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객 노라의 고군분투 미국 교환학생 이야기 Ep_3
"벌써 이곳에 온 지 거의 삼 주가 지나간다. 처음 공항에 내렸을 땐 무서움도 있었지만 설렘이 더 컸는데 지금의 나는 무서움을 훨씬 더 많이 느끼고 있다. 착한 사람들도 물론 많았지만, 영어가 부족한 나에게 무관심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모든 것은 스스로 찾아내고 극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9.9일 나의 다이어리에서-
어느덧 14시간의 시차가 있는 미국에 온 지 두 달이 지났다. 나는 많이 힘들었다. 교환학생을 오기 전에 토플을 치러야 했었는데 그때도 스피킹은 이미 포기한 상태였고 (다른 과목으로 점수를 채우기 위해 하루에 3시간씩 잤던 기억이 난다) 오기 전에 회화 스터디도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나를 버리고 웃으면서 현지 친구들에게 들이대는 것뿐이었다. 이때 성격이 많이 바꼈던 것 같다. 아니면 원래 나로 돌아왔거나.
다행히, 교환학생 오티 때 알게 된 한 중국인 버디가 자신의 홈 파티에 초대를 해 주었고, 그렇게 술과 함께 사람들과 친해지며 서서히 적응을 하기 시작했다. 술은 정말 친구를 사귀기에 최고의 도구인 것 같다. 물론 많이 먹으면 해가 되지만 (이 부분은 다음 에피소드에서...)
9월의 나이아가라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따뜻했다. 나는 그때까지 알지 못했다. 이것이 내가 이 지역에서 1년 간 있으면서 누릴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따뜻함이라는 것을... 그런 줄도 모르고, 여름옷을 얼마나 많이 들고 왔는지. 두꺼운 롱 패딩, 따땃한 레깅스, 긴 팔 몇 개와 털 부츠면 된다. 캐리어 두 개까지도 필요 없다.
(참고로, 이 지역은 캐나다와 인접해 있어 11월 초부터 4월 말까지 눈이 쏟아져 내린다)
무튼, 난 이 학교에서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기 위해 기숙사에 붙어 있기보다는 항상 밖에서 있었다. 학교는 행사가 잦았다. 일주일에 최소 1번씩은 교내 이벤트가 있었고, 한 학기에 3번은 이렇게 놀이기구를 학교에서 탈 수 있는 행사가 있었다. 코미디쇼나 방 탈출 게임도 무료로 할 수 있었다. 이런 이벤트는 "나랑 같이 방탈출 게임하러 갈래?"라고 물으며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했다. 그래서 한국 학교에서도 한 번도 가입하지 않았던 동아리를 세 개나 신청했다. 고등학교 때의 관심을 살려 1) 배구팀, 재밌을 것 같아서 2) 볼링팀, 그리고 오티 기간 마라톤을 하며 알게 된 헤일리가 추천한 3) 뜨개질 클럽에 가입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셋 다 실패했다.
우선, 배구팀은 지원만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미국 대학교에서 스포츠 팀은 초, 중,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선수 생활을 했던 친구들이 대학교까지 와서 학교를 대표하는 것이란다. 한국처럼 소위 '친목도모'와 '체력 단련'을 하는 그런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체육관에서 first meet up이 있다고 해서 들어갔는데, meet up = try out = audition이었다. 약 5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4명씩 나와 공을 주고받아야 했다. 배구팀 팀장과 부팀장은 이런 곳에 제 발로 들어온 165cm의 동양인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중간 이상은 가는 키라고 생각했는데, 미국에서는 그리고 이 배구팀에서는 '난쟁이 똥자루'에 불과했다.
이미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이상, 그냥 나갈 수는 없다고 생각해 온 몸에 신경을 집중해서 공을 받아쳤고, 그게 내 처음이자 마지막 패스가 되었다. 사실 이것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180cm는 족히 넘어 보이는 네트 건너편의 친구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내 이마를 정확히 명중시켰고, 그대로 난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난 민망함에 눈물을 흘리며 재빠르게 체육관을 빠져나왔다. 네트가 가장 높아 보였던 날이었고, 내 키가 가장 작아 보였던 날이었다.
두 번째, 볼링팀. 여기는 다행히 선수를 뽑는 게 아니라, 즐기는 분위기의 동아리였는데 문제는 옆 사람과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난 정말 친구를 만들기 위해 온 건데, 20명의 친구들은 자신의 볼링공과만 대화를 하는 듯 보였다.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는데,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고, 볼링팀의 대표도 팀원들의 협동보다는 어떻게 하면 자신의 점수를 더 높일 수 있는지만 관심이 있어 보여 일주일만에 그만두었다.
