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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다지 Dec 31. 2023

꿈은 한 단어가 될 수 없어요.

네 번째 편지: 너의 장래희망은 그저 누군가의 희망일지도.

19살의 나에게, 네 번째 편지 - 직업 01


'혹시 너는 어떤 꿈이 있니?' 이렇게 질문을 하면 보통 어떤 '직업'을 말해야 하는 줄 아는 사람들이 많더라. 10대인 너도 그렇지만 20대의 마지막을 앞두고 있는 나의 친구들도 심지어 우리보다 한 시대를 더 살아오신 어른들 조차 말이야. 아주 흐릿하게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자.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너는 어떻게 대답했었니? 너무 오래전 일이라 다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적어도 10개가 넘는 것들을 말했던 것 같아. '다양한 언어를 쓰는 사람들을 만나서 친구가 되고 싶다'부터 '전통 한복들을 만들어 보기', '여행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되는 것',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책을 만들어 보는 것', '나만의 전시회를 열어보기' 등등 지금 생각하면 현실성이 조금 떨어지는 것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지. 


그리고 10년 정도가 흘렀을까. 10개가 훌쩍 넘던 나의 꿈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잊혀 가고 버려지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 하나의 꿈조차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남들이 생각하기에 꿈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지. 나의 꿈들은 현존하는 하나의 직업으로 나타낼 수 없었거든. 이때 나는 대학교 신입생이었는데 자신만의 꿈을 가지고 24시간을 촘촘하게 사용하는 동기들이 부럽기도 하고 멋있기도 하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내가 너무 한심해 보이더라. 장래희망에 썼던 직업과 학과에 진학하지 못하게 되면서 내가 뭘 하고 살았나 후회되기도 하고, 뭘 해야 하나 조급해지기도 했어.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의 방황과 좌절의 초등학교 시절의 '장래희망 설문지'에서부터 시작되어 입시와 취업까지 다른 형태와 이름으로 계속되었던 것 같아. 장래희망을 적어야 하는 숙제를 받았을 때부터 나의 꿈은 모두가 알 수 있는 하나의 직업으로 정의되어야 했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가치 없는 것들로 여겨져 쉽사리 입에 꺼내지 못했었지. 그리고 그 장래희망이 당장의 모습이 된 것도 아닌데 어른들은 우리를 '미래의 경찰관', '미래의 변호사', '미래의 의사 선생님' 등으로 부르곤 했어. 사실 처음에는 우리의 꿈을 존중하고 응원해 주는 줄 알았었는데 나중에는 그 자체가 단단한 프레임이자, 아픈 올가미이더라고. 그 당시 인기가 있는 직업 중에서 엄마가 좋아할 것 같고 선생님이 문제 삼지 않을 것들로 몇 개 골라 썼는데 언젠가부터 나조차도 세뇌가 되어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거든. 정기적으로 진행하던 직업 선호도 검사에서도 자연스럽게 그 직업이 나오게 선택을 했었고, 당연히 대학 입시에서도 무리해서라도 지원했어. 진짜 내 것이 아닐지도 모르는데도 그 장래희망을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었어. 내 것이 아닌 그저 누군가의 희망일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하지만, 결국 장래희망을 이루는데 실패했고, 생각지도 못한 공부를 하게 되었지. 인생은 참 어떻게 될지 몰라. 근데, 생각보다 너무 재밌고 행복하더라. '너의 원래 꿈을 잊지 말라고, 늦더라도 해 보라고 엄마는 응원한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혼란스럽기는 했지만, 집에서 꽤나 떨어진 학교에 다녔던 덕분에 그 혼란은 금방 무뎌졌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릴 적 꿈꿨던 것들을 하나씩 할 수 있었어. 외국인들을 위한 한복 캠페인을 기획하기도 하고, 필리핀 문화교류 회고 영상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학생들을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도 참여했어. 참, 미국에서는 K-POP을 알리기 위해 춤도 췄는데 이게 또 많은 웃음을 주었지. 그렇게 어린 시절 나의 꿈들이 새로운 희망과 행복이 될 무렵 어느덧 대학교 3학년이 되어 취업 상담을 받기 시작했고 거기서 한 번 더 좌절을 맛보게 돼. 


꿈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한 모든 순간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던 소중한 경험들이 경쟁자들에게 밀릴 수 있는 단점이 될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일관적이지 못하고 난잡하며 마지막에는 꿈이 없냐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야. 그러면서 원하는 직업군과 그에 맞는 경험을 나열하고 정리하고 남은 한 해동 안은 이에 도움이 되는 2가지 활동을 하면서 검사를 받으라고 했어. 15년이 지나 또다시 장래희망을 적는 시간이 온 거지.


N잡러라는 것이 흔하지 않았던 시기, 남들이 선망하는 큰 기업에서 하나의 직무로 오랜 커리어를 쌓는 것을 가장 좋은 선택지라고 믿었던 시기에 나는 수없이 많은 좌절을 맛보았고 꿈이 없는 나를 탓하며 졸업과 동시에 호주로 도망치듯 떠났어. 그곳에서는 남들이 인정해 주는 꿈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물론, 코로나로 인해 반 강제로 귀국을 해야 했으나 다양한 국가에서 저마다의 이유로 타지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하나 배운 건 '하나의 꿈을 가진 사람은 없다는 것'과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지도 모르는 하나의 꿈을 위해 인생의 리스트들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들을 하나씩 해 가다 보면 나만의 소중한 꿈이 만들어진다는 것'이야. 그러니 과거의 나의 모습을 후회할 필요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조급해할 필요도 없지. 


차(tea) 브랜드 / 콘텐츠 마케터로 일하고 있는 지금, 이제 누군가 나의 꿈에 대해 질문한다면 나의 대답은 '어떤 마케터가 되겠다' 대신 '어떤 사람이 될 거야'라고 말할 것 같아. 직업은 내가 하고 싶은 것들 중 하나일 뿐, 나의 모든 것이 아니니까. 그리고, 직업이 꿈이 되지 않는 곳에서는 너의 모든 경험이 소중한 자산이 된다는 것도 알려주고 싶어. 나만의 전시회를 열고 싶다며 박물관학 수업을 들었던 경험은 '전시회' 콘셉트로 팝업 스토어 기획에 도움을 주었고, 여행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꿈은 느리지만 천천히 나만의 유튜브 영상을 기획하는 것에, 나만의 책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꿈은 부족하지만 매주 한 편씩 이렇게 브런치북을 연재하는데 동기부여가 되어주고 있거든. 


그러니 혹시 아직도 너의 장래희망을 묻는다면, 너의 모든 경험들이 입시와 취업에 마이너스가 된다고 말한다면 귀담아듣지 말고, 자책하지 말아 줘. 한계를 부여하지도 말고.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가치 있고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잘 쓰일 거니까. 


얼마 전 기사를 보니 초등학생의 41%가 희망 직업이 없다고 하며, 교육부에서는 희망을 주는 진로 교육을 한다고 하더라. 댓글에는 점점 꿈이 없어지고 돈만 쫒는 것 같다는 댓글도 많았고. 과연 꿈이 없었을까? 아니면 골라야 하는 선택지에 내가 생각하는 꿈과 일치하는 것이 없었던 걸까? 


누굴 위해 쓰는 건지 모를 장래희망 활동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며, 나만의 기준을 가지고 다채로운 경험을 한 꿈 많은 아이들이 더 인정받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그럼 오늘 편지도 이만 줄일게, 또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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