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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다지 Jan 14. 2024

100%까지 기다리지 않는 용기

여섯 번째 편지, 우리는 평생 완벽하지 않다.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라는 말을 너도 들어봤을 거야. 20대의 마지막을 향해 있는 요즈음, 그 말이 더 피부로 와닿는 것 같아. 전세 대출, 이사, 이직 그리고 결혼까지 인생의 큰 산을 끊임없이 넘었던 한 해를 보내서일지도 모르겠어. 19살의 너도 다양한 도전을 하고 있겠지? 회장 선거에도 나가보고 축제 때 노래도 불러보며 종종 대학 모의 면접에도 가보았을 거야. 그러고 보니 첫 대학 모의 면접 때 입학 사정관(내가 고등학교 때 처음 생긴 이상하고 신기했던 제도야)들 앞에서 눈이 부을 정도로 펑펑 울고 너무 창피해서 한동안 담임 선생님을 피해 다녔던 것이 생각이 나네. 가톨릭 대학교인가 세종대학교인가에서 오셨었는데 너무 따뜻하고 다정한 질문이 오히려 힘들었던 시기에 눈물 버튼이 되었던 것 같아. 그 두 분은 얼마나 당황하셨을까. 


19살이 지나고 20대가 되면 잠시나마 우리의 울타리가 되어주었던 학교에서 벗어나 더 다양한 도전을 하게 되는 것 같아. 동아리 참여, 다양한 전공 및 정부 프로그램, 인턴 그리고 원한다면 교환학생과 워홀까지. 그 과정에서 내가 너무나도 아쉽고 후회가 되는 단 한 가지는 100%에 도달할 때까지 꽁꽁 나를 숨기고 보여주지 않았다는 거야.


특히, 대학교 4학년 때 동기들이 열심히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전공을 살려 이곳저곳에서 일 경험을 쌓을 동안 나는 불안해하기만 하고 막상 면접까지 가보지도 못했어. 지금보다야 낫지만 그때 당시에도 경제 상황이 그리 좋지는 않았는데 그 덕분인지 내가 지원하려는 인하우스 마케팅 쪽은 가뭄에 콩 나듯이 채용 공고가 떴고, 써져 있는 지원 자격과 우대사항은 시작도 하기 전부터 사람을 움츠려 들게 하더라. 


인턴 혹은 2년 차 이하 신입 채용의 자격 요건과 우대 사항은 대충 이러했어. 


[자격 요건]

◼️ 4년제 학사 재학 혹은 졸업 (광고 홍보, 경영, 마케팅 전공 우대)

◼️ 논리적인 사고와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빠르게 문제해결을 할 수 있는 분

◼️ SNS 기획 및 운영을 해 본 적이 있고, 기본적인 디자인 작업과 영상 편집이 가능한 분 

◼️ GA, Amplitude 등을 활용하여 기본적인 데이터 분석과 인사이트 도출을 할 수 있는 분 

◼️ 엑셀, 파워포인트, 워드를 능숙하게 다루시는 분

◼️ 영어로 의사소통이 원활한 분 

◼️ 관련 업계 관련 아르바이트 경험이 1년 이상 있으신 분


[우대 조건]

◼️ 포토샵, 프리미어 프로, 일러스트레이터 등 어도비 툴을 활용하실 수 있는 분.

◼️ 기본적인 데이터 분석과 인사이트 도출을 할 수 있는 분 

◼️ 관련 공모전 수상 경험이 있으신 분 

◼️ 파이썬, SQL 등 활용 가능하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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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슈퍼 히어로도 아니고 너무 했다 싶지? 하지만, 이렇게 자신들의 희망 사항들을 모두 나열한 채용 공고를 올리는 곳이 적지 않았어. 특히 소규모 인원으로 다양한 것을 하는 스타트업 인하우스 마케터는 더더욱. 


물론 나도 도전해보지 않았던 건 아니야. 이 자격 요건에 맞추기 위해 열심히 엑셀을 공부했고, 그래픽 수업도 틈틈이 들으면서 공모전에도 자주 나간 편이었어. 하지만 나는 언제나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탓에 준비에만 몰두한 채, 시도를 하지 않았지. 예를 들어, 미국에서 영어로 수업을 듣는 것에 문제가 없었을지라도 비즈니스 영어는 모르니 준비가 덜 되었다고 생각을 했고, 포토샵으로 썸네일을 만들고 동아리 홍보 영상 정도는 가뿐하게 편집할 수 있어도 능숙하지는 않으니 요건에 충족되지 않는다고 보았어. 특히 내가 다닌 과에서는 광고 홍보 이론과 전략을 짜는 것에 맞춰져 있어 데이터 부분은 따로 공부를 해본 적이 없었기에 그런 쪽의 내용이 들어가 있으면 모두 제외를 해버렸어. 


눈 딱 감고 서류를 넣어서 붙었던 곳에는 PT 면접에서 부족한 실력이 들통날까 가지 않은 적도 있고, 공모전 수상 덕분에 서류 전형 프리패스권을 얻었던 어느 대기업도 채용 공고를 모두 만족시킨 친구들과 경쟁할 것이 무서워 제대로 지원도 해보지 않고 호주로 도망을 가버렸지. 참 겁쟁이지?


지구 반대편 호주에 도착해도 100%가 되어야 시도를 하는 습관은 금방 사라지지 않았지만, 생존을 하기 위해 생각하지도 않은 일들을 하다 보니,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꽤나 능숙하게 일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니 용기가 생기더라. 외국인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외딴곳에서 음식도 팔고, 아이들도 봐주면서 말이야. 그게 코로나로 인해 반 강제로 한국에 귀국을 하게 되었을 때 완벽하다고 느끼지 않은 상태에서 지원을 하고 우연히 마케터로서의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야. (물론, 그때도 면접장에서 사시나무처럼 떨듯 했고 얼굴은 파래졌던 건 비밀이야)


외국계 로봇 스타트업과 그로스 마케팅 회사를 거쳐 2년 차 브랜드 마케터가 된 지금 그때의 나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꼭 말해주고 싶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고, 우리는 앞으로도 쭉 완벽하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너는 아니 나는 계속 노력하고 성장하는 멋진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고. 그리고, 회사에서 역시 다이아몬드처럼 똑똑하고 완벽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닌 울퉁불퉁하지만 함께 일했을 때 시너지가 나는 한 조각의 퍼즐을 찾고 있는 것이라고도. 면접자리에서 당당히 "제가 좋아하는 차는 도라지 차와 우엉차"라고 말해 대표님을 당황시키고도 차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건 같은 이유가 아닐까? 


가끔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 길을 걷다 보면 몇 년 전 공모전에서 수상했음에도 무서워서 지원 조차 해보지 않았던 회사의 높고 찬란한 건물을 만날 수 있는데, 이제는 3년이라는 유효기간이 지나 더 이상 프리패스권을 사용할 수 없지만 여전히 아쉬움은 마음 깊은 곳에 진하게 남아 있어. 겁을 먹고 힘들게 얻은 기회도 제대로 잡지 못한 나에 대한 원망과 함께. 


여전히 새로운 도전은 겁이 나고, 생각이 많아지지만 이제는 없는 자격 요건을 맞추기 위해 시간을 쓰기보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자질과 경험들을 잘 매만지고 가꿔서 보여줘 보려고. 몇 년 전 아쉽게 놓쳤던 이 회사를 포함해서 말이야. 


그러니, 우리 100%가 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자.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0보단 클 거니까. 

고민하는 순간보다 부딪히는 순간들이 더 많아지길 바라며, 오늘 편지도 이만 줄일게! 다음 주에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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