후 일본이 정식으로 사과를 했고, 엄청난 배상 역시 했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미국인들은 한국인이 왜 여전히 '역사 갈등'으로 일본을 싫어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내 친구는 결국 역사 수업을 듣고 장문의 메일을 교수님께 보내 시정을 요구했고 결국 사과를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같이 수업을 듣는 친구들도 그리고 교수님도 '위안부'라는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당시 시대적 상황과 역사적 의의 설명과 함께, 시각적인 자료로 영화 '귀향(homecoming)'의 티저 시청으로 발표를 마무리했다. 갑자기 5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반 친구들은 모두 얼굴이 발개져 있었고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심호흡을 하고 어떤 질문이 들어올지를 머릿속에서 빠르게 생각하고 답변을 준비하려 했는데... 갑자기 박수가 쏟아지며 "노라, 너무 잘했어. 와우! 와우!"라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상상 프로젝트이긴 하지만 만장일치로 내 제안이 받아들여졌고, 수업이 끝난 후 교수님은 티저 영상과 함께 내 발표문을 보내달라는 요청을 하셨다. 그리고 더 기뻤던 건, 교수님과의 대화가 끝날 때까지 두 친구가 교실에서 기다리다가 나와 마주치자 "오늘 너의 발표 정말 인상 깊었어. 내가 이런 역사를 알지 못한 게 너무 부끄럽더라. 오늘 가서 꼭 영화를 볼게. 너 오늘 정말 멋졌어."라고 말해준 것. 가슴속의 무엇인가가 머리 끝까지 쏟고 쳤다가 다시 쏙 들어간 느낌이었다. 이게 바로 '보람'이라는 건가.




두 번째로 진행된 프로젝트는 미술관 지하에 보존되고 있던 작품 중 하나를 골라 직접 레이블을 쓰고, 친구들과 함께 직접 전시를 꾸며 방문객들에게 큐레이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주제도 정말 재밌었다.


"Why is this Art?"

꼭 '잘' 그린 작품만이 예술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관점에서 기획된 것인데, 나 역시도 그림을 좋아하지만 그림은 '잘'그리는 사람만이 그려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림을 놓고 있었다. 어쩌면 이 전시가 내 오랜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겼다.


전시까지 주어진 시간은 단 2개월. 보존된 수백 점의 작품 중 친구들과의 합의로 40점을 걸러내야 했고, 그다음에는 내가 맡을 한 작품을 골라야 했다. 여기까지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고 나서 처음으로 레이블을 쓰기 시작했다. 레이블이란 작품 옆에 붙을 설명을 말한다. 작품 이름, 작가 이름 그리고 작가의 기존 작품 세계 등을 고려해 레이블을 작성하는데 문제가 닥쳤다.


내가 고른 작품은 작가는 있으나 작품명이 없었고, 작가에 대한 기록도 작가의 기존 작품에 대한 자료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 상태였다. 교수님께 자문을 구했더니,

"노라, 너의 상상력을 동원해 봐. 정답은 없어."라는 조금은 생뚱맞은 조언을 해주셨다.

결국 내가 찾은 유일한 작품의 단서인 '작가는 의식의 힘을 믿었고, 일상생활에서 발견이 되는 신성함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라는 것을 나의 상상력을 더해 100자짜리 레이블을 완성했다. 한국어였으면 더 빨리 완성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나라의 언어로 처음 보는 작품에 대해 레이블을 쓰는 건 상상 이상으로 어려웠다.

결국 나는 이렇게 제목을 붙였다. 'IF YOU WERE A ( ), WHAT WOULD YOU DO?'

일부러 빈칸을 만들어 이 작품에 대해 내 생각을 듣기 전에 사람들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궁금하게 만들고 상상을 하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게 왜 예술이야?'라고 의심을 받을 만한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이 있었다. 치즈 피자 스파게티로 구성된 이 그림들이 어떻게 하면 예술이 될 수 있는지, 예술이라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이 그림을 그린 작가는 어떤 사람인지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비록 수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전시였지만, 학교와 교수님은 실제 전시처럼 나름 뷔페 음식도 준비를 해 주셨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와서 이야기를 나누고 또 전시에 대한 피드백도 주시고 가셨다. 기말 프로젝트라기보다는 축제 같았다. 그 누구도 성적에 대해 고민이 없는 것 같았다. 어떻게 이걸 더 재밌게 즐기지만 생각하고. 그 분위기가 좋았다.


그러나, 큐레이터 역할 수행은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처음 해보는 경험에 어떻게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하나 많이 고민도 되고 아직은 너무나도 부족한 영어 때문에 사람들이 다 듣지 않고 떠나가면 어쩌지라는 고민도 했다.


처음에는 쭈뼛쭈뼛 다가가 "안녕하세요.... 저 혹시..."라고 사람 뒤통수에 대고 개미만큼 말을 하기도 했고, 불안감에 웃음기도 사라졌다. 그때마다 같이 수업을 들을 친구들이 와서 자기한테 설명을 하면서 연습하라고 제안도 해주고, 교수님도 어깨를 토닥여주시면서 '할 수 있어'라는 말을 해 주셔서 자신감이 생겼다. 나중에는 "안녕하세요. WHY IS THIS ART 전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제가 아주 재미있는 작품을 소개해 드리고 싶은데, 시간 괜찮으신가요?"라고 말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하다. 어디서 이런 똥배짱이 나왔는지. 이렇게 나의 첫 박물관학 수업이, 나의 한 학기가 끝나가고 있었다.

.

.

.

누군가는 시간낭비라고 할 수도 있겠다. 전공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취업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모든 경험을 꼭 '취업'과 '스펙'안에서만 생각해야 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든다. 인생은 길고, 하루하루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이 복잡한 세상에서 하루하루 내가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하고, 또 몇 년이 지나도 '아 그땐 그랬지.'하고 입꼬리를 씩~하고 올릴 수 있는 그런 추억 하나 있다면 그거 또한 꽤 괜찮은 삶이 아닐까.


마지막 전시 날, 교수님은 나에게 3장의 종이를 주셨다. 다음 학기에 열릴 교수님의 새로운 수업, 'Women in Art' 강의 계획서였다.


"노라, 중간발표 때 위안부에 대해 발표하던 게 인상 깊었어. 다음 학기에 미술사 속 여성 미술가들의 삶을 다룬 수업을 할 건데, 꼭 들어줬으면 좋겠어.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수강 신청에 실패하더라도 네 자리는 꼭 빼놓을게."


이렇게 난 다음 학기에도 교수님과 함께 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교수님의 방문 한번 열기 힘들었는데, 나의 생각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또 도와주시려는 모습에 처음으로 '이게 대학이구나', '이게 배움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행복해졌다.


교수님, 올해 말에 학교 놀러 가겠다고 했는데 아마 못 지킬 것 같아요. 죄송해요. 건강히 만 계셔 주세요. 보고 싶어요. 많이 많이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너네가 왜 캐나다 추수감사절을 챙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