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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다지 Aug 12. 2024

나의 더듬이들을 꺾지 마세요.

스물다섯 번째 편지: 인생의 관심사가 하나일 수는 없어요.

너는 더듬이가 여러 개라는 진단을 받아본 적이 있니? 나도 그런 말은 처음 들어봤어. 참, 여기서 더듬이는 주변 혹은 다양한 것들에 대한 관심 혹은 상상력을 뜻하는 말 이래. 마치 주파수를 찾는 옛날 텔레비전의 안테나 같은 거지. 


17살 때였어. 나는 38년 만에 부활한 '연합고사'를 보고 고등학교에 입학을 했지. 국, 영, 수, 사, 과는 물론 가정과 음악 체육 등 10개 과목을 공부해야 하는 시험이었는데, 반발이 심해서인지 다음 해에 주요 과목만 시험을 보는 것으로 좁혀지더니 그 후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더라. 정말 눈물 나게 억울했어. 


그래도 남들 놀 때 미친 듯이 공부한 덕분인지, 400명 중에서 무려 전교 2등이라는 성적으로 의기양양하게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 기분은 한 달도 채 가지 않았어. 성적대로 배치된 책상과 침대, 같은 과외 수업 혹은 학원에 다니는 친구들끼리 무리 지어 다녔던 기숙사 생활을 견딜 수가 없었거든. 그도 그럴 것이 중학교 때 나는 학원 대신 친한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교실에서 토론하고 각 과목의 선생님이 되어 시험문제를 내주며 공부했었는데, 여기는 내가 아는 공부 방법을, 내가 가지고 있는 자료를 절대 나누지 않더라고. 함께 하는 공부가 가장 좋은 결과를 내는 줄 알았고, 그래서 공부가 재미있었던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지. 


고등학교 수업의 속도도 따라가기 버거웠어. 선행학습을 하지 않았기도 했지만 (내가 살던 동네는 학원이 없었어) 나는 그때그때 궁금한 것이 있으면, 관련된 서적이나 영상 자료를 굉장히 넓고 깊게 찾아보는 편이었거든. 근데, 그럴 시간도 없거니와 선생님께 질문을 하면 반 친구들의 시간을 잡아먹는, 공부하기 싫어하는 사람 취급을 하더라고. 시험에는 그런 거 안 나온다고, 쓸데없는 거 질문할 시간에 문제 하나 더 풀라면서. 머지않아 극심한 우울증과 스트레스로 매일매일 두통과 장염에 시달리고 가족들의 응원과 위로도 공격적으로 반응했어. 소리를 지르면서 책을 찢고, 물건들을 던지고, 벽에 낙서를 하고... 주말에 집에 가면 방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았던 것 같아. 


그때 상담센터에서 수많은 테스트를 한 후 들었던 말은 "더듬이가 너무 많다."였어. 상상력이 몹시 풍부하고, 주변에 대한 관심이 아주 많으며, 다양한 분야를 경험하고 싶어 할 거라고. 그래서 지금 공부에 집중을 못할 가능성이 많고, 평소 예민한 성격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지만, 당시 엄마에게는 이 말이 굉장히 부정적으로 다가왔나 봐. 걱정이 배가 되어 돌아온 엄마는 내가 집중할 수 있도록 방에서 책을 다 치우고 깔끔한 독서실 책상을 사줬어. 그리고 매일 나를 보고 명상을 하라고 아주 큰 거울도 방에 두었지. 거울이랑 명상이랑 무슨 상관일까. 


답답하고 짜증 나던 입시 지옥에서 벗어난 대학 생활은 그야말로 천국이었어. 이제 숨겨왔던 더듬이를 활짝 펼치고 여기저기 냄새를 맡고 누빌 시간이었지. 한복 동아리, 멘토링 동아리, 필리핀 해외봉사에 답이 없는 공부를 하고 싶어서 언론영상학부로 전과도 했어. 교환학생을 가서는 전공뿐 아니라 사회학, 박물관학, 여성학 등의 수업을 듣고 줌바 댄스에 빠지기도 했지. 근데, 이걸 어쩌지? 더듬이도 펼쳐야 하는 방향이 정해져 있다는 거야. 


4학년 1학기, 처음으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써서 취업 상담을 받으러 간 날이었어. 높은 성과에 비해 학생 여럿 울리기로 유명했던 상담 선생님이 나를 보고 딱 한 마디하시더라. "아, 참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이력서가 조금 난잡하네요." 순간 잘못 들은 줄 알고 다시 물었지. "난... 잡이라 함은 어떤... 의미일까요?" 


선생님은 안경을 날카롭게 한번 지켜 올리며 답했지. "언론영상학부에 마케터 직무를 희망했으면, 관련된 활동으로 1학년때부터 채워도 모자란데, 이건 뭐 하고 싶은 걸 너무 많이 한 거 아니에요? 너무 놀았네." 그 한마디에 그동안의 행복하고 뿌듯했던 경험들이 얼마나 쓸모없이 느껴졌던지! 취업이라는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하하 호호 현재만 즐겼던 나 자신이 얼마나 한심하게 보였던지! 또 한 번 나는 다른 사람의 말로 내 더듬이를 원망하고 스스로 부러트렸어. 


6년이란 시간이 지난 이제는 알아.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는 것을, 더 일찍부터 내 더듬이를 그대로 인정해 주고 사랑해 주었다면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다는 것을. 누군가는 난잡하다고 말한 나의 이야기들을 멋지게 바라봐주는 회사는 분명히 있고, 새로 만난 사람들과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으며, 그 이야기들로 이렇게 브런치에서 글도 쓸 수 있으니까 말이야. 


시각 디자인을 공부했기에 음료 연구원을 거쳐 카페를 창업할 때 스스로 인테리어 디자인을 할 수 있었다는 카페 시즈녹의 S사장님, 법무사는 시험에는 떨어졌지만 그때의 기억으로 법률 사무소에서 조기 승진을 할 수 있었다는 친구 H, 그리고 2년간 준비한 미대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래픽 능력이 뛰어난 조경 기사로 인정받고 있는 내 동생 Y의 이야기처럼. 


더듬이가 너무 여러 개라 하나에 집중을 제대로 못하면 좀 어때. 관심 있는 걸 빨리 해보고 또 그러면서 내가 좋아하는 걸 찾아가면 되는 게 아닐까?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남들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네가 가지고 있는 더듬이들을 하나씩 꺾어 휴지통에 처박아버리지 말자. 꽤 오랜 시간 내 더듬이들을 휴지통에 버리고 나니, 다시 그 더듬이들이 보고 싶을 때 어디 있는지 찾기가 너무 힘들더라고. 


많은 더듬이들로 남들보다 조금 느리게 느껴지거나, 오랜 시간 나만의 길을 찾지 못한다고 좌절하지 않길 바라며, 혹시 거울 앞에 울고 있는 10년 전의 나를 발견했다면, 꼭 한 번만 안아주라. 


그럼, 다음 주에도 우리만의 우체통에서 만나. 그동안 나는 잃어버린 더듬이들을 조금 더 찾고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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