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시간으로 오늘은 처음 미국에 와 대학에 다니게 되면서 한국과 달라 당황했던 몇 가지에 대해서 써 보려고 한다. 사실 교환학생 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미드라는 걸 본 적도 없었고, 또 아는 미국 친구들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이런 것들에 대해 무방비였다.
이제와서는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추억거리가 되었지만, 처음 겪는 문화 차이에 적잖이 당황했었다.
별거 아닐 수도 있는 이 이야기들이 조금이나 예비 교환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자, 그럼 시작해볼까.
1. 수업시간에 질문은 당연한 것이며 질문이 없을 땐 대답이라도 하자.
: 지금은 조금 나아졌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학교에 있었을 때는 수업 시간에 질문을 하기 어려웠다. 시간이 없으니 빨리 진도를 빼려 하는 선생님과 함께 하는 완벽한 주입식 수업을 받으며 커왔다. 그리고 대학에 가서도 이는 여전했다. 내가 처음으로 수업 시간에 입을 뗀 건 전과를 한 2학년 1학기 첫 수업 시간이었다. 매주 하나씩 기획서를 가지고 토론을 하고, 또 매 수업시간마다 팀별로 밀착 피드백을 받는 이 학과에서는 입을 떼지 않는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50명이 넘는 학생들이 있는 교양 수업시간에는 침묵했다. 때로는 그러다 졸기도 많이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전공이든 교양이든 '침묵하는 자 = 생각이 없는 바보' 취급을 받는다.
사회학 시간, 항상 교수님은 3명씩 조를 짜서 마지막 20분 동안 3가지 문제에 대해 토론을 하게 하셨다. 한국어로는 조금이라도 말을 할 수 있었지만 그때는 영어도 너무 부족하고 무엇보다 '이게 답이 아니면 어쩌지?'라는 완벽 콤플렉스에 잡혀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이후로 매번 팀은 바뀌지만, 나와 얘기를 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가운데에 앉아 있어도 아무도 날 쳐다보지 않았고, 내가 유령인지 사람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 뒤로 교수님께 상담을 청해, 내가 영어 실력이 부족해 빨리 생각을 정리할 수가 없으니 미리 질문을 알려주시면 미리 준비를 해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도와주셨다. 그리고 서서히 반 친구들과 얘기를 하고 팀플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러니, 수업시간에는 절대 침묵하지 말자.
2. 성공적인 팀 프로젝트는 민첩함에서 나온다
처음 팀 프로젝트를 위해 팀원을 짜라고 했을 때 정말 당황했다. 한국에서 수많은 팀 프로젝트를 경험해 본 결과 팀을 구성하는 과정은 1) 공정성을 위해 교수님이 정해주는 경우 2) 자발적으로 결성하여 교수님께 알리는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자발적으로 결성한다고 해도 서로의 역량과 성향을 어느 정도 간파한 후에 팀을 결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성적을 잘 받기 위해서 다른 팀을 이겨야 하는 한국의 성적 방식과 상당히 거리가 먼 이곳에서 (미국의 성적 평가는 절대 평가다) 팀원을 정하는 과정은 굉장히 '대충대충'이었다. 교수님의 "자, 우리가 기말 프로젝트로 광고 기획 및 스토리 보드 짜는 게 있어요. 팀원은 최소 2명에서 최대 3명으로 구성하면 됩니다. 다음 주까지 알려주세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팀원은 다 짜져 있었다. 엥?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렇다고 꼭 친한 친구끼리 한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냥 그날 우연히 옆에 앉은 사람에게 "Hey, you?", "cool"식으로 수강신청보다 빠른 속도로 팀을 만들고 있었고 교수님의 말씀을 끝까지 들은 죄 밖에 없는데 나는 그렇게 혼자가 되었다. 다행히 그날 결석을 한 아주 힙한 친구와 팀이 되어 아주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었지만, 정말 당황스러웠던 경험이다. 그다음부터는 어떤 수업을 가도 팀 프로젝트가 있다고 하면 첫 주부터 물밑작업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나도 살아야지.
3. 겸손 떨 필요 없다.
한국에서는 '겸손이 미덕'이라는 말도 있지만, 미국에서는 'What the hell?'이라는 소리를 들을 거다. 겸손해 보이려고 열심히 나를 낮추다 보면 진짜 내 가치를 떨어뜨릴 수가 있다. 미국 친구가 왜 한국 친구들은 칭찬을 칭찬으로 못 받아들이고, 자신을 깎아내리려 하냐는 말에 굉장히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그다음부터는 "괜찮아.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에이 아니야." 이런 말보다는 "고마워, 네가 최고야.", "나도 알아, 나 멋진 거." 하면서 웃으면서 넘긴다. 당시의 남자 친구가 "넌 참 똑똑하고 귀여워."라고 할 때마다 "나도 알아. 계속 말해줘 듣기 좋으니까."라고 말할 때마다 빵빵 터지면서 좋아했던 게 생각난다. 매일 이런 습관을 들여서인가 미국에서는 자존감이 수직 상승했다. 다시 시작해볼까. 가능할지 모르겠다.
