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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다지 Dec 24. 2023

대학 시간표의 의미

세 번째 편지: 성장과 성적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그동안 잘 지냈어? 앞에 보냈던 두 번의 편지에서는 네가 지금 겪고 있는 진로 고민에 대해 나의 경험과 의견을 들려주었다면 오늘은 조금 이르지만 대학에 진학을 했을 때 꼭 한 번쯤은 겪게 될 또 다른 고민에 대해 얘기해 볼까 해. 바로, 수업 시간표에 대한 이야기야. 


레벨별 (성적별) 이동 수업이 전부였던 10년 전과는 다르게 요즘은 체험형 수업이나, 맞춤형 수업이 많이 도입이 되었다고 하더라. 나의 진로에 따라 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거지. 그럼에도 대학교 입시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제약이 있다고 느껴지는데, 이제 대학에 오면 차원이 다른 자유가 주어져. 오예! 졸업 요건을 충족시켜야 하는 조건이 있기는 하지만, 채워야 하는 전공학점과 교양 학점 중에서 원하는 교수님과 수업을 맘껏 선택해서 나만의 시간표를 꾸밀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나에겐 엠티, 미팅과 함께 대학 생활을 생각할 때 가장 기대되는 부분이었어.


그럼 과연 어떤 수업을 들어야 잘 들었다고 소문이 날까? 

이 질문에 답을 하려면 이 질문을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네가 꿈꾸는 대학수업은 어떤 모습이니?'


내가 꿈꾸는 대학 수업은 교수님이 던져준 주제에 대해 팀원들과 치열하게 토론하고 발표하고 한 명 한 명 세심한 피드백을 듣는 거였어. 시험을 위한 진도 빼기식, 암기 위주의 한 방향 수업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답을 찾고 교수님들의 경험과 폭넓은 조언을 들을 수 있는 그런 수업을 듣고 싶었지. 사실 모든 대학 수업이 그럴 거라고 생각했고.


하지만 대학 수업도 고등학교와 비슷한 부분이 많더라. 입시를 위한 공부가 끝났어도 취업을 위한 공부를 해야 했으니까. 취업을 위한 공부란 서류전형에서 유리할 수 있도록 성적을 잘 받는 걸 뜻하고. 사실, 비싼 서울 사립 대학교 학비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려면 그런 수업을 선택하는 것이 이득이기도 했어. 여전히 상대평가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국 대학교에는 A 이상을 따는 건 소규모 수업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그럼에도 고등학교와 달리 대학에서는 이 둘 중에 어떤 수업을 들을 것인지에 대한 결정권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해. 


아무튼, 이런 이유로 대학에서 알게 된 친구들, 같은 과 친구들의 대부분은 80명이 넘어가는 대형 강의를 즐겨 듣곤 했지. 출석 체크를 잘 안 하거나, 시험이 오지 선다형이라고 하는 수업들은 광클(*광속 클릭, 마우스로 빠르게 수업을 신청하는 것을 의미) 이 필수였지. 그리고 실제로 그런 친구들이 성적을 잘 받았던 건 사실이라 가끔 내 선택이 맞았던 것일까 후회한 적도 있었고. 


중, 고등학생을 위한 멘토링 동아리를 오래 참여했었는데, 굉장히 중요한 강연을 앞두고 대표 강연자 10명을 뽑았던 적이 있어. 근데 그 조건을 강연 내용이 아니라 성적순으로 정하더라. 그때 같은 학교에 다니던 친구가 뽑혔었는데 학교에서 성적 따기 쉬운 과목들로 유명한 수업들만 3년 내내 들었더라고. 물론 그 친구도 그 성적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거라는 것을 알기에 웃으며 축하해 주었지만 왠지 공평하지 못하단 생각도 들고, 괜스레 억울한 마음은 숨길 수 없었어. 회사 면접 때도 무슨 과목을 어떤 식으로 들었는지보다는 전체 성적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회사들이 많았고 말이야. (3년이 지난 지금은 달라졌기를 바라)


갈대같이 흔들리는 마음을 그래도 끝까지 바꾸지 않았던 건 수업을 선택할 때 '새로운 경험'과 '자율적 학습'을 가장 우선시하는 나의 기준이 있었기 때문인데, 멋모르는 대학 시절이 지나 20대의 마지막 한 해만을 남겨두는 지금은 그 시절의 나에게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어. 그 당시는 수업은 너무 어렵고, 과제는 미치도록 많고, 팀플은 지치고, 그렇게 해서 받은 성적은 너무 억울할 때가 많았는데 20대 초반에 그렇게 어려움에 자주 부딪치고 치열하게 준비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해 볼 수 있어서 지금의 내가 맡은 일에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임한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 같거든. 성적 장학금은 8학기 동안 단 한번, 1학년 1학기 때만 받을 수 있었지만 나는 그동안의 등록금이 결코 아깝지 않아. 공부도 공부지만, 그 외적으로도 많은 배움이 있었다고 생각해서. 물론 그 안에서도 최선을 다해 좋은 성적을 받는 건 너의 삶에 아주 큰 도움이 될 거야. 


