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근, 회사에서 울 뻔했다

by 보통의 다지

뭐든 해도 안 될 것 같았던 2020년, 나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지원했던 회사 중에서 가장 가고 싶었던 곳에서 연락이 왔고, 마케팅 인턴으로 일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흘렀다. 사업 개발 본부장님과의 2차 면접에서 제대로 답변을 한 게 없어서 이 회사는 물 건너갔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사람 일은 예측할 수가 없다.


스타트업이지만, 일반 중소기업보다 더 규모가 있고, 외국계 회사라서 항상 영어를 달고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 이 회사가 참 좋았다. 또, 이 회사가 가지고 있는 기술을 전적으로 믿고 또 엄청나게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 곳에서 내 역할이 있다는 것이 참 행복하다.


하지만, 사실 나는 합격 전화를 받고 나서부터 출근 후 일주일 내내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다.

기술 기반의 회사다 보니 똑똑한 개발자와 엔지니어 분들이 정말 많았는데, 그들 사이에서 마케팅이라는 업무는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공대 나온 사람들 뽑아서 마케팅 가르치지, 굳이 문과생을 왜 뽑나."

"문과생인 우리가 설 자리는 없어. 먹고살려면 더 늦기 전에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워야 해."


막 학기 때부터 수도 없이 들어왔던 이런 말들이 회사에 출근도 하기 전에 날 주눅 들게 했고, 개발자들 앞에서 쫄게 만들었다. 내가 잘하는 게 뭐였는지, 그게 있긴 했는지, 왜 나를 뽑았는지... 나의 자존감을 깎아 먹는 질문들을 어느새 스스로 꼬리 물기 식으로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의 사수이자 마케팅 매니저님과의 대화 후에 깨달았다.


엊그제, 여느 때와 같이 오전 11시에 매니저님과 전날 했던 작업들과 오늘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회의를 하고 있었다. 할 것을 다 마치고 노트북을 접으려던 찰나, 매니저님이 힘들게 입을 떼시는 것을 보았다.

"노라님, 일과는 관련이 없지만 제가 드리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요."

너무 긴장해서 심장이 터져 버리는 줄 알았다. 근 몇 달 동안 좋은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을뿐더러 항상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혹시 이번 주에 한 회식 자리에서 실수가 있었나, 어제 먼저 퇴근해서 그런가, 나 일을 너무 못하나... 엄청나게 많은 생각들이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매니저님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가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 회사는 엔지니어분들이 참 많죠. 정말 멋있고 대단한 분들이에요. 하지만, 그런 그들도 마케터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우리는 그런 존재예요. 화려하진 않지만, 우리도 대단한 일을 하고 있어요."


그 후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매니저님은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쉽게 뽑힌 사람은 없어요. 우리도 노라 님이 필요해서 뽑은 거예요.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노라님 포트폴리오에 있는 경험들, 쉽게 얻어진 거 하나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 말을 듣자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들었고, 또 한편으로는 부끄러웠다.


오는 지하철 내에서 다짐했다. 내가 하는 일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 말자고, 그리고 내가 해왔던 모든 경험들에 자부심을 가지자고. 나는 그래도 되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또 생각했다.

몇 년 후에는, 나도 불안해하는 후배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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