4. 그들이 당신과 다른 옷을 입었다 하여 당황하지 말라
패션에 관한 얘기가 아니다. 아니, 그럴 수도 있겠다. 내가 있던 학교는 9월부터 4월까지 눈이 오는 곳이었다. 미국은 어딜 가나 대체로 한국보다는 따뜻할 줄 알았지만 (나만 그런가) 절대 네버 아니었다. 게다가 11월 달이 되면 영하 20도까지 떨어지고 매일 폭설이 내려 주차장에서 차를 찾을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런 날씨를 비웃기라도 하듯 친구들은 학교 후드 한 장에 반 바지에 쪼리를 신고 수업에 왔다. 기숙사 사는 친구들 아니냐고? 그런 친구들만 그랬으면 말도 안 꺼낸다. 게다가 우박이 떨어지는데 우산도 안 쓰고, 폭우가 쏟아져도 헤헤거리면서 맞고 다닌다. 친구한테 왜 그런 짓을 하냐 물어보니 간단하게 말해준다 "looks cool". 한국어로 잘 번역해 보면, 쓸데없는 허세인 거지. 아 근데 캠퍼스에서 아무도 우산을 안 쓰다 보니 나도 뻘쭘해져서 안 쓰게 되었다. 역시 Peer pressure은 무섭다.
5. 엄청난 빨래의 양에 두려워하지 말라
한국에서는 빨래에 있어 부지런한 편이 아니었다. 그리고 깨끗한 편도 아니었다. 적어도 흰색과 검은색 옷은 따로 빨 줄 알고, 속옷은 빨래망에 분리해서 담을 줄 알며 건조할 때 섬유 유연제 한 장 넣는 센스 정도는 있는 딱 그 정도의 보통 사람. 내가 사는 기숙사에서 이런 과정을 거쳐 빨래를 하는 사람은 한국인 교환학생들이 유일했다. 모든 미국 사람들이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내가 1년 동안 기숙사에 살면서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렇게 빨래를 한다고?'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우선, 빨래망의 크기가 한국의 3~4배. 옷을 자주 갈아입는 건지 자주 안 돌리는 건지 내 키만 한 거대한 빨래망에 모든 종류의 옷을 들고 와 때에 찌든 양말이든 팬티든 흰 셔츠든 군복이든 그냥 돌린다. 뒷일에 대한 걱정은 다음 사람의 몫이다. 근데 왜 또 그렇게들 안 가져 가는지. 기다리다 지쳐 꺼내다 만져본 남자 속옷이 오십 단위가 넘어간다. 제발, 다른 사람 좀 배려해 주겠니.
6. 친구 방에 들어갈 때는 꼭 손잡이를 확인할 것
'How I met your mother'이라는 미드를 보면 기숙사에서 잠자리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걸 보고 이게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싶었다. 1인실이면 몰라도 친구랑 같이 쓰는 방인데. 하지만 실제였다. 기숙사에서 열리는 파티에 가면 방문이 잠기고 양말을 걸어 놓는 곳이 있었는데 그 의미는 '나 지금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멀리멀리 가'라는 뜻이다. 양말이 걸려 있는데 무작정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음날 친구에게 폭풍 잔소리를 들을지도 모르니 꼭 체크하자. 남녀가 같이 쓰는 기숙 사고, 한국처럼 통금도 또 관리하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커플이 동거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샤워를 하고 부스에서 나오다가 다른 방 친구들의 남자 친구들과 거의 반 나체로 마주치는 경우도 꽤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놀라 소리도 안 나왔지만, 나중에는 이런 것도 적응이 되는지, 인사를 하곤 했다. 가끔은 너무 시끄러워서 총장님이 있는 자리에서 조용하게 말씀을 드렸더니, 총장님 왈, "그게 대학생활이지. 하하하." 참고로 총장님은 신부님이시고, 내가 다닌 학교는 가톨릭 대학교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낯선 곳에 떨어져서 대학 생활을 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나도 시행착오를 정말 많이 겪었고 적응하는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깨달은 건, 여기도 다 사람 사는 데라는 것. 그 친구들도 내가 이곳이 처음인 것을 알고, 문화가 다르다는 것쯤은 안다. 그러니 이해가 되지 않거나, 궁금한 것이 있다면 친구들이나 교수님께 바로바로 물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적응해 보겠다고 질문하는 외국인에게 감히 누가 침을 뱉겠는가. 용기를 내자. 그리고 부딪히자. 몇 달이 됐든, 몇 년이 되었든 내가 있어야 할 곳이면 그곳에 나를 맞추는 것이 빠르다. 지금은 이렇게 5개를 썼지만, 생각이 나면 더 추가할 생각이다. 또는, 다른 에피소드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참고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