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소중한 취미를 잃어버렸다

가장 좋았던 글쓰기가 이제는 가장 어려운 일이 되었다.

by 보통의 다지

나에게 글은 어린 시절부터 가장 소중한 친구였다. 지금과 달리 사교성이 뛰어난 아이가 아니었던 나는 주로 나의 일기장과 대화를 했다. 빨간 머리 앤과 키티처럼 말이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녔었을 때는 작은 자물쇠가 달린 '비밀 일기장' 이 유행을 했었는데, 남들에게 말 못 할 속 나의 속마음들을 모두 그곳에 담았었다. 일 년에 한 여덟 권 정도 썼나? 몇 개는 졸업 후 타임캡슐로 학교 운동장에 묻고, 나머지는 본가 창고에 있는데 가끔 열어보면 민망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다.


대학에 다니면서도 글 쓰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디지털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 년 간 함께 할 일기장을 고르는 것으로 새해를 맞이했고, 동시에 누군가와 공유를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는 블로그에 꾸준히 기록했다. 나의 교환학생 시절도, 다사다난했던 나의 워킹홀리데이도, 자가격리와 이후 방황기도 나의 블로그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특히, 코로나 이후 늘 나에게 보상이 되어 주었던 '여행', '카페 투어', '운동' 등의 것들이 사라지면서 글은 나를 코로나 블루로 가지 않게 하는 거의 유일한 취미가 되어 주었다.


하지만 인턴을 시작하고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내가 간절히 원했던 곳이었고 또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최적의 직무였지만 내 목표를 이루는 대신 나의 취미를 잃었다. 취미가 일이 되면 흥미를 잃는다는 말을 종종 들었었는데, 그게 내가 될 줄 몰랐다. 스타트업 마케팅 인턴으로 일을 하면서 나는 정말 다양한 글을 쓰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게시물부터 기자들에게 보낼 메일, 요즘에는 블로그에 쓸 콘텐츠와 잡지 광고 시안을 구상 중이다.


그리고 거의 매일 내가 쓴 글을 매니저님께 보고 드리고 피드백을 받는다. 매니저님께 통과를 받으면 회사 마케팅 방에 공유하여 본부장님과 경영진의 피드백도 받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이 인턴인 나에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내가 생각했을 때도 매니저님의 피드백을 거치면 결과물이 바로바로 좋아진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점점 내가 글에 흥미를 잃어간다는 것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예전에는 10분이면 A4용지 2장은 거뜬히 채웠을 내가, 이제는 한 문장도 쓰기 어려워졌다는 거다. 언제나 나의 친구가 되어 주었던 글. 나를 힐링해주었던 글 쓰는 시간들. 이제는 이 모든 것들이 부담으로 다가온다. 내가 적는 모든 글자가 평가의 대상이 되는 것 같아서.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머릿속으로 몇 주동안이나 생각을 하다가 겨우 손으로 옮기는 중이다. 지난해 샀던 일기장은 글을 자주 쓰지 않아 올해는 새로 살 필요가 없게 되었다. 어려운 시기에 내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하고 행운이라고 생각하지만, 내 취미를 잃어버리게 되어서 속상하다.


어렵지만 일과 나의 사생활을 분리시키고 다시 나의 소중한 친구를 찾아와야겠다. 이 글이 그 시작이 되었으면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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