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 가면 너희처럼 따뜻해질 수 있을까?

방랑객 노라의 고군분투 미국 교환학생 적응기 Ep_8

by 보통의 다지

엥?

'미국 교환학생 적응기라면서 왜 뜬금없이 베트남 얘기야?'라고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게 베트남은 미국 생활에서 절대 따로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는 단어다. 아니, 반드시 얘기해야만 하는 주제다. 나에게 너무 소중한 사람들이고, 잊지 못할 추억들이니까.


그렇다. 나에게는 소중한 베트남 친구들이 있다. 그리고 신기하게 이 친구들과는 친해진 과정이 모두 다르다. 타국에서 공부를 하다 보면 같은 나라 친구들끼리 어울려 다녀서 한 명의 친구를 알게 되면 건너 건너 다 같이 알게 되는데, 난 좀 다른 케이스였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들이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웃기고 신선하다.


우리는 이렇게 친해졌다.


먼저 늉, 옆 방 사는 친구라서 매일 밤 라면에 맥주를 같이 먹다가 친해졌다. 늉은 맥주를 참 잘 마셨다.

냐, 같이 ESL 수업을 듣는데 한국인들 사이에 유일하게 베트남인이라 잘 끼질 못하고 있어서 말을 걸었다.

그리고 그를 통해 바이 섹슈얼에 대해서 접하고, 또 성적 정체성에 대해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대니, 같이 미술 수업을 듣다가 친해졌다. 이 친구는 행정학관데 헤어 디자이너가 부업이면서 화가다. 하지만 끝까지 내 머리는 안 잘라줬다. 상당히 심각했는데.

크리스, 얘가 젤 웃기다. 나는 참 술에 취해 사는 날이 많았는데 친구를 데려다주고 방문을 잘못 찾아 이 친구 방에 들어갔다. 불을 끄고 자고 있었는데, "아, 더 마셔야 하는데 왜 불을 껐어~ 어두워 어두워" 하고 불을 켜고 눈이 마주치고 도망을 가고 다음날 제대로 사과를 했다. 아, 그리고 그 뒤로 내가 가장 먼저 좋아한 사람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었지)

학기 마지막 날, 쿠바로 떠나는 나를 배웅해주는 크리스
행정학을 전공하고 헤어 디자이너를 부업으로 하며 초상화를 그리는 대니. 프로 N잡러


이 친구들을 만나기 전까지 나에게 베트남이란 동남아시아에 있는 공산주의 국가이자 저렴한 관광지에 불과했고, 미국에서 베트남 친구들과 가까워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리고 나 조차도 베트남인에 대한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베트남인에 대해 미디어에서 조명하는 건 '사기 국제결혼의 피해자' 뿐이였으니까.


친구들은 매 학기마다 수석을 놓치지 않는 학생들이었고, 내가 만난 그 어떤 나라 사람들 보다도 깨어있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역사와 정치에 관심이 많았고, 확실한 비전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미국은 방학이 되어도 기숙사에 남아 있을 수는 있지만 (교환학생들은 공짜로 있을 수 있다) 식당이 열리지도, 차 없이 장을 보러 가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남아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남아 있어야 했다. 바로 여행을 떠날 돈도 없었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배가 고팠다. 매일 영하 17도에서 20도까지 내려가고 눈은 무릎까지 오는 날씨에 우버를 부를 수도 없었고, 미리 시켜 놓은 라면도 입에 점점 물리기 시작했다.


그때 친구들이 먹을 것을 들고 내 방으로 왔다. 주방이 있는 다른 기숙사에서 음식을 해서 내 방까지 배달을 해주고 "왜 말을 안 했어! 바보니? 우리 친구 아니야?"라고 쓴소리를 하면서 "이제부터 매일 같이 먹어. 재밌을 거야. 베트남 음식을 즐길 준비가 되었는가!"라고 외쳤다. 그날 먹은 베트남식 새우 볶음밥과 청경채 볶음이 왜 그리도 맛나던지. 교환학생을 마치고 그 맛을 잊지 못해 베트남으로 갔는데 아무리 유명한 식당에 갔어도 그 맛이 안 났다. 도대체 뭘 넣은 거야. 우정 한 스푼에 따뜻함 두 국자를 넣어서 그런가.

