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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다지 Feb 18. 2024

눈이 높은 게 잘못인가요?

열한 번째 편지: 나의 행복을 위한 연애 체크 리스트

못다 한 선생님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3년간 몸담았던 대학생 멘토링 동아리와 졸업 후 처음으로 일하게 된 회사의 공통점이 있다면 남성의 비중이 높다는 거였어. 여중, 여고, 여대를 다니며 이성과 통 친해지는 법을 알지 못했던 나는 이 환경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었는데 가장 대처하기 어려웠던 질문이 있다면 바로, "왜 OO님은 연애를 하지 않아요?"라는 거였어. (동아리에서는 반말을 했지만 편하게 존댓말로 적을게)


순수한 호기심에 질문을 하는 분도 있었는데, 그런 분들은 '인연이 찾아오지 않았어요' 같은 애매한 답변에도 그냥 넘어간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았어. 나의 애매한 답변은 그들에게 또 다른 흥밋거리를 던져 주었고, 다음 질문은 당연하게 나의 이상형에 관한 것이 되었지. 내가 생각하는 나의 이상형 중에서 고르고 골라 정말 중요한 것들 5-6개를 알려준 후에는 "에이 눈이 너무 높으신 거 아니에요?."라는 반응을 보였어. 세상에 완벽한 남자는 없으니 어느 정도 현실과 타협을 봐야 한다는 듣고 싶지 않은 조언과 함께.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한 지금, 인생에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한 것 중에 하나는 바로 현실과 타협하고 내 눈을 낮추라는 그 조언에 따르지 않은 거야. 그리고 그건 연애를 결심하게 하는 나만의 기준이 있기 때문이었어. 남들이 생각했을 때는 까다롭다고 할 수도 있는, 하지만 나에게는 정말 중요한 체크 리스트였지. 시간도, 돈도, 쓸 수 있는 체력도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연애를 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으로 시작해 하나씩 작성한 이 체크 리스트를 소개할게. 


01. 맑고 눈망울과 큰 키를 가진 사람: 연애를 하는 데 있어 외모를 보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야. 그 기준이 다 다를 뿐 각자가 포기 못하는 기준은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내 친구는 주변의 등쌀에 못 이겨 연애를 했었는데 자기 스타일이 아니라 설렘을 느끼지 못했어.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래. 그러니 너의 몸과 마음이 끌리는 사람을 만나렴. 물론, TV에서만 만날 수 있는 얼굴을 찾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을 거야. 


02. 오픈 마인드, 말 그대로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 새로운 음식이나, 문화를 편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정말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 함께할 수 있는 경험과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거든. 그리고 여기에는 사람에 대한 것도 포함이야. 내 남사친들 중에는 퀴어가 몇 명 있는데, 전에 만났던 사람은 인사도 하기 싫어하더라고. "세상에 100% 게이가 어딨어. 다 여자 꼬시려고 하는 소리야. 너 친구 너무 믿지 마. 나중엔 다 변한다."며. 그다음 날 우린 헤어졌어. 나에게 소중한 친구의 존재를 부정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03. 똑똑한 사람: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좋은 학벌이나, 높은 연봉을 받는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닌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언제나 확인하고 공부하려는 사람이 난 좋아. 왜 남미의 많은 나라들이 미국으로의 탈출을 감행하게 되었는지, 왜 프랑스에서는 끊임없이 시위가 일어나고 있는지, 대만의 대선이 어떤 시사점을 남기는지 그리고 왜 한국에서는 젠더 갈등이 정치적 이슈가 되는 건지 등등. 하루하루 돈을 벌고 쓰는 삶도 행복하지만 더 넓은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깊이 있는 토론을 하는 건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이거든. 물론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말이야. 


04. 여성을 존중하되, 보호하고 통제하지 않으려는 사람: 전 연인들 중에는 세상이 흉흉하다며, 나의 옷차림이나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을 과하게 걱정하는 사람이 있었어. 성폭력 피해자 뉴스를 들으며 '그래서 새벽에 여자들끼리 술을 먹으러 가면 안 되는 거야.'라고 어이없는 발언을 하기도 했지. 내가 교환학생을 떠났을 때는 계속 나의 위치를 확인하며 새벽마다 어찌나 연락을 하던지. 연애는 서로의 삶을 이어나가면서 행복을 추가하는 것이지 간섭하고 통제하는 건 성숙하지 못하다고 생각해. 누군가를 만나면서 혹시나 네가 나약하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느껴지거든 빠르게 탈출하길 바라. 


05. 일이 하나의 아이덴티티인 사람: 엄마는 아빠와 결혼한 가장 큰 이유가 성실해서라고 했어. 어떤 일을 하든 최선을 다해 업무에 임하면서 언제나 성장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건 아주 매력적인 부분이라고. 그리고 그런 사람이 내 사람들에게도 최선을 다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이야. 일이 인생의 전부가 되거나 너보다 우선순위에 있어서는 안 되지만, 내가 선택한 길에 행복해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너에게도 큰 동기부여가 되어줄 거야. 내가 부지런한 남편 덕분에 주말에도 책상 앞에 있고, 꾸준히 언어나 운동을 배우려는 것처럼. 


