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잘 지내?

그 말, 진정 나를 위한 게 맞나요?

by 보통의 다지

나를 가깝게 지내던 한 동아리 오빠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랜만의 연락이라 기쁘게 답장했다. 아주 잘 지낸다고.


"취준 중이지?" 그가 물었다.

그렇다 했다.


여기서 가벼운 응원 정도만 해 줬더라도 참 좋았을 텐데.


"컴활 1급 준비 중? 그거 왜 하는 거야 근데? 2급이면 충분할 텐데. 문과면 또 따기 어려울 텐데 그렇지?"

어렵다했다. 하지만, 할 수 있게 만든다 했다.


그는 또 한 번 대화를 이었다.

"너 이번에 한국사도 땄다며? 공기업 가려고? 전공은 안 살리는 걸로?

그거 아니면 좀 시간 아깝지 않나. 한국사 없어도 회사 지원하는데 큰 문제없어."


아직 모른다 했다. 그게 나의 최선이었다.

취업. 그래 나는 취준생이다. 하지만 그게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니고, 내가 내리는 모든 결정의 이유가 되는 건 아닌데.


솔직히 말하면, 전과까지 해서 선택한 전공인만큼 전공도 살리고 싶고, 공기업 인턴도 경험해 보고 싶어서 시험 준비를 생각한 건 맞다. 하지만 그건 내가 이것을 공부한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컴맹인 나를 극복하고 디지털 세상에서 생존자가 되고 싶었고, 워홀 생활을 할 때 한국의 역사를 특히 식민지의 역사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했다.


내가 그에게 설명하지 않았기에 그렇게 받아들인 걸 수도 있겠다 할 수도 있겠으나, 꽤나 쓰린 말들이었다.


나는 굳이 설명하는 것을 포기했다. 이미 이 연락의 목적을 알아버렸으니까.


"사실 나 이직했어. 여기는 돈을 꽤 많이 주네. 요즘 차를 살까 고민 중이야. 회사에서 차를 제공해주려나. 아 그리고 나 사실 회사 다니면서 자격증도 땄어. 요즘 5시간 밖에 못 자서 너무 힘들다."


그리고 이런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연락을 한 친구는 sky 중 하나로 편입에 성공했다며 너는 어떻게 지내냐 힘들지 않냐라는 영혼 없는 안부를 건네고 사라졌고, 또 다른 친구는 자신의 취업 성공 이야기를 일대기처럼 들려주며 요즘 스페인어를 공부할 때가 가장 즐겁다는 나에게 그런 건 취업 이후에나 하는 거라며 꽤나 날카로운 조언을 던졌다.


호주에 가서 코로나로 갇혀 있을 때, 그리고 돌아와 몇 줄을 무기력하게 보내면서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어떤 안부도 전하지 않던 사람들.


연락은 하지 않아도 SNS를 통해 서로의 상황은 어느 정도 알 텐데, 그러기에 어떤 인사가 대화를 시작하기에 적합한 것인지도 알고 있을 텐데. 나의 착각이었다.


코로나 세대, 취준생.

청정지역이라고 믿어왔던 내가 사는 도시까지 광복절 집회 이후 끊임없이 확진자가 나오면서 희망이 조금씩 내려앉는다.

그러면서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나 자신과 내 삶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누가 진짜 내 옆에 있는 사람인지 하나씩 보이기 시작한다.


누구 하고나 친해질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 누구든 품을 준비가 되어 있었던 어리숙했던 나는 이제 없다.

이런 변화가 슬프진 않다.


"요즘 잘 지내?"

본래 참 따뜻한 습성을 가지고 있는 이 인사를 그들은 전혀 다른 용도로 사용하며 그 가치를 깎아내렸으니까.


더 이상 속지 않는다. 그리고 더 이상 불편한 관계에 발을 담그지 않는다.


난, 이걸 성장이라고 정의 내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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