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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다지 Feb 04. 2024

회사동료와 친구가 가능한가요?

아홉 번째 편지: 무례함과 편함을 구분할 수 있다면. 

19살에게 회사라니! 너무나 멀고 다른 세계 같아서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았을 거야. 나도 언젠가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취업' 그 자체에만 집중했지 그 속에서의 '관계'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거든. 하지만, 머지않아한 번은 경험을 해볼 수 있을 거야. 아마 빠르면 3-4년 후쯤? 언젠가 회사에서 존재감을 뽐내며 멋지게 일하고 있을 너의 모습을 상상하며, 오늘은 가볍게 이 편지를 읽어도 좋아. 


나는 동기들에 비해 조금 늦은 나이에 첫 사회생활을 하게 되었어. 대학시절 공모전, 봉사활동, 자격증 등 소위 스펙이 될만한 무언가를 쌓아 보기도 했고, 교수님의 조언으로 취업상담도 몇 번 받았지만 아직 나에 대한 확신도 없고, 회사에 면접을 보고 일을 한다는 것이 무섭기만 했어. 그렇게 졸업 후 취업 대신 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고, 코로나로 전세기를 타고 오니 25살이 되어있었지.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리고 귀여운 나이인데 그 당시에 쓴 브런치 글을 보면 이미 너무 늦어서 세상의 낙오자가 된 것처럼 걱정했었지. 조금 민망하네.)


그렇게 한 외국계 IT 회사에서 마케팅 인턴으로 일을 시작했는데, 그곳에서는 '회사 = 일을 하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 내가 그날 맡은 일을 하면 출퇴근 시간과 상관없이 집에 돌아갈 수 있고, 무엇보다 업무 효율과 성과를 강조하는 분위기라 그런지 업무 이외의 주제로 대화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 조금은 삭막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업무에 개인적인 이유를 붙이는 법이 없었기에 깔끔하고 이상적이라고 느꼈던 적이 많았던 것 같아. 8개월이 지나 퇴사를 할 때쯤 매일 함께 일하던 개발자 분이 예전에 배우를 했다는 것도, 자주 커피를 사주시던 클라우드 팀 팀장님이 쌍둥이 때문에 일찍 퇴근을 하셨다는 것도 몰랐으니 말 다했지. 


그래서 지금의 회사에 들어오게 되었을 때 몹시 혼란스러웠어. 전 회사와 비슷하게 거의 재택으로 근무를 하는데도 오랜만에 회사에 갔을 때 동료들이 단짝 친구를 만난 듯 서로를 안고, 개인적인 고민들까지 나누는 모습을 보았거든. 내가 알던 회사의 모습은 아니어서 솔직히 너무 낯설고 어려웠어. 얼떨결에 인스타그램을 공유했을 때는 퇴근하는 길에 다른 계정을 만들어야 하나 후회하기도 하고, 편한 분위기에 휩쓸려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할까 팀장님과 의논해서 회사로 출근하는 빈도를 최소한으로 줄이기도 했지. 


그랬던 내가 관점을 바꾸게 된 건 지난 하반기 티타임 제도 도입 이후부터였어. 대표님과의 1:1에서 다수가 건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시작된 티타임은 월에 1번 업무 시간 1시간을 활용해서 진행하되, 업무의 연장선이 아니라는 것이 키 포인트였지. 업무가 아니면 따로 굳이 회사 동료들과 이야기를 할 이유가 없었고, 그게 협업을 하는 데에도 더 편할 것이라 생각을 했었는데 매번 다른 동료와 꼭 한 번 만나 업무가 아닌 다른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게 신기하게 참 좋더라고. 특히, 업무 시간을 이용해서 그런지, 마치 수업 시간에 몰래 나와 함께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먹고 돌아가는 느낌이었어. 


항상 슬랙에서, 혹은 무거운 회의 때만 얼굴을 맞대고 어려운 이야기만 하던 동료에서 맥주 한 잔 마시며 편하게 이야기를 하는 자리을 통해 그들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나의 시야도 조금은 넓어진 것 같아. F&B 업계 특성상 먹고 마시는 것에 진심인 분들이 많은데 이제는 너무나 소중한 금요일 밤에도, 주말 점심을 이용해서 서로의 취향을 찾아 함께할 수 있게 되었고. 지난달에는 옆팀 팀장님과 시장 안에 있는 이색 전통주 칵테일 바에 가보기도 하고, 협업이 잦은 디자이너님과는 업무에 도움이 될만한 전시나 팝업을 함께 가기도 했어. 심지어 어떤 분들은 함께 해외여행을 떠나기도 하더라. 멋진 한복을 각각이 어울리는 색으로 곱게 맞춰 입고서. 


회사 동료와 친구처럼 업무 이외의 이야기를 나누며 쌓은 시간들은 나의 걱정과는 달리, 업무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어. 오히려, 더 부담 없이 편하게 나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었지. 과도하게 눈치를 보느라 요청하지 못했던 것들도 빠르게 일정을 조율할 수 있었고. 참고로 나는 예전 직장에서 받은 반응이 느리다는 피드백 때문에 미팅에서 자신감 있게 의견을 제시하지 못했었어. 가장 고치고 싶은 약점이었지. 


네가 꿈꾸는 회사 생활의 모습은 어때? 정해진 정답은 없어. 네가 더 행복할 수 있는 방법만 존재할뿐. 그리고 이 기준은 여러 회사의 문화를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을 거야. 나 역시도 지금 회사가 무조건적으로 좋다고 말하지 않을래. 다만, 업무 성과만을 위해 회사에서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소중한 인연들을 차단하면서 스스로를 외롭게 하지는 않았으면 해. 특히, 혼나고 아플 일이 많은 주니어에게는 함께 성장하고 어려움을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존재가 때로 아주 큰 힘이 되니까.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동료들과 나눠 먹었던 구슬 아이스크림에 막혀 있던 뇌가 사르르 녹는 것처럼 말이야. 


물론, 회사 동료가 친구가 된다고 해서 너의 업무에 안일해지거나 편하게 반말을 해야 된다는 것은 아니야. 친구라는 것에 앞서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해 예의를 갖추고,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자. 또, 회사에 대한 불평을 하더라도, 그 속에서 함께 이겨나갈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이 모든 것을 잘 기억한다면, 서로의 승진에는 질투 대신 기꺼이 기뻐해주며, 퇴사를 하게 되었을 때는 관계의 단절이 아닌 평생 남을 동네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너를 지켜줬던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처음 만나게 되는 회사가 너에게 단지 고난과 역경의 장소로 기억되지 않길 바라며, 오늘 편지도 이만 줄일게. 금방 또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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