그러니 대학에 간다면, 네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이곳에 있는지를 잘 생각해 보았으면 해. 취업을 위해서 좋은 성적을 받고 싶은 것인지, 너의 미래를 위해서 빠르게 성장을 하고 싶은 것인지 말이야. 수업을 선택할 때 너만의 기준을 만들어 놓는 것도 좋고! 


마지막으로, 나처럼 후자를 선택하게 된다면 기쁜 마음으로 추천하고 싶은 수업이 있어. 참고용으로만 남겨놓을게 :) 


하나,  정치, 경제, 사회학 개론 수업: '개론'은 대부분의 친구들이 꺼려하는 굉장히 폭넓고 어려운 수업이야.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지. 하지만 1, 2학년 때 이런 기초 과목들을 잘 들어둔다면,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생길 거야. 빠르게 변화하는 시기에 누구보다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지도!


둘, 국제 개발과 빈곤 수업 (혹은 사회 문제): 세상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빈곤 문제 역시 지리, 역사, 문화적인 것과 함께 이해를 해야 하지. 이 수업을 들으면서 감성적으로 현상을 바라보았던 것에서 어떻게 하면 한정된 자원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었어. 보통 이런 수업들은 교내 자원봉사 프로그램들과 이어져 있는데, 수업만 듣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직접 봉사 프로그램을 기획해 보고 경험해 보는 것을 추천해. 나는 필리핀으로 다녀왔는데 내 인생에 가장 큰 터닝 포인트 3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배움을 얻었어. 


셋, 젠더 연구 관련 수업: 젠더라는 단어를 보고 어쩌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이 수업의 목표는 여성의 인권을 무조건 높여야 한다는 것이 아니야. 패션, 과학, 인문, 방송 등에서 어떻게 각각의 성을 다루고 사람들이 인지를 하는지 앞으로는 세계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데이터를 통해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방식을 배우지.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차별들과 편견들을 알 수 있었던 수업이었어. 젠더 갈등과 혐오심이 점점 심해지는 요즘, 성별에 상관없이 추천하고 싶은 강의야. 


추가로, 대학 수업을 들으며 꼭 해 보았으면 좋겠는 것들도 함께 적어둘게.


하나, 팀플이 많은 수업을 들어봐. 그리고 팀장이 되는 경험을 해 보았으면 해. 팀원들이 각각 잘하는 것과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래서 최선의 결과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폭넓게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선물해 줄 거야! 물론, 처음에는 완벽히 해내긴 어려울 거야. 나도 초반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비난도 많이 듣고 그게 무서워서 혼자서 모든 것들을 준비하다가 막상 내 시험은 망한 적도 있으니까. 하지만 중간에 그만두진 않았으면 좋겠다. 노력하다 보면 예상치 못할 때 가장 큰 보람과 희열을 가져다줄 거거든! 


둘, 학교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수업을 들어보자. 학교에서 배운 지식들이 정말 이 세상에 쓸모가 있는 것들인지를 실험해 보는 건 공부에 재미와 의미를  더해줄 거야. 다른 학교와 함께 캠페인을 기획하는 것도 좋고, 외부 업체를 초청해서 강연을 준비해 보는 것도, 텀블벅을 진행해 보거나 공모전에 참여해 보는 것도 포함이야. 나는 한복 동아리를 하면서 인사동에서 캠페인을 해보고 공모전은 꽤나 자주 참여를 했었는데 문제를 파악하고 나만의 방법으로 해결 방법을 짜는 것을 좋아하다는 깨달음을 얻었어. 그 덕분에 브랜드 마케터로 일하고 있는 것 같아. 


셋, 질문하는 것을 절대 두려워하지 말자. 나는 고등학교 때 정적분에 대해 질문을 했다가 '진도를 빼야 하니, 일단 외우고 나중에 시간 나면 질문을 할래? 수능에는 안 나와'라는 소리를 들었었어. 선생님의 태도도 문제였지만, 몇몇 친구들의 눈총에 질문하는 것이 무서워지더라. 대학에 와서도 내가 하는 질문이 너무 쉬운 것일까 봐, 내 모습이 멍청해 보여서 나와 아무도 팀을 해주지 않을까 싶어 거의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이런 내 모습이 더 바보 같아 보인다는 것을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 알았어. 그 후로는 궁금한 것은 적극적으로 물어보았는데 대학은 역시 고등학교와 다르더라. 그 누구도 너를 평가하지 않으니 무서워하지 말고 질문하렴. 질문하기 전에 충분한 검색과 공부를 하는 건 잊지 말고. 


종종 입시 공부를 하다 지칠 때 있잖아. 

그럴 땐,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서 커리큘럼을 확인해 봐. 원하는 학교의 캠퍼스에 앉아 있는 너의 모습을 상상하며, 또, 어떤 수업을 듣고 어떻게 공부를 하고 있을지 생각해 보면서. 


오랜 시간과 수많은 노력으로 일궈낸 너의 대학 생활에 오직 취업을 위한 선택들만 존재하지는 않길 바라며, 주변의 말에 쉽게 흔들리지 않도록 시간표를 만드는 너만의 기준과 의미를 세울 수 있기를 응원하며, 오늘 편지도 이만 줄일게. 다음 주에 다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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