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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다지 Mar 24. 2024

언어를 배워야 하는 진짜 이유

열여섯 번째 편지: 세상은 넓고, 우린 너무 어리니까! 

지금은 브랜드와 고객을 연결해 주는 브랜드 마케터로 일하며 하루에도 수많은 글을 쓰고 기획을 하고 있지만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나는 그리 언어와 친한 아이는 아니었던 것 같아. 영어뿐 아니라 국어 성적은 늘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 내 발목을 잡았고, 논술 그룹 과외에서는 나만 항상 따로 불려 가서 장문의 피드백을 들었거든. 국어도 그런데 영어는 말 다했지. 대학에 가서도 눈치껏 해석만 할 줄 알았지 입 밖으로 말 한마디 내뱉지 못했어.


내가 다니던 대학교에는 '세계문화체험과 봉사'라는 과목이 있었는데, 방학 중에 진행되는 2학점짜리 수업으로 약 15일 정도는 봉사활동을 진행하고 남은 15일 동안은 현지 대학교에서 문화 교류를 하면서 수업에 참여하는 것이었어.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몽골 등 총 6개 국가 중에서 나는 필리핀에 지원을 해서 다녀왔었는데 각자 매칭된 버디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친구들과 달리 나는 나의 버디와 끝까지 어색하게 지냈던 기억이 나. 아무리 천천히 말해도 잘 알아듣지 못하고, 끊임없이 come again? sorry? 를 반복했으니까.


그런 내가 영어를 제대로 공부하기 시작한 건 교환학생을 준비하면 서였어. 매년 학교에서는 약 300명 정도의 교환학생이 약 60개 학교로 파견을 갔는데, 그중 상위 20명 정도만 파견 가는 학교의 등록금을 면제받을 수 있었거든. 미국과 캐나다의 경우 한 학기 등록금이 1000만 원에서 1600만 원 사이니까 이건 정말 엄청난 혜택이었고, 내가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왔던 '해외에서 공부해 보기'라는 버킷리스트를 실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어. 그렇게 서울에서 가장 빡세다는 스파르타 학원을 다니고 하루에 3시간씩 자며 토플 시험을 준비한 덕에 원하는 대학에는 등록금 면제 조건으로 갈 수 있었지만, 사실 내가 실제로 외국인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할 수 있던 시기는 미국에 간지 약 7개월 정도가 흐른 후였던 것 같아. 수많은 리포트와 발표가 필수인 미디어 학과라는 특성, 우연한 기회로 사귀게 된 미국인 남자친구 그리고 하루에 3시간씩 미드를 쉐도잉한 노력이 합쳐진 인생에서 참 값진 성취였어. 


이렇게 얻어진 영어실력으로 다시 돌아온 한국에서 따로 공부하지 않고도 필요한 토익이나 오픽 점수를 한 번에 쉽게 획득했고, 외국계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을 시작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주었지만 사실 다른 언어를 할 수 있어서 가장 행복하고 뿌듯했던 순간은 바로 혼자 여행을 할 때였던 것 같아. 


몇 가지 이유를 들어보자면, 

첫째, 나 홀로 여행이 외롭지 않다. 나는 여행을 할 때 일정 혹은 취향의 차이 때문에 대부분 혼자 여행을 하는 일이 많았는데, 단기 여행은 괜찮았지만 한 나라에서 오래 머무는 경우에는 밥 먹을 때나 사진 찍을 때 조금은 외롭더라고. 그때마다 호스텔에서 사귀었던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 덕분에 새로운 추억도 쌓고, 각 나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있었는데 그때 언어를 할 줄 몰랐다면, 그보다 언어를 배우며 얻은 자신감이 아니었다면 먼저 그들에게 다가가 "안녕? 나는 혹시 혼자 여행 중이니? 나는 한국에서 온 다지라고 해. 혹시 저녁 아직 안 먹었으면 같이 야시장 구경 갈래?"와 같은 말은 하지 못했을 것 같아. 갈아입을 옷도 없이 바다에 빠졌던 이유나, 핸드폰도 없이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가다 폭우가 내리는 바람에 간판도 없는 시골 슈퍼마켓에 갇혔던 추억도 남아있지 않았겠지. 


