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통의 다지 Aug 04. 2024

단 하나뿐인 슬픔 치료제

스물네 번째 편지:  20대의 도전과 성취가 꼭 필요한 이유

2달 만에 다시 너에게 편지를 보내. 혹시 그동안 나를 잊지는 않았는지, 그래서 더 이상 우체통을 열지 않게 되었는지 조금 걱정이 되네. 변명을 해 보자면, 29살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백수 생활'은 나에게 꽤나 큰 혼란을 줬어. 이제 2년 차 병아리 브랜드 마케터였는데, 회사가 망한 거에 내 탓이 1% 도 없었는지 의심하게 되었고, 앞으로도 이 직무로 먹고살 수 있을지 고민을 했어. 내 커리어에 자신감을 더해줄 방법으로 국내외 석사 학위를 밤낮 상관없이 알아봤고, EU시민권자의 배우자로서 등록금 할인을 받을 수 있는지, 총비용은 어떻게 되고 취업 전망은 어떤지를 정리했지. 결국에는 지금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공부가 아니라 마케터로서의 새로운 환경과 성장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멈췄지만, 지난주까지는 참으로 무력하게 지냈던 것 같아. 고민했던 시간이 허무해지면서 돈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내가 참 쓸모없게 느껴지더라고. 


뭔가를 찾아보고, 걱정하는 것이 지칠 때쯤 구글에서 메일이 왔어. 스토리지가 다 찼으니, 용량을 관리하던가 아니면 다른 플랜을 구매하라고. 이미 3800원을 내고 있는데, 뭘 더 돈을 내. 그것도 백수가. 메일을 받자마자 흐리멍덩한 눈을 오랜만에 부릅뜨고 씩씩한 발걸음으로 책상 앞에 앉아 2014년의 사진과 영상부터 차근차근 확인하고 정리하기 시작했지. 그러다 발견한 미국 교환학생 시기의 내 모습은 유난히 밝고, 자신감 넘쳐 보이더라. 이제는 한여름밤의 꿈처럼 희미해진 7년 전의 추억이지만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발견한 것처럼 잠시 손을 멈추고 그 시절로 돌아가보기로 했어. 이때의 기억이 지금 느끼는 무력감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면서.


2016년, 21살 때였어. 막 대학교 3학년이 된 나는 대학생 시절의 마지막 버킷리스트를 달성하고 싶었어. 1) 한국에서 먼 곳으로의 교환학생 2) 정말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의 교육 봉사 3) 원하는 공부를 후회 없이 하기. 두 해 전에는 하루에 2-3시간만 자면서 원하는 과로 전과도 하고, 한 해 전에는 필리핀의 초등학교에서 고마운 마음도 가득 받았으니 졸업하기 전 교환학생도 꼭 가자고 마음먹었지. 하지만 이 여정은 결코 쉽지 않았어. 지방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던 나는, 평소 외국인과 대화할 기회도 영어학원을 다닐 기회도 거의 없었는데, EBS덕분에 무사히 대학 입시를 치렀지만, 대학생이 되어서도 입만은 강력 접착제로 붙인 듯 절대 떨어지지 않았어. 


한 학기에 1600만 원에 육박하는 엄청난 미국 대학 등록금을 면제받기 위해서는 학점 이외에도 꽤나 높은 토플 성적이 필요했는데, 예상대로 스피킹은 폭삭 망했지만, 다른 것으로 성적을 맞춰 다행히 미국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어. 약 2 달반동안 왕복 3시간의 통학(?)을 하며 아침 8:30부터 밤 10시까지 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집에 와서 새벽 3시까지 공부, 6시에 일어나는 생활을 반복했는데 이때 '사람이 의지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고, 작심일일인 나도 가능하다는 걸' 알았던 것 같아. 그래도, 하루에 700개씩 단어 시험을 보는 건 좀 토할 것 같더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나이아가라 폭포가 훤히 보이는 대학교에서 1년간의 교환학생을 보낸다는 건 꽤나 낭만적으로 느껴졌지만, 사실 첫 한 학기는 너무 힘들어서 정말 많이 울었어. 다른 한국인 친구들은 전공 학점을 이미 다 채우고 와서, 수영이나 댄스 요리 같은 수업을 들었다면, 나는 전과를 한 탓에 이곳에서도 최선을 다해 전공 수업으로 빽빽하게 채워야 했는데, 미디어 학과의 특성상 수많은 에세이는 기본! 토론과 발표로 가득 차 있었거든. 영어로 자기 의견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아시아인 교환학생에게 반 친구들은 관심이 없었고, 한 번은 나를 가운데에 두고 없는 사람인양 얘기를 하더라. 그때 잘 마시지도 못하는 보드카를 병째로 마시고 울다가 잠든 것 같아. Ghosting이라는 단어도 그때 터득했지. 


