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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다지 May 13. 2021

Ep.2 제가 사진과 영상 담당이라고요?

신입은 어떻게든 발버둥 쳐서 해 내야죠, 암요.

로봇회사지만 우리 회사는 IT나 로봇 박람회보다는 우리의 존재 이유인 외식 및 호텔쇼에 더 많이 참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마케팅 인턴으로 첫 출근을 하던 날은 코엑스에서 진행한 푸드테크쇼가 단 2주 만을 앞두고 있었다. 어떤 회사인지 적응할 틈도 없이 그리고 마케터로서 꼭 필요한 업계 동향, 경쟁사, 주요 타겟 등과 같은 정보도 잘 알지 못한 채 나는 박람회의 스텝으로 들어갔다. 


세팅부터 정리까지 총 5일에 걸친 박람회 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아침 9시부터 5시까지 점심시간 30-40분을 제외하고는 항상 서서 고객들을 만났고, 가장 먼저 와서 세팅을 하기 위해 6시에 일어났다. 가장 당황스러운 것은 내게 맡겨진 역할이었다. 분명 면접 때 영상은 기본 컷 편집만 가능하고 사진 촬영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Z세대라면 당연한 일인) 일상에서만 경험했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기 때문.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나는 '할 줄 모른다.'는 자신 없는 말보다 '해보겠습니다.'라는 용기를 택했다. 내게 온 기회를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하여 발로 차고 싶지 않았다. 언제나 '사서 고생하는' 나의 성격 덕분에 나는 5일 내내 사놓고 자동 모드 말고는 만져본 적이 없던 먼지 쌓인 나의 카메라와 친해지는 법을 배워야 했고, 매일 밤마다 다음날 사수님께 보여드릴 사진들을 위해 포토샵 사진 보정법을 스스로 터득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턴 초기 이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던 것을 다음과 같은 이유로 굉장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1. 사람들과 친해졌다

회사에서 행사에 참여한 인원은 총 6명 그리고 때마침 미국에서 CEO와 COO께서 자가격리를 마치고 방문했다. 매일 다른 팀과 2명씩 짝을 지어 밥을 먹으면서 회사 이야기도 듣고, 재미있는 인생 경험들과 거기서 얻은 삶의 교훈 같은 것도 들을 수 있었다. 행사가 아니었다면 먼저 다가가기 어려웠을 팀장님들과도 소소한 농담을 할 수 있었고 회사를 사랑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나에게 큰 동기부여가 되어 주었다. 


2. 마케터는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마케터는 회사의 모든 것을 알고 그 안에서 소비자가 혹 할 수 있는 포인트들을 잘 잡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자기 일을 하느라 바쁘고 스스로 터득하면서 성장해 나가야 하는 스타트업에서 이 행사를 통해 나는 자연스럽게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와 로봇이 움직이는 방법과 같은 '꼭 필요한 지식'을 배웠다. 고객들과 상담하는 사업개발 본부장님을 보면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 붙어서 몰래 엿들었고, 아직은 낯선 자율주행 서빙로봇의 주행 원리와 가능 여부에 대해 서비스 엔지니어 분들께 질문하는 것을 보면 사진을 찍는 척하며 듣고 바로 핸드폰에 기록을 했다. 이 경험들은 조금 더 수월하게 콘텐츠를 짜는 것을 도와주었다. 


3. 행사 전 - 중 -후 어떤 프로세스가 필요한지 배웠다. 

행사를 잘 끝내면 더 신경 쓸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후'가 가장 중요했고 가장 힘들었다. 행사에 가져갔던 수많은 물품들을 정리해야 했고, 수 천장의 사진과 영상들을 솎아내서 카테고리화 하는 작업도 필요했다. 또한, 돈을 쓰는 마케팅 팀이 나중에 욕을 먹지 않고, 또 다음 투자를 받을 수 있도록 KPI보고서를 꼼꼼하게 작성해야 했다. 이 리포트를 쓰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건 '도대체... 그 돈을 내고 대학에서 배운건 뭐지?'라는 거였다. 학교에서 배웠던 건 너무나 오래된 이론들과 이상적인 마케팅일 뿐 첫 사회에 발을 들여야 하는 신입에게 필요한 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은 조금 바뀌었으려나? 그중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한 것은 스케치 영상! 컷 편집만 할 수 있던 내가 '잘 만들었네!' 소리를 듣기 위해 200번이 넘는 수정을 하고 퇴근 후 새벽 2시까지 편집을 했다. 하. 인정받기 위해 참 열심히 발버둥 쳤던 것 같다. 


모든 것이 처음인 인턴에게 행사에 참여하는 건 정말 큰 부담이었다. 특히 한 번도 해 보지 않았지만 꽤 큰 역할인 사진 및 영상 촬영은 나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가져다주었다. 그래도 나는 결국 해냈고, 그토록 바라고 바랬던 칭찬을 받을 수 있었다.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 꽤나 좋았다. 


이로부터 거의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우린 또 다른 박람회를 준비 중이다. 이제는 더 이상 무섭지도 부담스럽지도 않다. 오히려 기대가 된다. 내가 이번엔 어떤 역할을 더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역할이 무엇이든 처음처럼 열심히 발버둥을 쳐봐야겠다. 다 그러면서 배우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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