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째 똑같은 고민을 하는 나에게

2022년에는 계획 대신 나를 위한 멋진 기획을 하기로.

by 보통의 다지

스무 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나 8년째 여전히 가장 친한 친구들과 반년만에 홍대입구에서 만나 밥을 먹었다. 전과, 교환학생, 워킹 홀리데이 그리고 취업까지 서로 다른 삶의 선택으로 인해 기껏해야 일 년에 최대 세네 번 만나는 게 다지만 언제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친구들. 오랜만에 만나니 더욱더 반가웠다.


살을 찢는 듯한 추위에 근처 가장 따뜻한 카페를 찾아 몸을 녹이며 지난 일 년을 회고하기로 했다. 일 년 회고가 20살 이후 삶의 회고가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우리의 공통된 주제는 '나이' 그리고 거기서 오는 불안감이었다. 남들보다 늦은 것은 아닐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을 포기하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 스무 살 때는 27살의 끝자락에는 참 많은 것을 이루어 놓을 줄 알았고, 진로 고민은 진작에 끝내고 내가 원하는 분야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있을 줄 알았는데 우리의 자리는 여전히 불안정하고 우리의 마음은 불안하다.


Y는 2년의 노력 끝에 누구나 알아주는 최고의 공기업에 들어갔으나, 방송 PD라는 꿈을 마음에 품고 한 달에 적어도 한 번은 면접을 보러 다닌다. H는 함께 워홀을 다녀온 후 반년 간 법무사 준비를 하다 지금은 변호사 사무실에서 행정업무를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국비지원 그로스 마케팅 프로그램을 듣고 내일 수료식을 앞두고 있다. 여전히 마케터가 내 길인지 여전히 갈등하면서.


우리는 스무 살 이후 끊임없이 무언가에 도전하고 실패도 해보고 성공에 웃어도 보았다. 하지만, 8년째 우리는 남들과 비교하면서 사회가 맞춰놓은 보이지 않는 틀에 억지로 우리를 끼워 맞추면서 불안해했다. 특히, 나는 친구들 중 가장 심한 쪽에 속했다. 항상 완벽해지려고 애쓰는 ENFJ의 성격도 있겠지만, 항상 반에서 '착하고 말 잘 듣는 아이'로 길러지다 대학교에 와서 처음으로 스스로 선택을 하게 되면서 나의 선택을 항상 의심하고 내가 하는 모든 행동들에 최고의 기준을 부여했다. 그리고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다면 날카롭게 스스로를 깎아내렸다. 올해는 누적된 그 행동들의 결과물로 많이 아팠고, 많이 울었다.


8개월간 지속된 항우울제, 항불안제와의 동거 그리고 몇 번의 수면제. 올해 7월, 8개월간 마케팅 인턴으로 일하던 회사에서 나온 뒤에도 매일 끊임없이 무언가를 했고, 또 스스로 한번 더 성장하기 위해 3개월짜리 마케팅 프로그램도 신청해서 수료를 앞두고 있으나 나는 늘 나의 부족한 면만 보인다. 전날 밤을 새우면서 PPT를 만들고 주말 오후 휴식을 취하기 위해 카페에 가서도 다른 사람들이 무언가를 준비하고 만드는 것을 보면 불안해 미치겠고, 개발의 개자도 모르면서 미래를 위해 (돈을 위해) 0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나라는 고민도 하고 있다.


2021년의 마지막 날인 오늘, 나름 일찍 일어나 대청소를 하면서 책꽂이 한편에 쌓아둔 20대의 기억이 온전히 담긴 일기장들을 찾아냈다. 먼지가 가득 쌓인 일기장들의 내용 대부분은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1살, 24살 그리고 26살.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어리고 뭐든 할 수 있는 나이에 나는 쓸데없는 고민을 하면서 남들과 비교하면서 꽤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들은 이루지 못할, 그리고 내가 아닌 남들의 시선을 의식한 무모한 새해 계획 때문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올해는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대신, 나를 위한 다양한 기획을 해서 후회 없는 한 해를 보내고 싶다. 더 많은 스펙을 쌓기 위해 만들었던 나의 새해 계획들은 나에게 불안과 긴장 그리고 스트레스만을 가져다주었다. 물론, 짧은 시간 내에 27년간 스며든 습관을 쉽게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더 이상 내 마음 아프지 않기 위해 그리고 정말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새해가 더 이상 '한 살 더 먹어서 기회가 더 줄어들겠네.'라며 고민하는 날이 아닌, 조금은 설렘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2022년, 나의 첫 번째 기획.

항상 새로운 환경에 목말라했던 나를 위해 남자 친구의 집인 '스페인'에서 시작을 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 기획의 결과물을 나만의 방식으로 남겨보기로.


이 글을 읽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당신께도 물어보고 싶다. 당신을 위한 2022년의 첫 기획은 무엇인지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그게 무엇이든 '왜 그걸 하고 싶어?'라고 했을 때 대답만 할 수 있다면 근사한 기획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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