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만난 변태 앞에서 순간 얼어버렸다.
넷플릭스 시리즈 'Sex Education', 한국 제목으로는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시즌 3가 이번 주 개봉했다. 이 드라마는 영국의 10대 청소년들이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는 성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들을 매 에피소드를 통해 재미있게 풀어놓고 있다. 사실 처음 이 시리즈를 접했을 때는 신선한 충격에 빠져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1회부터 가리지 않고 그대로 나오는 섹스 장면들과 디테일한 성적 고민들, 한국에서는 아직은 쉽게 용인되지 않은 다양한 성적 지향성까지 등장했기 때문이다. '10대들이 저래도 되나? 나는 공부만 했었는데'라는 겨우 27살의 라떼는 마인드가 나오면서 한편으로는 성적인 호기심과 고민들을 강제로 봉인해가면서 지금까지 지내왔다는 것에 슬픔이 밀려왔다.
또, 이런 고민을 자연스럽게 털어놓을 수 있는 '진 밀번'과 같은 상담사가 있다는 것과 남녀의 다른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성교육 시간이 있다는 것에 부러움을 느꼈다. 초・중・고를 지나면서 빠르게 달라지는 내 몸에 당황한 우리에게 학교에서 제공하는 교육은 단 두 개뿐이었으니까.
1. 정혈은 (당시 생리라고 표현했다) 나쁜 것이 아니고, 임신을 할 준비가 되었다는 현상이다.
2. 다 쓴 생리대를 돌돌돌 말아 깔끔하게 휴지통에 넣는다.
지방자치단체마다 그리고 학교마다의 차이는 조금씩 있지만, 동생들을 보니 여전히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이렇게 성교육을 한 번도 받지 못한 채 20대가 된 나는 남자 친구를 만날 때마다 문제에 봉착했고, 수많은 가스 라이팅을 당하면서도 그걸 문제라고 인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어젯밤, 남산타워를 갔다가 막차를 타고 집에 오고 있는 길이었다.
막차인 만큼 그 칸에는 나와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아저씨밖에 없었다. 열심히 친구와 카톡을 주고받고 있는데 갑자기 아저씨가 나를 부르더니 운동화 끈이 풀렸다고 알려주었다. '참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네' 하면서도 감사하다는 말은 빼먹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목적은 다른 곳에 있음을 금방 깨달았다. 운동화를 묶으면서 보이는 나의 속살.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는 그는 빠르게 나의 몸을 훑으면서 자위를 하고 있었다. 순간 토가 나올 것 같은 걸 간신히 참고 정차하기 위해 문 앞으로 다가갔을 때 그는 내 팔을 잡으면서 말했다.
"학생, 여기서 내려? 흥분되는데 나랑 같이 갈래? 내가 돈 많이 줄게."
순간 가지고 있는 핸드폰으로 그의 얼굴을 사정없이 내리칠까 고민하다 시원하게 욕을 뱉는 것으로 대신하고 빠르게 집까지 뛰어갔다.
내가 보낸 메시지에 놀라서 전화를 한 친구에게 내가 내뱉는 말에 비로소 안심했다. "나 정말 기분 더러웠어. 그 사람은 뇌에 무슨 문제가 있어서 이딴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예전의 나였으면 나는 이렇게 말했을 거다. "나 정말 기분 더러웠어. 괜히 시스루 옷을 입었나 봐. 좀 조신하게 입고 다녀야 하나 봐."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시즌 2에서 에임스는 버스에서 자위를 하다가 정액을 자신의 바지에 묻힌 남자 때문에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모든 것이 자신의 그 '웃음' 때문이라고 자책하면서.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그리고 자발적인 상담과 함께 자신의 문제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깨달으면서 트라우마를 극복한다.
그리고 이 에피소드 덕분에 한 번도 제대로 성교육을 받지 않은 나도 처음 겪는 상황에서 금방 침착해질 수 있었다. 여전히 영상을 찍어서 신고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말이다.
아직도 한국에서는 부모님들과 함께 볼 수 없는 청춘 드라마 중 하나로 꼽히는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자극적이라고 생각하는 섹스 장면 뒤로 수많은 고민들을 안고 살아가는 개개인의 성장 과정에 조금 더 집중한다면 아마 그 금기를 깰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 고민들은 영국의 10대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니까.
그리고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우리나라에서도 현실성 있는 '진짜' 성교육을 아이들에게 제공해 주길 바란다. 12살 차이 나는 내 동생이 아무것도 모른 채 20대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