둘째, 현지 문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다.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온 지 1학기가 지나자 어느 정도 영어로 소통을 하는 것에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않게 되면서 교환학생 시기에 만났던 베트남 친구들과 급격하게 친해질 수 있었어. 다른 한국 친구들은 미국에서도 모여 살면서 주로 일상에서는 한국어만 사용을 했었는데, 행운인지 아닌지 몰라도 나는 '언론영상학부'라는 전공 덕분에 다른 건물로 배정을 받았고, 같은 층에 살았던 베트남 친구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거든. 학업을 마친 후 하노이를 여행하며 친구에게 간단한 베트남 음식을 배우거나, 외국인들은 잘 모르는 숨겨진 맛집이나 길거리 음식을 알게 된다던가, 심지어 얼마 전에는 그중 한 명이 결혼을 하게 되면서 유튜브에서도 쉽게 볼 수 없던 현지 결혼식 문화를 체험할 수 있었는데 정말 너무 신나고 놀라웠어! 베트남은 결혼식을 2번을 하고, 하객이 보통 300에서 많게는 1000명까지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니? 참고로 내 친구의 결혼식은 800명이었어. 


또, 나의 버디는 아니었지만 이전에 필리핀에서 만났던 친구와 인연을 이어가게 되면서 약 한 달 반 정도를 친구 집에 머물렀는데, 아침에는 나무에서 기다란 창을 이용해서 코코넛을 따서 바로 마시고, 아직은 아삭한 망고를 필리핀식 액젓에 찍어먹기도 하며 간단한 따갈로그를 배워서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지. salamat (고마워)라는 곡인데, 얼마나 달콤하고 아름다운지 한번 들어보는 걸 추천해! 


세 번째, 여행 경비를 절약할 수 있어. 투어를 할 때 한국어 가이드를 선택하면 인원을 모집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가격이 최소 20%는 더 비싸게 받는 곳이 많은데, 영어 가이드를 선택하거나 혹은 투어 없이 혼자 여행할 수 있어서 돈을 많이 절약할 수 있어. 또, 네이버 보다 구글에서 영어로 검색을 했을 때 정보의 양도 달라서 더 저렴한 선택지를 발견할 확률도 높아지고.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미국 서부 그랜드캐니언 패키지 예약이나, 아시아 국가에서 쿠킹 클래스 같은 것을 찾을 때 유용했던 것 같아. 


그리고 마지막은 간단해. 생존 수단. 여행지에서 어려움에 처하면 그 나라 언어가 아닐지라도 세계 공용어 하나쯤 알아두면 큰 도움이 될 거야.


어렸을 때 언어를 배우기 어려웠던 이유는, 배우더라도 그 속도가 참으로 느렸던 이유는 어쩌면 정말 내가 원하는 인생과 만들고 싶은 추억에서 언어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해서였던 것 같아. 


"선생님, 영어 왜 배워야 해요? 평소에 쓰지도 않는데."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선생님들은 이렇게 말했어. 

"너 대학 안 갈 거니?" 혹은 "시험 안 볼 거야?"라고. 


나는 네가 그렇게 묻는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건, 물론 대학 입시에도 유리하고 시험을 볼 때도 필요하지만 살면서 우리에게 큰 행복과 특별한 경험을 주는 여행에 있어 가장 큰 도움을 줄 거라고. 그리고 어쩌면 평생 너와 함께할 인연과 또 남은 삶을 보내고 싶은 제2의 고향을 찾게 될지도 몰라."라고. 


그러니 혹시 지금 보고 있는 수능 특강이 너무나 재미없게 느껴진다거나, 대학에 가서도 관련된 수업은 아예 피하고 싶다면, 꿈꾸는 여행지에서 혼자 길을 묻고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허물없이 대화하며 남들이 모르는 그 나라만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숨겨진 이야기까지 알아가는 너를 상상해 봐. 


생각보다 쉽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멀리 있지만은 않을 거야. 그러니 우리, 포기하지 말자. 스페인어라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있는 지금의 나도 19살의 나와 다르게 습득 속도는 확연히 느려졌지만 언어는 노력하면 확실한 보상이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꾸준히 해볼 생각이야. 


언어가 그저 너를 증명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보고 새로운 사람과의 연결고리로 활용할 수 있는 순간이 오길 바라며 오늘 편지도 이만 줄일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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