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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다지 Jan 07. 2024

직업을 선택하는 방법

다섯 번째 편지, 가장 중요한 일에 왜 '나'는 빠져있지?

그동안 잘 지냈어? 나는 이번 주 내내 '갯마을 차차차'라는 드라마에 홀딱 빠져서 잠을 잘 못 잤어. 무려 2년 반 전에 나온 드라마인데 이제야 정주행 하는 게 참 웃기지? 내가 또 쓸데없는 오기가 있어서 남들 다 볼 때 보는 건 싫더라고. 기다리는 것도 잘 못하고. 무튼, 내가 한 주 내내 이 드라마에 빠져 지냈던 건 물론 신민아와 김선호의 빛나는 케미도 한몫했지만 홍반장의 삶의 태도 때문이었어. 


김선호가 연기한 홍반장(홍두식)은 우수한 성적으로 서울대 공대를 수석으로 입학하고 펀드매니저로 일하다 고향인 강원도 공진(**실제 배경은 포항이래)으로 돌아온 인물로, 부동산 중개와 시공부터 낚시와 요리까지 일상에 필요한 거의 모든 능력을 가지고 주변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지. 신민아가 연기한 치과의사 혜진이는 시골에 사는 홍반장이 사실은 서울대 공대를 나온 인재라는 사실을 처음에는 믿지 못하고, 동기들 사이에서 창피를 당할까 골프장에 데려가는 것을 꺼려하기도 해. 필드에서 치는 골프는 여전히 돈 있는 사람들을 위한 스포츠라는 인식이 강하니까. 


[출처] TVN | 다수의 자격증을 보유한 홍반장


물론 드라마는 달달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었지만, 마지막 회에서도 두식에게 "반장 말고 더 넓게 생각해 보는 건 어때? 능력에 비해 너무 아깝잖아" 라며 시의원, 국회의원을 추천하는 혜진을 보며 사람의 직업은 어쩌면 나의 과거 학력 및 경험과 다른 사람들의 기대로 선택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오랜 시간 나의 아이덴티티가 될 수 있는 직업이라는 영역이 큰 그림을 짜고 세부 계획을 생각하는 형식이 아니라, 바텀 업으로 결정되는 경우를 정말 많이 봐왔거든. 


내 친한 친구 중 하나인 J는 어릴 적부터 자기만의 패션 철학이 있는 아이였어.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운동회나 축제 때마다 친구들의 헤메코를 담당해서 참 인기가 많았지.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고 패션쇼에 참여하고 싶다고 책상에도 써 놓았었는데 부모님과 선생님의 강력한 반대 때문에 나와 함께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었어. 패션 감각만큼이나 뛰어난 성적이 아까우셨던 거지. 그렇게 진학한 고등학교는 간절했던 꿈을 잊게 할 만큼 바쁘고 치열했고 그녀는 성적에 맞춰 대학에 진학하고 좋은 기업에 간 후 20대의 마지막이 된 지금 다시 어린 시절 꿈을 찾기 위해 퇴사를 결정했다고 해.


친구는 종종 말해. '대학과 회사 생활이 그리 싫지만은 않았지만, 10년 전에 시작을 했으면 정말 필요한 지식과 경험들을 쌓으며 더 행복하게 공부를 할 수 있었겠다'라고, 돈과 시간도 많이 아낄 수 있었을 거라면서 말이야. 대학교 학비와 생활비, 교환학생 생활비, 취업 준비 비용을 다 합치면 거의 1억이 된다는 게 여전히 놀랍다. 그때는 인문계에 가지 못한 아이들은 공부에서 거리가 먼 혹은 질 나쁜 아이들과 어울린다는 이상한 편견에 시달려야 했던 시기였기에 어른들의 결정이 조금은 이해가 가면서도 옆에서 우리의 성향과 꿈을 조금은 이해하고 응원해 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어. 


하나 고백하자면, 사실 나도 그 어른들과 함께 친구의 성적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했었어. 멘토링을 오는 선배들의 말을 듣다 보면 좋은 성적 > 좋은 대학과 전공 > 좋은 회사 >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 같았거든. 이 루트를 타는 것이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으며 부모님께도 효도하고 나도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지. 그렇게 계속 가방끈을 연장하려고 했던 것 같아. 어떤 가방을 메고 싶은 것인지도 알지 못하면서.


