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완벽해 보였던 27살, 나는 정신과에 갔다

누구보다 잘 웃고 초긍정적이었던 내가 언제부터 아팠을까.

by 보통의 다지

정확한 날짜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몇 달 전부터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한 달에 한번 번아웃이 왔고, 몸이 아팠다. 하지만 그때마다 '내가 너무 열심히 일했나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인턴 6개월 차에 들어서자 나에게도 점점 많은 일들과 그와 함께 책임이 뒤따랐다. 10년 차 마케터인 나의 사수님이자 팀 매니저님은 '여유'를 말하며 언제나 '완벽'을 원했고 나는 인정받고 싶어서 나의 정신과 육체를 내던졌다. 그러다 보니 그렇게 하고 싶던 이 일이 즐겁지가 않았다. 언제부턴가 나의 성장을 위한 과정이 아닌 사수님께 혼나지 않기 위해, 한 번이라도 칭찬받기 위한 것이 되어버렸다.


이러던 중, 갑작스럽게 큰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혼을 하시고 자녀들과 왕래가 뜸했던 큰 아버지는 큰 조카인 나를 많이도 아끼고 사랑해주셨다. 장례식에서 한없이 눈물을 쏟고 슬퍼하면서도 나는 그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회사에 갔다. 그리고 바빴던 주, 하루의 연차를 냈던 것이 나의 일정에 무리가 올까 봐 그 누구보다 부지런히 움직였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이성적이었고 누구보다 강인했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착각이었다.

이건 내 생각이 아니라,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어 하는 모습이었으니까.


그리고 이 주전부터였나 나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밤잠이 없기로 유명했던 내가 9시면 기절하듯 잠에 들고 10시간을 넘게 죽은 듯 자는 거다. 계속되는 악몽에 자도 자도 피곤했고 머리가 미치도록 아팠다. 나름 꼼꼼하고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던 내가 3년 만에 만나는 친구들과의 약속을 까먹었고 아침 회의에도 지각을 했다. 또, '방랑객'이라는 별명을 가질 만큼 이곳저곳 다니며 언제나 새로운 것을 눈에 고이 담던 내가 집 밖으로 나가기가 싫어졌다. 그렇게 좋아하던 언어 공부도, 영상 편집도, 그림도, 요리도 다 지겨워졌다. 회사에서는 일을 못한다는 소리를 들을까 항상 벌벌 떨었고 미팅 때마다 속이 매스꺼웠다.


의사 선생님은 이것을 우울증과 불안장애라고 진단했다.

남들보다 조금 더 나에 대한 기준이 높고 그 덕에 내가 지금까지 많은 것들을 성취해 왔고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내 감정만큼 다른 사람의 감정도 너무 소중하니까 더 신경 쓰고 배려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정작 가장 중요한 내 마음을 돌아보지 못했나 보다. 미안했다. 나에게.


나에게는,

나를 언제나 지지해주는 가족과, 작은 걸로도 한 번도 다툰 적 없는 든든한 친구들과, 날 아끼고 내 말을 잘 경청해주는 남자 친구가 있고 이 팬더믹에서 날 뽑아준 비전 있는 회사가 있다.


그럼에도 나는 아프다. 그리고 누구나 아플 수 있다. 남들 앞에서는 잘 웃고 누구보다 밝고 긍정적인 사람도 안에는 곪을 수 있다. 어쩔 땐 자신도 모르게 말이다. 용기를 내서 간 병원에는 꽤 많은 내 또래들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불안한 사회 속 빈털터리인 20대에게 더 가혹한 지금, 어떻게 서든 자신의 마음이 더 다치지 않게 자주 물어봐주자. "너는 괜찮니?" 그리고 존버 밖에 답이 없다지만 가끔은 "포기해도 괜찮다." 고 도 말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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