친구들이 해준 음식. 모든 게 얼어 붙은 추운 겨울에 몸을 녹여주는 음식들이었다.

2년 반이 지난 지금도 친구들과 아무도 없는 눈 쌓인 학교에서 눈 밭에 맥주를 꽂아 놓고 격렬하게 눈싸움을 하고 맥주병을 부딪히던 기억이 날 때마다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리고 조금씩 아득해져만 가는 것 같아 조금은 슬프기도 하다. 물론, 베트남에서 다시 만나 다시 맥주잔을 부딪힐 수 있었지만 말이다.

눈에 얼굴 찍는 게임을 했다. 정상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더 즐거웠나보다.


아, 크리스에게는 끝까지 내 마음을 얘기하지 못한 채 한국으로 돌아와 1년이 지나고서 웃으면서 말을 했다.

크리스가 얘기할 때 얘기할 걸 그랬나. 모르겠다. 그땐 너무 부끄럼이 많았다.


5월 25일, 교환학생을 마치고 쿠바를 거쳐 보스턴에서 시간을 보내고 뉴욕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크리스도 그날 마케팅 콘퍼런스가 있어서 뉴욕에 있었기에 함께 브루클린 브릿지를 걸었는데, 갑자기 "노라, 손 좀. 손 잡자 우리."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날 사실은 자기도 나를 친구 이상으로 좋아하고 있었지만, 말을 하지 못했다는 말을 담은 편지를 받았다.


다음날, 새벽이 다 되어가는 시간에 크리스는 내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2시간이나 지하철을 타서 나를 공항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를 하는 나의 이마에 살짝 키스를 해 주며 코를 훌쩍거렸다. 돌아서서 비행기에 탄 후까지도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금방 다시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참 기나긴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코로나가 터진 후 베트남에 대한 여론도 좋지 않고, 요즘 베트남인을 비하하는 발언을 종종 댓글에서 보곤 한다. 물론, 몇 명의 이상한 사람들이 잘못을 한 건 맞지만 그들 때문에 베트남인과 베트남 자체를 욕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내 친구들이 이런 댓글을 보게 될까 걱정이 된다.


그리고, 베트남을 여행할 때마다 한국 남자들이 베트남 여자들 뒤에 서서 온갖 성희롱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걸 몇 번이나 들었는데, 자신을 깎아내리는 행동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어느 겨울밤, 잠이 오지 않아 친구들과 함께 베트남 전쟁에서의 실화를 다룬 '알 포인트'라는 공포영화를 본 적이 있다. 영화가 끝난 후 친구들에게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인에 대해서 악 감정이 없어? 물론 한국이 베트남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은 아니고 우리도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간 전쟁이었지만, 저렇게 민간인들을 학살하고 또 마을 여성들에게 성폭행을 자행한 사실은 사실 용서받기 힘들잖아."


친구들은 대답했다.

"물론 저런 짓을 한 건 잘못된 거야. 그 사람들은 평생 용서받지 못할 거야. 아마 영화의 등장인물처럼 스스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을지도 몰라. 근데 그 사람들의 잘못을 지금까지 잡고 있을 수는 없어. 우리는 현재를 살아야 해. 지금 한국은 베트남의 친구야. 함께 나아가야 할 경제적, 정치적 파트너고."


그렇지. 아픈 과거도 있지만 지금은 파트너다. 같은 아시아 국가에 있고, 또 식민지였던 나라에서 성장하고 있는 나라의 국민이다.


그러니, 이제는 똑같은 상황을 만들지 말자. 소중한 친구들의 나라를 그렇게 만드는 건 너무 화나고 속상하다.

그 해 6월 다시 만난 친구들과, 하노이에서.

* 베트남도 다낭을 기점으로 빠르게 코로나가 재 확산 중이다. 부디 베트남에 있는 친구들도, 그리고 미국에 남아 있는 친구들도 모두 무사하기를.


* 오늘은 참 글이 거의 의식의 흐름처럼 정신이 없다. 이래서 글은 바로바로 써야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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