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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다지 Mar 03. 2024

20대의 착한 소비 나쁜 소비

열세 번째 편지: 진심으로 가치 있는 곳에 돈을 쓰길 바라며.

얼마 전 직장인 커뮤니티인 블라인드를 보니까 그런 글이 있더라. 자기 나이가 30살인데 아직 5,000만 원 밖에 못 모아서 연인에게 프러포즈를 하기가 겁이 난대. 자기 나이라면 도대체 얼마를 모아야 정상이냐고 궁금해하면서 말이야. 여기에는 정말 다양한 답변이 달렸어. 1억은 모았어야 하는 거 아니냐, 서울에서 전세도 못 구한다, 부모님께 돈을 빌릴 수는 없냐는 의견도 있는가 반면, 빛이 없으니 성공한 거다, 있는 거 안에서 연인과 잘 추려서 살면 된다 등 응원과 위로도 많았지. 글쓴이처럼 30대를 앞두고 있지만 나 역시도 청약, 적금 계좌를 탈탈 털어봐도 5000만 원은 나오지 않아. 그럼 나는 그동안 잘못 살고 있었던 걸까? 실패한 20대인 걸까? 사람마다 빛나는 시기가 모두 다르기에 그 기준을 감히 내가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 대신 오늘은 20대를 보내며 내가 정말 잘했다고 했던 소비와 뼈저리게 후회되는 소비에 대해서 소개해보려 해. 너는 돈과 시간을 지혜롭게 쓸 줄 아는 멋진 사람이 되길 바라며. 


사실 나는 부끄럽게도 대학교를 다니는 내내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용돈으로 생활비의 80%를 충당했었어. 학생은 공부에 집중하는 게 맞다고 하시며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장학금을 기대하셨기 때문이야 (참고로, 우리 집은 그리 풍족한 편이 아니고 동생이 둘이나 더 있어) 하지만, 공무원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국가 장학금은 신청 대상에서 가장 먼저 제외되었고 (참, 반포 자이에 거주하면서 자영업자 부모님을 둔 동기는 매번 국가 장학금 대상자로 등록금의 80%가 감면되더라), 1%만 주는 성적장학금을 받기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기에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일은 1학년 1학기 단 한 번뿐이었어. 1학년 때는 다들 공부를 안 하더라고. 당시 살던 셰어하우스의 월세와 관리비는 총 50만 원. (우리 학교는 다행히 서울 끝자락에 있어서 월세가 저렴한 편이었어) 식비와 교재비 구독료 기타 등등을 하면 매달 나가는 돈은 약 90만 원이었지. 내가 적게나마 돈을 모을 수 있는 부모님 몰래 주말 내내 시급이 비교적 높은 이태원에서 했던 아르바이트 그리고 마케팅 공모전을 통한 수상금이었어.


그땐 철이 없었는지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약 90만 원의 용돈이 항상 넉넉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고 그 시기를 되돌아보니 이 '기타 등등'에서 나쁜 소비를 정말 많이 하고 있었더라고. 그중 가장 후회되는 소비 3가지를 말해보면, 1) 유행 타는 옷과 나와 어울리지 않는 수십 가지 화장품들 2) 쓸데없는 감정 소비에 귀중한 시간을 낭비했던 수많은 미팅과 소개팅 3) 동아리 활동이 끝난 후 새벽까지 마셨던 술이야.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면 단기적인 재미만 있을 뿐 장기적으로 나에게 도움이 되는 소비가 아니었다는 거야. 짧은 테니스 치마, 웨지힐, 머메이드 치마, 꽉 끼는 스키니진 등 좋아하지도, 편하지도 않은 옷들을 다른 친구들이 입는다고 따라 사고, 내 퍼스널 컬러를 찾겠다고 50가지가 넘는 아이쉐도우에 30가지가 넘는 립스틱을 서랍에 구비해 놓았었는데 결국 매일 쓰는 건 작은 파우치 안에 다 들어가는 걸 깨달았고 나머지는 결국 교환학생을 갈 때 모조리 버리고 말았지. 


미팅이나 소개팅은 더해. 여중 - 여고 - 여대를 다니면서 남자에 대한 호기심이 극에 달했던 나는 선배들이 주선해 주는 미팅이란 미팅은 다 나갔었는데 결국 남는 건 쓰디쓴 술이 지나간 자리에 고인 위장 장애와 자존감 하락이었어. 키 크고, 청바지와 셔츠를 입는 걸 좋아하는 단발머리 여자 옆에 앉고 있어 하는 사람은 거의 없더라고. 드세 보인다나 뭐라나.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는데, 이때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하기까지는 자그마치 3년이 걸렸어. 혹시 미팅에 나가게 된다면 남의 평가에 작아지지 말자. 마지막으로 비슷한 취미를 가진 좋은 친구들이 많이 생길 거라 기대하고 참여했던 수많은 동아리 활동과 새벽과 이어진 그들과의 술자리는 한국을 잠시 떠나 있게 되면서 다 증발해 버렸고 지난해 결혼식에는 그 누구도 오지 않았지. 


