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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다지 May 13. 2021

Ep.3 저는 집에 가기 싫습니다만.

첫 회사생활, 나는 회식의 즐거움을 알아버렸다.

전과, 교환학생, 봉사활동 그리고 코로나에 딱 걸려버린 워킹 홀리데이까지. 하고 싶은 걸 다 하느라 졸업도 취업도 늦어져버린 나와 달리 꽤 많은 친구들이 나보다 먼저 일을 시작했고, 그 친구들이 모두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이 있었다. 


"나는 일도 힘든데, 회식이 더 힘들어." 


회식이 잡혀 있는 날에는 친구들의 예민 지수가 극도록 높아졌고, 회식을 한 다음날에는 나는 안면도 모르는 OO과장, OO대리의 이야기를 밤새 들어야 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나도 그렇게 두려워하던 회식자리를 난생처음 갖게 되었다. 


코로나 시국이기에 밖에는 나가지 않고 회사 내에서 시간이 되는 사람들끼리 남아서 진행했었는데, 아니 이게 무슨! 한 달 치 웃을 양을 다 웃은 것 같았다. 일할 때는 그렇게 열정 가득의 워커홀릭이었던 분들이 회식 자리에서는 세상 힙하고 재밌었다. 그 어떤 사람도 술을 강요하지 않고 회사 옆 '와인 앤 모어'에서 다양한 술들을 사다 놓으면 알아서 냉장고에서 꺼내 마시는 식이었다. 이때 내 인생 맥주가 꽤 많이 생긴 것 같다. 음식을 고르는 것도 굉장히 민주적이었다. "오늘 회식할까요?"라고 누군가 메시지를 남기면 그 아래 각자 먹고 싶은 음식들을 열거했고 조금이라도 겹치는 메뉴가 있다면 아끼지 않고 시켜주셨다. 


특히나 내가 회식자리를 좋아하는 이유가 2개가 있는데, 하나는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를 들을 수 있다는 거다. 우리 회사는 학력이나 나이로 사람을 합격시키거나 탈락시키지 않는다. 오직 그 사람의 경험과 열정 그리고 능력이다. 그래서 나는 회사에서 나이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경험'은 인생 경험이다. 예를 들면 나는 혼자서 배낭여행을 하거나 워홀을 가서 푸드트럭에서 일을 하거나 오랫동안 멘토링 활동을 했던 것이 있겠다. 옆 자리 클라우드 팀 매니저님은 꽤 오랫동안 배우 생활을 하셨고, 또 다른 엔지니어분은 요리학교를 다니셨으며 인사팀 매니저님은 승무원을 하셨다고 한다.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면 세상에 정답은 없고,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도전해 보자는 용기를 얻게 된다. 


또 다른 이유는 '꼰대가 없다'는 거다. 나이 차이가 15살 20살 나는 분들과도 스스럼없이 연애 이야기를 하고 술 게임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다. 10년 차 팀장님께 '어? 잔이 비었는걸요?' 하고 놀릴 수 있고 대표님께 술을 사 오시라고 요청할 수도 있다. 거의 85%가 남자인 남초 회사에 개발자들이 많아 걱정을 했었는데 회식자리에는 '강요'도 '꼰대'도 '허세'도 없었다. 


외국계 스타트업이기에 한 사람이 해내야 하는 일도 엄청나게 많고, 인턴이라고 봐주는 거 하나 없는 아주 빡센 회사지만 나이와 경력에 상관없이 언제나 깍듯하게 서로를 대하고 각자 맡은 업무를 존중해 주는 것이 너무 좋다. 그러한 문화들이 회식자리에서도 나타나기에, 나는 이렇게 말할 수 밖에.


"너무 재밌는데, 제가 굳이 지금 집에 가야 하나요?"


다음 회식 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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