세상에 나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은 대학 졸업 후 반 도피식으로 호주에 갔을 때 알았어. 대학 진학률이 한국의 반도 되지 않은 나라에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자유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은 내가 아는 그 루트를 아는 사람들만이 아니었거든. 자기가 잘하는 것을 일찍이 발견하고, 꾸준히 성실하게 경험을 쌓는 사람들,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부딪히는 사람들이었지. 나는 어린아이들과 함께하는 일, 카페에서 음식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가방끈만 늘리면서 정작 관련된 경험은 아무것도 없는 것에 점점 작아지고 후회되더라고. 그러면서 직업을 선택하는 일은 그 어떤 것보다 가장 큰 그림을 필요하다고 말한 이유야. 


혹시, 어떤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된다면 준비물이 단순히 너의 '성적'과 '부모님들의 기대' 혹은 그 직업의 '평판' 같은 외부 요인이 다는 아니었으면 좋겠어. 네가 꿈꾸는 '삶의 모습'과 '라이프 스타일' 같은 내적인 요인도 함께 고려해 주면 좋겠다. 


전자처럼 직업을 선택하게 된다면 이렇게 되겠지. ex) 내신 성적 전교 3등, 경기도 거주,  경제경영 동아리 활동 다수, 전교 회장 경험 => 서울에 위치한 TOP 5 대학교의 경영 / 경제 전공 입학 후 금융권 혹은 경영전략 / 인사 취업 준비. 누가 봐도 아주 스무스하고 모범적인 길처럼 보여. 근데 여기서 너는 어디 있어?


후자처럼 직업을 선택하게 된다면 이런 질문들에 먼저 생각하게 돼. 나는 한국에만 있을 것인가, 국외로 나갈 것인가? 국외로 간다면 어느 나라에서 살고 싶은가? 한국에 있다면 경쟁은 심하지만 인프라가 잘 구축된 서울이 좋을까 인프라는 부족하지만 느리고 평화로운 시골이 좋을까? 그렇다면 그 지역에서는 어떤 일자리가 있을까, 전공은 어떤 것이 필요할까 나는 그 전공을 하면 행복할까? 그게 아니라면 어떤 것들에 집중하고 포기할 수 있을까? 삶의 우선순위를 정해볼까? 등등. 



이런 질문들에 답을 하다 보면 나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고, 직업을 넘어 너의 삶을 잘 설계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될 거야. 참, 벌써 그 루트의 중간에 와 있어서 늦었다고 생각한다면 아쉬움은 잠시 뒤로 하고 설레는 마음을 가져보자. 너의 그 시간들이 결코 시간 낭비는 아니니까. 


대학에서 처음 만난 친구 N은 이제야 삶의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 행정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로펌에서 일하다 곧 퇴사를 하는 친구는 호주에서 간호사로 일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어. 도시의 화려한 삶보다 언제든 바다에 뛰어갈 수 있는 시골 마을에서 살고 싶다는 그녀는 사람을 도우면서도 온전히 존중받기를 원했고, 미래에는 자신의 아이들과 충분한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어. 물론, 피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는 나와 달리 실험도 좋아하고 말이야. 그리고 그녀가 지금까지 공부한 법은 다른 나라에서 외국인으로서 살면서 조금의 보탬이 될 것이고, 카페, 콜센터, 식당 등 한국에서의 수많은 아르바이트 경험은 호주의 비싼 학비를 마련하는 일에도, 다정하고 따뜻한 간호사가 되는데도 큰 도움을 줄거라 생각해. 


하루 종일 문제집을 풀며 좋은 성적을 받는 모범생도 좋지만, 너의 삶을 직접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나도 행복한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내 마지막 20대를 잘 보내볼게. 


세상은 계속 변하고, 그에 맞게 주변의 기대와 직업의 선호도 역시 빠르게 변할 거야. 그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고, 후회하지 않도록 나의 몸과 마음의 소리에 집중해 보자. 항상 내가 옆에서 너의 모든 순간과 선택들을 응원한다는 것을 잊지 말고. 


그럼 오늘 편지도 이만 줄일게, 다음 주에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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