세 번째, 뜨개질 클럽. 이 클럽은 분위기도 사람들도 너무 좋았다. 문제는 내가 내 뜨개질 실력이 안 좋았다는 거다. 한 학기 간 목도리 혹은 모자를 떠서 기부를 하는 동아리였는데, 마지막 날에 얼마나 회장에게 미안하던지. 남들은 3개 4개의 목도리를 뜨는 동안, 내가 만든 건 1개의 헤어 밴드? 크기도 아마 신생아부터 2살 아이에게만 맞을 사이즈였다. 게을러서도 있었지만, 손재주가 크게 한몫을 했다. 바늘에 실도 못 끼우고, 한 코도 제대로 완성하지 못하는 나... 예전에 무슨 배짱으로 패션 산업학과로 전과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그때 적극적으로 말려주신 교수님께 다시 한번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오티에서의 망신에 동아리 선택에서의 개망신에 참 실패가 많았던 첫 달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시간표를 최종적으로 완성한 달이었기도 했다. 부족한 영어 실력 때문에 기존에 선택한 5개에서 4개로 수정했고, 최대한 나를 시험해 보기로 결정, 전공 2개와, 필수인 ESL 수업, 그리고 평소에 너무나도 듣고 싶었던 INTRO TO MUSEUM 수업을 최종 선택. 관심 있는 수업은 오티를 모두 가보고 선택한 만족스러운 최종 결과였다.
4개 = 12학점이면 쉽겝구나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영어가 부족한 나에게 이 첫 학기는 정말 대학생활 중 가장 힘든 한 학기였다. 처음으로 거의 매일 학교 도서관에서 새벽 3시까지 공부했으니까. 쓸데없는 한국인 존심인지, 이렇게 해서라도 무시당하고 싶지 않았고, 미국인 친구들 사이에서 살아남고 싶었던 것 같다.
" 수업 시작 2주가 지난 지금, 나는 매우 버겁다. 한국과 달리 일주일에 2-3번으로 쪼개져 있는 수업들은 매번 수많은 자료와 과제가 함께하며 영어가 부족한 나는 단어를 찾고 문장을 해석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더 과제를 수행하기 버겁다. 그래서 돌아오는 주에는 Academic support center에 찾아가 공부 법을 조언받고, 튜더를 찾아가 봐야겠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느낀 것은, 영어와 친해지기 위해서 죽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점과, 자기 자신에게 당당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최선을 다해 적극적으로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학교 생활이 수월해진다는 것이다. 교수님에게도, 친구들에게도. "
-9월 10일의 일기 中-
자기중심적, 적극적과는 거리가 먼 가장 보편적인 한국 학생의 특성을 다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수업에 적응하기가 참 어려웠다. 교수님은 가이드, 수업을 만들어 가는 주체는 학생들로 소수정예를 지향하고 있는 이곳 학교에서 거의 몇 주는 '벙어리'로 지냈던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는 이유가 있나 보다. 수업시간에 하나라도 더 말을 하기 위해 미리 예습을 힘들게 하고 교수님께서 물어보실 만한 것들을 다 적어서 수업에 가니 훨씬 수업이 재밌게 느껴졌다. 교수님들도 그 마음을 아셨던지 수업 이후에도 이것저것 물어봐 주시며 최대한 도움을 주시려 하셨다. 어쩌면 내가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수업을 따라가기가 조금 벅차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따라가 보려고 애쓰는 중이다. 이곳에 와서 내가 나중에 무엇을 할지에 관해 정말 많이 생각하게 된다. 이곳은 자신이 최선만 다하면, 능력만 있다면 수많은 가회가 주어지는 나라인 것 같다. 자유가 주어진 만큼 스스로 많은 것들을 책임져야 하지만, 정말 학생 개개인의 개성을 최대한 살려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가 정말 잘 되어있다.
나는 하루하루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갈수록 과제도 많아지고, 알아야 할 것들이 넘쳐흐른다. 하루하루 이렇게 기록하면서,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또 새로움과 직면했을 때 두려워하지 않으며 또 그것을 기록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요즘 나는 실패를 기록한다. 10개가 쌓이면 그 과정에서 많이 성장한 나를 기대하며. 오늘도 실패를 만들기 위해 도전한다. 개망신 좀 당하면 뭐 어때." -9월 14일의 일기 中-
8월에서 9월, 참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조금은 성장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던 첫 달이었다.
참 빠르고도 느렸던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