근데,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이른 새벽잠에서 깨보니 왠지 후련한 거야. 그리고 '외국인인 내가, 미국에 처음 온 내가 영어로 말을 못 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어. 나는 내 모국어도 아닌 영어를 읽고 쓰고 알아들을 수 있고, 중국인 룸메이트가 쓰는 한자도 대부분 이해할 수 있는데 이 반에 있는 애들은 모국어 하나만 하면서 날 무시할 자격이 있나 싶더라. 그러면서 남은 시간 동안은 틀리더라도 최대한 많이 말하고 부딪혀 보기로 했어. 사회학이나 박물관학 등 다양한 분야의 수업을 들으며 사용하는 단어의 카테고리를 확장시켰고, 파티가 있는 목, 금요일에는 기숙사를 돌아다니며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어. 방법은 아주 간단해. 월마트에서 맥주 한 팩을 사서 음악소리가 들리는 방을 노크한 후 가능한 한 입꼬리를 끝까지 올린 상태로 "나도 껴도 돼? 위층에 사는 OO라고 해. 반가워!"를 말하는 거야! 실패확률 0%을 기록한 이 방법으로 친구들도 많이 생기고, 남자친구도 사귀며 영어 실력을 많이 늘릴 수 있었어. 술 먹으면 평소보다 언어 능력이 3배 정도 올라간다는 소리가 사실이더라고. 자신감이 풀로 충전되어서 그런 걸까, 눈에 뵈는 게 없어서 그런 걸까. 그게 그거겠지? 


물론 미국에서 공부했던 1년간 인종차별도 당하고, 눈에 파묻혀 미아가 될뻔하기도 하고, 돈이 부족해 다른 친구들이 여행할 때 혼자 남아 베트남 친구들에게 의지해 숙식을 해결해야 했던 적도 있지만 (**방학 동안에는 교내 식당이 운영을 하지 않고, 안전상의 문제로 기숙사에는 음식을 요리할 주방이 없어) 나는 이때의 내가 너무 멋지고 사랑스러워. 살면서 처음으로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두려움을 똑바로 마주하면서 도망치지 않고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끊임없이 부딪히고 앞으로 전진했던 한 해인 것 같거든. 그러고 보니 이때 얻은 자신감으로 졸업 후에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도 가고, 또 혼자 배낭여행도 하고, 첫눈에 반한 스페인 남자에게 데이트 신청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사실 처음 '19살의 나에게'라는 주제로 너에게 편지를 부치기로 마음먹었을 때까지만 해도 미국 교환학생 시절을 비롯해 10년간 차곡차곡 쌓인 나의 경험들로, 스스로를 더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기회와 어려움에 닥쳐도 도망가지 않을 용기를 주고 싶었어. 근데 2달 동안은 길을 잃고, 자신감도 함께 잃어버려서 너에게 할 말이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어. 그래서, 다시 삶을 돌아보고 몸과 마음을 회복하기로 다짐했던 거야. 


늦은 편지에도 나를 잊지 않아 줘서, 우리만의 우체통을 열어줘서 고마워. 길다면 길, 짧다면 짧을 너의 20대에 혹시나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찾아온다면 한 번쯤은 도망가지 말고, 조금은 뻔뻔하게, 하지만 죽을힘을 다해 너만의 방법을 찾아 전진해 보자! 안 써본 근육을 많이 써야 해서 결코 쉽지 않을 거야. 나도 처음 모르는 방에 노크를 할 때 얼마나 손발이 오글거리고 침이 마르던지! 그래도 이런 기억을 한 개라도 만들어 놓다 보면, 지금처럼 내 존재가 쓸모없이 느껴지고, 나도 모르게 몸이 움직이지 않을 때 다시 너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만들어 줄 거야. 술 한잔, 약 한 알보다 더 강력하고 훨씬 더 건강한, 오직 너만 가질 수 있는 추억 한 스푼의 힘이랄까. 


나도 이제 현실부정기와 방황기를 거쳐 다시 무언가를 시작해보려 해. 작은 성취도 일기장에 소중히 기록하면서, 스스로를 믿지 못해 포기했던 분야도 배워보면서 말이야. 다음 편지는 조금 더 밝은 모습으로 돌아올게! 긴 편지 읽어줘서 고마워. 





















이전 24화 진짜 어른의 기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