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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다지 Mar 10. 2024

나의 존재를 가리는 부러움

열네 번째 편지: 남만 보기엔 한 번뿐인 내 삶이 너무 소중하니까.

팀장님과의 1:1 미팅에서 내가 치열하게 살고 있지 않은 것 같아서 불안하다는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어. 몇 주후 오픈하는 신규 매장에 초대하고 싶은 인플루언서 리스팅을 하고 VIP DAY를 기획하면서 더욱 현타가 왔다고. 자신만의 탄탄한 커리어가 있으면서도 주말마다 여행 혹은 팝업을 다니며 SNS에 꾸준히 기록하고 또 그것으로 경제적 자유를 누리는 것이 몹시 부러우면서도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해온 것인지, 똑같이 주어진 시간을 내가 효율적으로 사용한 것인지 걱정이 되었거든. 그런데, 미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부러움은 일을 하면서 생긴 걱정은 아니었어. 29년 동안 내 옆에 꼭 붙어서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점점 더 존재감을 키워왔던 거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진짜 나의 존재와 욕망을 가리면서, 때때로는 동기부여라는 이름으로 착각하게 만들면서. 


내가 18살 때까지 살던 나의 고향은 작고 아늑하지만 분명히 부의 격차가 느껴지는 곳이었어.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경제적인 문제로 학원을 다니지 않는 학생이 60%가 넘어서 정규 수업이 끝난 다음에는 무료로 방과 후 보충 수업을 제공해 주었었지만 고등학교는 또 달랐거든. 신도시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법원, 검찰청, 교육청 등 도시의 중요한 행정 건물이 옮겨온 이 동네에서 만난 친구들은 값비싼 고층 아파트에 살며 학원을 3-4개씩 다니고 있었고, 어머니들의 입김도 몹시 강했지. 특히, 중학교 내신 성적이 높았던 덕분에 소위 '학사반'이라는 공부 잘하는 학생들만 따로 거주하는 기숙사에 살게 되었는데 이 친구들의 어머니들은 보통 한 동네 (부자 동네)에 거주하시며 정보를 교환하고 아이들의 그룹과외까지 직접 만들어 선생님을 초청하곤 했어. 룸메이트가 보는 자료 중에서 시험에 도움이 될만한 자료인 것 같아 '이거 5분만 보고 돌려주면 안 될까? 내가 맛있는 거 살게!'라고 하면 돌아오는 답은 '그럼 너도 엄마한테 말해서 우리 그룹에 들어와.'라는 소리를 듣는 곳. 아마 그때부터 누군가를 부러워하면서 나의 상황을 원망하고 슬퍼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


대학에 와서도 부러움은 내 머리와 마음속에서 계속 존재했어. 숨만 쉬어도 빠져나가는 월세와 관리비에 순식간에 텅텅 비는 통장과, 그에 반해 가성비만 따져서 다소 부실했던 나의 식사를 보며 서울 집에서 통학을 하며 먹을 거, 잘 곳 걱정 없는 동기들을 부러워했고, 교환학생 당시 교수님께 장학금 제안을 받고도 여전히 비싼 학비와 생활비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던 순간, 학벌 세탁을 하고 싶다고 낮은 성적에도 미국에 남는 어느 한국인 친구를 보며 괜스레 부모님께 짜증을 부리기도 했지. 취업을 한 후에는 돈 걱정 없이 석박사 통합 과정을 하는 친구가, 결혼 후에는 부모님이 주신 돈으로 빛 없이 전세 집을 구하는 동료가 부러웠고. 


사실, 부러움은 모든 상황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이고, 인간으로서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것이기도 해. 다만, 부끄럽게도 나는 이 부러움의 감정을 누군가를 질투하고, 그들을 이기기 위해서 대체로 사용했던 것 같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성장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착각했고. 자료를 보여주지 않은 룸메이트보다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이 악물고 공부하거나, 돈 때문에 미국 생활은 포기했지만 호주 워홀이라는 선택을 하고, 지금은 일주일에 3개의 블로그 포스팅을 하는 것처럼. 근데 말이야, 이렇게 부러움으로 얻은 동기는 생각보다 빨리 힘을 잃어버리고, 결국 해 냈다고 하더라도 내가 들은 시간과 노력만큼 기쁨이 크지 않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것 같아. 그보다는 그냥 쿨하게 내가 가진 한계와 상황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이뤘을 때 더 만족스러웠지. 공모전 수상금 딱 100만 원을 가지고 한 달간 배낭여행을 떠난다던가, 매주 대형 마트나 B마트 대신 전통 시장에 가서 저렴하게 장을 본다던가, 남들의 1/3도 안 되는 비용으로 결혼식을 준비했던 것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딱 1번뿐이고, 언제 어떻게 이 생과 이별을 하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누군가를 부러워하면서, 그 부러움을 없애기 위해 나도 패턴을 따라 하면서 매일매일을 프로젝트처럼 살아가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그보다는 다름을 인정하고 나중에 내 인생을 되돌아보았을 때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다양한 추억들을 쌓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 이유야. 


미팅의 끝에 팀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 너무 보이는 것만 믿지 말고 또 그래서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고. 수많은 여행 기록으로 빠른 수익화가 가능했던 인플루언서들은 우리와 달리 업무 시간에는 크게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일수도 있고, 갓생을 산다고 생각하는 누군가는 그런 자극에 중독이 되어서 쉽게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으며, 부모님과 함께 지내며 내내 서울 살이를 했던 친구들은 사실은 자유를 갈망하고 있을 수도 있다고. 무조건 행복한 사람도 없고, 불행한 사람도 없으며 완벽한 사람도 없고, 불완전한 사람도 없다고 말이야. 


그러니 혹시라도 너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부러움이라는 감정이 너의 몸과 마음의 소리보다 다른 사람의 삶에 더 귀를 기울인다면, 그리고 너를 조금이라도 상처 입히고 가고 싶은 길을 혼란스럽게 한다면 잘 타이르자. 나는 너무 오랜 시간 이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왔기에 바람을 빼는 시간도 아주 길 것 같지만 말이야. '행복하게 살고 싶거든, 남과 나를 비교하는 것이 아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라'는 말이 더 절실히 공감되는 요즘, 너는 진짜 너의 목표의 맞게 행동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며, 오늘 편지도 이만 줄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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