그렇게 대학교 4년 (+ 휴학기 1년) 간 바닥에 흘려보낸 돈이 얼만지 상상도 안 가. 그래도 다행인 건 그 사이에도 나를 칭찬해주고 싶은 좋은 소비도 있었다는 거야. 앞선 3개의 예시와 달리 당시에는 주변에서 좋은 선택이라고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내 인생에서 칭찬해주고 싶은 것들이지. 바로 1) 방학 때마다 떠났던 여행과 관점을 넓혀준 교환학생 2) 대학교 2학년 때 들었던 청약통장 그리고 3) 친한 친구들에게 잊지 않고 전했던 생일 선물같이 말이야.


대학교를 졸업할 즈음, 내 계좌에는 100만 원도 남아있지 않았었는데 공모전 수상금이나 모아놓았던 아르바이트 시급으로 매 방학 때마다 배낭여행을 떠났기 때문이었어. 인턴십이나 취업 준비를 하지 않고 4학년 2학기까지 결국 봉사활동 때 만난 친구들을 보러 필리핀으로 향했던 나를 주변에서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봤지만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베트남,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쿠바까지 최소한의 돈을 가지고 여행하고 또 살아보면서 알게 된 인연들과 겹겹이 쌓인 추억들은 내가 좌절하고 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 줬어. "겁내지 마, 너는 7kg 가방 하나 들고 3주간 말레이시아 전역을 돌아다닌 아이야. 휴대폰도 안 터지고 말도 안 통하는 쿠바에서 2주 동안 잘 지내다 온 아이야."라고 응원해 주면서. 그러니 여행할 때 호캉스나 마사지도 좋지만 최대한 현지인의 삶에 녹아들어 보는 걸 추천해. 봉사활동을 가거나 다양한 국가의 여행자들을 만날 수 있는 도미토리 룸을 이용해 보는 것도 좋아. 


청약통장은 대학교 2학년이었던 2015년에 만들어서 지금까지 딱 1100만 원을 모았는데, 언제 쓰게 될지는 모르지만 매달 10만 원씩 꾸준히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것 같아. 비혼 주의자에 해외 취업을 꿈꿔왔기에 몇 번이나 청약 통장을 해지하려고 생각했는데, 결혼도 하고 스페인 남편과 한국 살이를 하고 있으니 곧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삶은 참 예측하기 어려워. 그리고 친구들에게 주는 생일 선물은 비싼 건 아니더라도 나는 너를 생각하고 있고,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아서 정말 잘한 소비라고 생각해. 지금 내 인생에 가장 친한 친구들과는 생일 선물은 스킵하고, 각자의 생일에 모여 생일 당사자가 아닌 두 명이 몰래 케이크를 주문 제작해 오고 기나긴 편지를 써서 전달하는데 이때 쓰는 돈은 얼마나 보람차고 행복한지! 이러한 순간들 때문에 직장에서의 힘든 순간을 견뎌내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사람마다 착한 소비와 나쁜 소비의 기준은 다를 거야. 그리고 단기간의 재미와 행복을 추구한다고 해서 무조건 나쁜 소비도 아니고. 소개팅에 나갔다가 평생의 인연을 만날 수도 있고, 원하는 옷을 맘껏 입어보면서 나만의 취향을 빠르게 찾을 수도 있지. 그것도 20대를 잘 보내는 방법이자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하고. 다만,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적정선 내에서 소비의 밸런스를 잘 맞추길 바라! 그리고 지금 하는 소비가 너에게 어떤 가치를 주는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어. 매일매일 기록하는 것도 잊지 말고! 


가치 있다고 믿는 것에는 과감히 투자하고 그러지 않은 것에는 주변의 시선에 상관없이 포기하는 경험을 충분히 할 수 있는 20대가 되길 바라며, 정해진 시간과 돈 안에서도 최고로 아름다운 추억들과 멋진 교훈들을 많이 얻었으면 좋겠다. 나도 아직 내 소비 패턴에 대해 반성하고 또 배우는 중인데, 올해에는 나쁜 소비라고 생각하는 배달 앱과의 인연을 끊고, 건강과 운동으로 착한 소비를 늘려볼게. 그럼 우리 모두 파이팅! :) 


필리핀 봉사활동 때 만난 나의 소중한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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