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객 노라의 고군분투 미국 교환학생 이야기 Ep_2
휴. 나름 요란했던 입학식이 끝났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오티 주간.
한국이었으면 입학식을 마치고 바로 가평이나 대성리로 오티 여행을 갔을 텐데 여기는 또 다른 전통이 있다.
신입생의 대부분이 아직 미성년자라 그런지 미국 대학교의 입학식과 행사들은 정말로 건전하기 그지없다.
(미국의 음주 가능 나이는 만 21세 이상 = 한국 나이로 23살이 되어야 세이프)
다음 날 아침 8시 반, 14시간의 시차를 이기지 못해 새벽 3시부터 일어나 있던 나는 친구들과 정신없이 국제처 앞에 모였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 벌어지려나. 영어를 잘 못하니까 안내를 해 줘도 못 알아듣는다. 에휴.
들어가니 이렇게 학교 티셔츠가 준비되어 있었고, 이 티를 입고 이제 밖으로 나가 자기가 소속된 그룹으로 가는 거란다. 이제 교환학생이라는 안전망을 뚫고 네이티브 신입생들과 어울려야 한다. 한 그룹당 30명 정도로 구성되어 있었고, 나는 유일한 아시안이자 교환학생. 각 그룹의 대표하는 선배들의 구호에 따라 다른 친구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그 안에서 이미 대학생활을 함께 보낼 단짝을 찾는 게임을 시작한 듯 보였다. 그리고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 설렘으로 도포된 그들의 표정을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 누가 봐도 교환학생처럼 보이는 나에게 그 누구도 먼저 말을 걸어주지 않았고, 난 그때 알 수 있었다. 내가 먼저 움직이기 전까지는 이 대학생활에서 나에게 그 누구도 다가오지 않을 거라는 걸.
나이아가라 대학교. 이름처럼 세계 제3대 폭포 중 하나인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자동차로 약 7분 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걸어서는 약 1시간 반 정도 소요되는데, 폭포에 가기 전에 바비큐 풀장으로 이용이 되는 커다란 공원이 있다. 거기까지 모든 신입생이 함께 이동하는 것이 이 학교의 전통이란다.
그리고 더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마라톤(?)을 하는 동안 학교 직원들이 모두 나와 중간중간에 먹을 거랑 학교 굿즈를 나눠주는 것 (립밤, 텀블러, 텀블러 홀더, 배찌, 명찰 등 신선한 것들이 많았다) 등록금이 엄청 비싸지만 내고 다닐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주권자들을 포함해 미국인들은 특히 그 주에 사는 아이들은 거의 80%까지 등록금 감면이 가능하다. 한 학기 1500만 원에서 300만 원까지 낮아지는 경우도 꽤 있다)
처음에는 '이런 전통도 있어? 되게 유치하네.'라고 생각했다면 시작하고서는 그런 마음이 단 1%도 들지 않았다. 이런 과정 속에서 학교를 사랑하게 되고, 또 친구도 사귈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물론 나는 이때까지 이탈리아에서 온 다른 교환학생들과만 말을 섞을 수 있었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을 했다. 가는 길은 그룹으로 이동을 했다면, 도착해서는 각 과별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팻말이 꽂아져 있었다. 신입생을 위해 준비된 뷔페에 가서 바비큐도 잔뜩 담아 한눈에 보아도 긴 학과 이름 'MEDIA AND COMMUNICATION'과를 찾아 신나게 달려갔다. 드디어 같은 과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건가? 전과에 휴학까지 한 터라 전공 학점이 턱 없이 부족했던 나는 이곳에서 전공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들어야 했고, 팀플이 필수적인 학과 특성상 학과 친구는 꼭 필요했다. 아니, 꼭 수업 말고도 1년간의 미국 생활을 견뎌내기 위해 친구는 필요했다.
신입생 20명 정도로 이루어진 자리. 2, 3학년 선배들도 수업이나 동아리 팁을 주기 위해서 와 있는 자리였다 (뭐, 선배라고 해도 나랑 동갑이거나 어리겠지만) 난 여기서 내 인생 최대의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모두 서먹서먹해하며 자기 앞에 놓인 접시에만 집중할 때 나는 입을 뗐다. 이 한 문단을 말하기 위해서 머릿속으로 얼마나 연습을 했는지 그 친구들은 모를 거다. 토종 한국인이 영어를 말할 때 하는 습관... 알지 않는가? 머릿속으로 문법을 확인하고 또 한 번 집중해서 문맥이 어색한 게 없는지 살폈다.
그리고 마침내,
"Hi, I am Norah from South Korea. not North Korea. And, I am an exchange student. I am so glad to meet you guys. " 초등학교 1학년 영어 교과서에나 나올 만한 문장들을 내 안의 모든 용기를 짜내 말을 했는데 반응은 싸늘했다. 미국인들이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북한?"이라고 놀린다고 해서 나름 유머도 섞어 봤는데 결과는 처참했다. 반은 '누가 무슨 말했어?'라는 표정, 나머지 반은 '얘는 뭐지?' 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 망했다.
그래, 이왕 망한 거 한 번만 더 해보자는 심정으로 왼쪽에 있는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Hey, I am Norah. What your name? Have you finished making your timetable?
I don't know what to take"
그의 답.
"I am Jeff. and Not yet."
말을 걸며 악수도 청했는데 날 보지도 않고 말해서 순간 너무 뻘쭘했다.
아, 얘는 안 되겠다. 하고 이번엔 오른쪽에 있는 애한테 말을 걸려고 했는데, 음... 얘는 먹기 바쁘다. 그리고 뭘 저리 많이 흘리는지... 칠칠치 못하게.
이 모습을 보고 계시던 한 교수님이 계셨다. 한국인 친구들에게 '나이아가라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우리의 멘털이 무너질 때마다 다시 들어 올려 주시던 분. 이때가 교수님과의 첫 만남이었다.
창피함에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한인마트에서 산 쌀 과자를 한 뭉터기 주시며
"잘하고 있어. 그렇게 시작하는 거야." 하고 어깨를 토닥여주셨고, 옆에 있던 같은 과 친구들에게는
"This is a Korean snack, you should try."라고 한국 과자를 홍보하고 쿨 하게 떠나셨다. 눈물이 찔끔 났다.
나중에 안 사실 두 개를 말하자면,
첫째, 교환학생은 교환학생 그룹이 따로 있어서 자신의 과를 찾아가지 않아도 됐었다는 거.
둘째, 옆에서 음식을 질질 흘리며 먹는 데만 집중한 내 오른편에 앉았던 친구는 내 (전) 남자 친구가 되었다는 거.
지금 생각해도 여전히 창피한 기억이지만, 저 경험이 있었기에 그 뒤로 어떤 순간이 와도 쉽게 무너지거나 절망하지 않고 '이것도 다 경험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너네 너무했어.
대답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