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 상담의 부작용

나는 2% 부족한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다.

by 보통의 다지

얼마 전 친한 친구에게서 꽤나 다급하게 연락이 왔다. 사주나 타로 풀이를 즐기던 친구인데 자기가 두 달 전부터 예약을 걸어 놓은 사주를 대신 봐 달라는 내용이었다. 회사 촬영 일정이 있어서 자기가 가지 못한다며 굉장히 아쉬워하면서. 사주 타로를 100% 맹신하진 않지만, 그래도 사주는 과학이고 철학이라고 생각하는 면도 있기 때문에 궁금함을 가지고 집을 나섰다.


그녀의 예상대로, 그리고 높은 이곳의 평점대로 신기한 점이 많았다. 내가 여대를 다닌 것도, 연애를 할 때의 나의 성향도, 그리고 내 동생들의 상황까지 정확하게 맞췄으니까. 그래서 그가 한 다른 이야기에 더 마음이 무거웠다. 그것조차 맞으면 어떡하나라는 걱정 때문에.


그는 말했다.

"OO 씨는 정말 욕심이 많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항상 2% 부족하죠. 노력하는 것만큼 결과가 따라주지 않아요. 하지만 올해 안에 취업은 될 거예요. 일복도 터졌고. 1순위로 원하는 곳은 못 가겠지만 2순위로 쓴 곳은 붙을 거예요.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인생에 연애운이 없어요. 근데 결혼은 하고 아이도 낳을 거예요. 본인은 본인 커리어 때문에 절대 원치 않겠지만. 본인이 좋아하는 사람은 이미 여자 친구가 있거나 그냥 친구로 생각하거나, 본인을 좋아하는 사람은 성에 안 차죠. 연애를 하지 못한다면 그 잘못은 OO 씨에게 있어요."


블로그 리뷰에 따르면 사람들은 그의 이런 솔직함을 좋아하고 이런 부분 때문에 그를 더욱 신뢰했다. 하지만 예외는 있는 법. 나는 폐 사이사이에 자갈이 낀 듯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었다.


얼마 전 가장 가고 싶던 기업에 일주일간 폐인이 된 채로 자소서를 쓰고 지원을 했다가 서류 탈락 후 좌절을 맛보고 있던 터였다. 또 3명과의 데이트 끝에 내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을 발견한 상태였다. 이미 정해진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면 내가 하는 이 모든 노력들과 선택들이 어쩌면 소용이 없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터벅터벅 지하철을 타고 집에 와 연필을 들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간절히 바라고 노력했지만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왼편에 적고, 해 내었던 것들을 오른편에 적었다. 왼편에는 그의 말대로 죽어라 노력했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없었고 졸업하고 갔던 워홀에서도 타이밍이 좋지 않았으며 6년간 마음에 담았던 사람과 이루어질 수 없던 것이 기록되었고, 인턴으로 8개월간 일하던 곳에서도 원치 않게 계약이 만료된 이야기도 적혀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왼쪽에 비해 훨씬 더 많은 것들이 오른쪽에 적혀 있었다. 6순위로 선택한 대학교에서 전과를 하면서까지 결국 원하는 공부를 했고, 필리핀 봉사활동을 시작으로 해외 생활에 무서움을 느끼지 않게 되었으며 교환학생에는 아주 오랫동안 나의 발목을 잡고 있던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나의 강점으로 만들었던 것. 또한, 남들처럼 자주 연애는 못해도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불도저가 되어 직진을 했고 5년 전 내 마음에 쏙 들던 그 친구과 따뜻한 연애를 한 것도.


그의 말이 맞다. 100% 노력해도 결과는 그 노력을 100% 반영하지 못하고 세상은 불공평하고 억울하다는 느꼈던 때가 많다. 하지만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 당장 그 노력들이 결과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해도 언젠가는 선물처럼 혹은 기적처럼 나에게 올 때가 있다는 것을 경험해 봤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에게서 오늘 들은 이야기들을 토대로 내 운명과 부딪혀보기로 했다.

운 좋게 남편을 따라 외국에 가서 사는 것이 아닌 내 능력으로 인정받아서 외국에서 다른 기회를 잡을 거고 더 공부를 할 거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잘 이루어지지 않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결혼은 여전히 선택사항으로 둘 것이다.


공부 이외에 딴 것에 정신 팔려 좋은 학교에 진학하지 못한다는 12살 터울의 막둥이를 채찍질하는 것이 아닌, 누구나 똑같은 공부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며 본인이 살고 싶은 삶을 살도록 온 힘을 다해 지지해 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내가 마음이 가는 사람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다. 그리고 동생을 더 많은 학원을 보내려는 엄마를 설득한다.


2% 부족한 사람이 어떻게 운명을 바꾸는지 나 조차도 궁금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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