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이 가진 힘

출발선이 다르다면 능력 중심의 사회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

by 보통의 다지

기숙사 내 방에서 캐나다와의 국경선이 훤히 보이는 곳에서 교환학생 시절을 보낸 나에게 한식이 생각나면 가장 먼저 친구들과 얘기하던 것은 "우리 토론토 가서 감자탕 먹을까?"였다. 학교에서 우버를 타고 약 8천 원이면 갈 수 있는 국경선, 거기서 30분을 걸어 버스를 타면 1시간 50분 정도면 캐나다의 대도시이자, 많은 아시아인들이 터를 잡고 살아가는 토론토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박물관학 과제로 온타리오 박물관을 방문해야 했을 때도 너무 쉬웠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한국 여권을 가지고 있던 덕분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미국에서 가장 먼저 친해진 친구이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나의 단짝은 베트남인이었다. 그녀의 많은 친척들은 미국 또는 캐나다에 정착해서 살고 있었지만, 어쨌든 베트남 국적을 가진 그녀는 1년 후 내가 한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캐나다 여행 비자를 받지 못했다. 무려 16만 원이라는 비자 발급 비용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항상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 주입식 교육을 받고, 내 의견조차 제대로 피력하지 못하는 삶을 사는 것이 화가 나 언젠가 돈을 모으면 다른 나라로 떠나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었었는데 처음으로 내 국적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 어쩐지 슬프면서도 찝찝했다.



그리고 2020년 초 팬데믹이 시작되었고, 현재진행형이다. 아, 더 심해지고 있는 것만 빼고. 이런 상황에서 국적은 부익부 빈익빈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처음에는 많은 나라가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국경을 봉쇄했었고,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한계에 다다르자 빗장을 조금씩 풀기 시작했는데 그 기준을 보면 철저하게 G20위주로 돌아가는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6년 전 봉사활동을 갔을 때 만났던 나의 필리핀 친구들은 자국에서 고립되고 말았다. 좋지 않은 가정환경 속에서 오직 자신만의 능력으로 필리핀 내 최고의 대학을 1등으로 졸업하고, 당연한 수순으로 좋은 회사에서 3년 이상의 경력을 쌓은 친구들이었다. 나의 두 번째 고향으로 생각할 정도로 아끼는 필리핀의 문화중 가장 이해 안 가는 것이 있다면, 아들이든 딸이든 첫째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가정의 모든 비용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동생들의 학비까지. 낮에 일하는 job, 그리고 미국과 유럽인들을 담당하는 콜센터에서 밤늦게부터 아침 7시까지 일을 하면서 친구들은 3년 동안 단 300만 원도 모으지 못했다. 최고의 대학을 졸업하고 투잡을 하면서도 받는 돈은 한 달에 겨우 50만 원. 이 돈으로 그들은 가족들을 부양해야 했고, 자신을 위해 쓸 돈은 남겨둘 수 없었다.


4개 국어를 하고, 좋은 학력과 경력을 가진 그들의 꿈은 자신들의 능력을 온전히 인정받는 것. 하지만, 이런 내 친구들을 지지하고 도와줘야 할 정부는 아니 그들의 나라는 방해물만 되고 있다.


외국인들을 위한 장학금 제도가 나름 괜찮은 이곳에서 공부를 하면서 같이 살자고 말할까 수백 번도 넘게 생각했지만, 서울에서 지내는 것이 얼마나 팍팍한지 알기에, 게다가 성소수자인 친구가 어떤 시선을 받을지 어느 정도 예상이 가기 때문에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펜데믹 이후, 더 극명하게 차이나는 국적이 가진 힘, 그리고 그로 인한 제한된 기회들.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또 말한다고 해서 지금 당장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냥 똑똑하고 멋진 나의 친구들이 더 이상 돈 때문에, 그리고 자신의 국적 때문에 다른 곳에서 차별받고 기회를 제한받는 것이 그리고 꿈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는 것이 속상해서 이 글을 쓴다.


물론 아직 취뽀를 하지 못하고 무급으로 인턴을 하고 있는 내 상황도 좋지 않지만 말이다.

언젠가 한 곳에서 우리 모두 행복하게 사는 날이 오기를.


그리고 친구들 말고도, 한국에서 지내는 모든 외국인들이 국적 때문에 차별받는 날이 오질 않기를

바라고 또 바라본다.


* 푸념이 담긴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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