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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다지 Jan 21. 2024

우정도 연애처럼

일곱 번째 편지: 친구는 또 다른 의미의 평생의 동반자

20대에 가장 많은 변화와 깨달음이 있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인간관계가 아닐까 싶어. 특히 친구들과의 우정. 앞선 편지에서 이야기를 나눴던 꿈이나 업이 노력의 결실로 맺어진 열매라고 본다면 우정은 이 주변을 튼튼하게 붙들고 끊임없이 영양분을 공급하는 토양 같거든. 토양이 아플 땐 열매도 시들 거리고, 토양이 건강해지면 열매도 탐스럽게 익어가지.  혼자서 생존은 가능하지만, 진짜 성장을 위해서 꼭 필요한 존재, 친구가 오늘 편지의 주인공이야. 


너는 친구가 몇 명이야? 조금 이상한 질문이려나. 2024년 새해를 맞아 처음으로 카카오톡에 있는 친구들을 정리했어. 사실 자주 연락하는 친구들은 그룹톡을 포함해서 12명이 될까 말까인데 카카오톡 리스트에는 무려 820명이 있더라고. 동아리에서 만나 얼굴도 잘 기억이 안나는 사람들, 대학교 팀 프로젝트에서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이름도 낯선 먼 옛날 소개팅 혹은 미팅 자리에서 만난 사람들까지. 이들의 연락처를 다 지우다 보니 지금은 80명만 남게 되었는데, 얼마나 개운하던지. 예전의 나였으면 미련과 아쉬움이 가득할 텐데 왠지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 있지?


참, 친구 수는 왜 물었나고? 사실 20대 초반까지 나는 친구 수에 참 많이 집착하는 아이였거든. 작은 도시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서울로 대학을 오게 되었는데, 당시 공부 커뮤니티인 수만휘 혹은 수시 면접 때 만나 오티 때부터 이미 그룹을 이룬 애들이 대부분이었고, 어쩐지 나는 외딴섬에 혼자 떨어진 존재가 된 것 같았어. 또, 1학년을 마치자마자 바로 전과를 하다 보니 새로운 과에서도 쉽게 친구를 사귀지 못했는데,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전국 단위의 동아리에 관심이 갔고, 운영진으로 3년 동안 활동하게 돼. (물론, 오티 때 나에게 말을 걸어준 친구, 그리고 룸메이트였던 친구와 삼총사가 되어 아직도 가장 친한 친구로 남아 있어)


20살 때 들어간 동아리는 중﹒ 고등학교 동생들에게 진로와 공부법 등의 멘토링 활동을 하는 곳이었는데 얼마나 직전에 펑크를 내는 사람들이 많은지, 수업이 없는 날에는 운영진인 내가 급하게 가서 그 자리를 매워야 했어. 보통 점심때쯤 끝나는 멘토링 이후에는 그날 참석한 사람들과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고, 새로운 사람들이 오는 발대식과 지부 MT, 전체 MT, OT 등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했어. 또 여기서 친해진 사람들이 주말에 부르면 바로 달려갔고. 이때 들어간 돈을 생각하면 눈물이 날 지경인데, 그땐 그게 내 인생에서 정말 중요했었던 것 같아. 그리고 이런 노력들이 아름다운 결실을 맺을 거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한 사람이 아닌 여러 명과 의미 없는 이야기로 가득했던 이 술자리들은 진한 우정대신 술살만 얹어주었고, 교환학생으로 동아리를 떠나게 되었을 때 함께 점점 잊혔어. 편입, 취업, 결혼 같이 기쁜 소식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았거든. 오랜 시간 선생님이 되는 것을 꿈꿔왔고, 재미있는 대학 생활을 원했기에 3년간의 동아리 활동이 후회되지는 않지만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에 조금은 허탈한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어. 


시간이 조금 더 흘러 20대 중반이 되었을 때는 더 이상 친구의 수에 연연하지는 않았지만 옆에 있는 모든 이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 했어. 친구가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힘들어할 때마다 잠옷 바람으로 지하철을 타고 달려갔고, 내 과제를 미루고 친구의 자기소개서를 대신 써 주기도 했지. 하지만 너무나 슬프게도 그런 친구들은 더 이상 내가 필요하지 않아 지자 내 곁을 떠났고 몸과 마음을 다 준 나의 열매는 또다시 시들시들해졌어. 


그러고 이 글을 쓸 수 있게 된, 20대의 마지막을 향해 있는 나는 새로운 인연을 만나기 어려워졌고 내 곁의 소중한 친구들과도 함께할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에 조금은 슬프지만 위에서 말했던 경험 덕분에 살면서 가장 크고 탐스럽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있는 중이야. 수많은 변화를 겪고 때때로 상처도 받으면서 얻게 된 소중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나만의 울타리를 만들 수 있게 되었거든. 그 깨달음은 바로, '우정도 연애처럼' 생각하자는 거야. 나에게 이유 없이 아픔을 주거나, 당연하게 희생을 강요하는 사람이 아닌 신뢰와 예의를 바탕으로 어떤 일이든 내 옆에 있어주는 사람. 이 관계를 위해 노력해 주는 사람에게 집중하고 또 나도 최선을 다하는 거지. 그러다 보면 많은 친구들이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자연스럽게 진짜 친구들과 함께하는 건강한 우정만 남더라고. 생각해 보니 세상에 나쁜 경험은 없는 것 같네. 


이런 친구들은 어떤 상황이든 너의 성장과 행복을 위해서라면 눈치를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할 거야. 단, 아주 다정하고 예의 바르게. 마치, 너무 마음이 힘들 때마다 훌훌 떠나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진짜 행복의 기준을 물어봐 준 J처럼. 주로 대문자 T성향이 강한 이런 친구들의 심장을 꿰뚫는 조언에 가끔은 놀랄 때도 있겠지만 절대 무시하거나 너의 의견만을 고집하지 말고, 어떤 의도로 나에게 그런 조언을 해 주었는지 먼저 생각해 보자.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에 새로운 길이 있을지도 몰라. 


또 이런 친구들은 가장 어려울 때 솔직하게 아픔을 보여주고, 너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줄 알지. 대학동기이자 가장 친한 친구인 I는 비슷한 시기에 국제연애를 하고 또 혼인신고를 했지만 갑작스러운 이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의 결혼식에서 가장 큰 역할을 맡아주고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어. 그녀는 나의 행복을 자신의 상황과 떨어뜨리며 당시의 아픔을 숨기지 않고 모두 털어놓아주었는데, 그 덕분에 나도 편하게 그 순간을 즐기고 또 한편으로는 친구를 도울 수 있었지. 이렇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과연 진심을 다해 행복을 빌어줄 수 있을까? 


포켓몬스터의 한국 주제가에는 이런 가사가 있어. 

"피카츄 라이츄 파이리 꼬북이 ~~~ 서로 생긴 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모두 친구!"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기도 해. 


맞아. 우리의 친구들은 얼굴도 다르고, 취향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가치관도 모두 달라. 하지만 최선을 다해 그들을 존중하고 응원하고 또 함께 성장한다면 서로에게 가장 튼튼한 토양이 되어 줄거라 믿어. 그러니 우정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연애처럼 고민하고 노력하자. 인생에 있어 또 다른 의미의 동반자가 되어 줄 테니까. 


10대를 지나 20대에도 오래 함께 하고 싶은 평생의 인연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 편지도 이만 줄일게. 곧 다시 만나! 


[출처] 네이버 블로그 '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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