06. 가족을 대하는 태도가 올바른 사람: 웨딩 카페를 보니 아직도 결혼 준비 과정에서 싱글맘, 이혼 가정이라는 배경 때문에 파혼을 하는 사례가 꽤나 많아서 놀랐어. 만약 네가 누군가를 맘에 품었다면 정말 중요한 건 가족의 형태가 아니야. 어떤 상황에서도 가족을 아끼고 사랑을 주는 태도지. 더불어, 가족에게 심적으로 의지를 하되 경제적으로는 독립한 사람을 만났으면 해.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고 결정할 수 있는 진짜 어른 말이야. 물론 너도 그런 어른으로 성장했으면 하고. 나는 이게 참 오래 걸렸어.


07. 친구끼리의 선은 지킬 수 있는 사람: 요즘 연애 고민하면 항상 빠지지 않는 게 여사친, 남사친 문제라고 하지. 많은 친구들이 동의해주지 않았지만, 나는 성별이 다른 친구와도 진짜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 지금도 자주 만나고 있고. 친구들과 따로, 또 남편과 같이. 물론 그 관계에 있어 조금의 불편함이나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는 것이 조건인 거 잊지 마. 연인의 의사를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것도 중요하고.


08. 나의 취향을 알고, 가꿀 수 있는 사람: 예전에는 나를 가꾼다는 것이 남을 의식하는 것 같아서 좋게 생각되지 않았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니 나를 가꾸고 꾸미는 것 자체가 스스로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거라는 걸 깨달았어. 내가 좋아하는 옷, 잘 어울리는 화장, 그리고 행복해지는 음식 등, 남들에게 소개를 할 수 있는 이런 멋진 취향들은 모두 수많은 시도와 도전을 통해서 얻은 값진 것들이겠지. 


09. 돈을 지혜롭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 지난해는 코인 떡락, 전세 사기, 자살, 포기 같은 우울한 단어들이 뉴스거리에 많이 올랐어. 특히, 일확천금을 노리고 주식이나 코인에 전 재산을 투자한 후 모조리 잃어버린 후에도 잠시 맛본 성공을 잊지 못해 중독의 삶으로 들어간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런 경우 말고도 요즘 열심히 번 돈을 지혜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좋지만 어디에 쓰는 걸 가치 있다고 느끼는지 얘기를 해보는 것도 추천해. 물론, 너의 기준을 먼저 세워야겠지?


10. 자신의 건강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픈 건 얼마나 슬픈 일일까. 할아버지가 급작스럽게 암으로 돌아가셨을 때 엄마와 할머니가 그렇게 오열하는 걸 처음 봤어. 진심을 다해 사랑하는 마음도, 함께 살 좋은 집이나 돈을 마련하는 것도 좋지만 가장 중요한 건 건강하게 오래오래 서로의 옆에 남아주는 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담배를 피우거나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마시는 사람은 만나지 않기로 했어. 


30대를 앞두고 있는 지금, 친구들이 연애는 어렵다면서 "내가 너무 눈이 높아서 그런가? 얘들아 30대가 코 앞인데 너무 원하는 사람만 만나려고 하나? 너무 따지고 너무 쟀나?"라고 종종 고민을 털어놓을 때가 있어. 그때마다 나는 얘기해. 눈이 높은 것이, 원하는 사람을 만나려고 하는 것이, 재고 따지는 것이 뭐 그리 나쁜 것이냐고. 그리고 각자만의 체크리스트가 있는 것은 그동안의 연애 경험으로 쌓은 나만의 소중한 데이터이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성장하는 인간의 본성이라고.


실제로 연애 경험이 한 번도 없는 S는 이렇게 말했어. "이제는 누군가를 만날 준비가 되어서 연애를 하고 싶은데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또 싫어하는지 모르겠어. 그래서 일단 나가는데 다시 만나도 되는 건지 모르겠고 뭔가 항상 애매해."라고. 그럴 때면 우리는 조심스럽게 조언을 해줘. 꼭 연애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만남을 이어가다 보면 너만의 체크리스트가 생길 거라고 말이야. 그러니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확신이 없는 나를 원망하지도 말라고.


20대의 너는 새로운 인연을 만날 기회가 지금보다 더 많아질 거야. 그 과정에서 미치도록 달콤한 사랑에 빠질 수도 있고,  슬프게도 너의 진심이 닿지 않을 때도 있겠지. 혹시 그런 상황이 오더라도, 그리고 그 시간들이 길어지더라도 '내가 너무 눈이 높나? 내 주제에?' 같은 바보 같은 질문은 하지 말았으면 해. 나의 기준은 누구의 평가도 받지 않을 자유가 있고, 그 기준을 알고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는 건 나 자신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니까. 


곧 다가올 찬란한 20대에 네가 원하던 인연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길 바라며, 너만의 체크 리스트를 만들어 봐도 좋아!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수정도 많이 하게 될 테지만 그만큼 값진 경험이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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