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엄마가 아니면 좋겠어

그러면 훨씬 더 행복했을 텐데, 그렇지?

by 보통의 다지

20살 때 대학에서 처음으로 정밀 심리 테스트라는 걸 했었다. 거기에는 선천적인 내 모습과 현재의 나의 모습을 비교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나의 장점 및 약점 그리고 추천 진로까지 볼 수가 있었다. 공강 시간에 정말 심심해서 신청한 프로그램이었는데 상담 선생님은 결과지를 가지고 정말 신기한 말을 해 주셨다.


"선천적인 기질과 현재의 모습이 이렇게 다른 사람을 처음 봐요. 혹시 대학에 오면서 혼자 살기 시작했나요? 적어도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난 것 같아 보여요. 그리고 그게 다지님에게 큰 영향을 줬어요. 좋은 영향이요."


대학에 온 지 겨우 2개월이 되었지만, 나 역시도 느끼고 있었다. 뭔가 확실히 달라졌다는 걸. 추상적인 목표 없이 하루 종일 공부만 해야 했던 것에서 벗어난 것도 있지만, 그보다도 가족들과 떨어져 새로 만난 친구들과 기숙사에서 함께 살게 되면서 몸도 마음도 한층 편안해지고 있었다. 예전보다 말 수가 늘었고, 짜증이 줄었으며 기분 나쁜 일에도 너그러워졌다. 일주일마다 아팠던 몸은 숙취가 아니고서야 잘 아프지 않았고, 내가 생각보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꽤나 진취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나 자신이 조금은 멋있게 느껴졌고, 자신감이 생겼다.


그 이유를 상담사님은 이렇게 설명했다. "집에서 부모님이 혹은 부모님 중 한 분이 다지님 본래의 자유로움을 누르고 있었던 것 같아요. 항상 눈치를 보고 내 의견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그게 아마 습관이 되어버렸을 거예요. 집을 떠나오면서 자연스럽게 해결이 된 거고요."


부인할 수 없었다. 모두 사실이었으니까.

올해 어느새 57살이 된 엄마는 아직도 아빠와 할머니 눈치를 보면서 산다. 지난주, 신혼여행 이후로 처음으로 동생이랑 둘이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엄마는 우리에게 "이건 절대 비밀이야." 라며 이해하지 못할 부탁을 했다. 할머니가 알면 큰일이 난다는 것이었다. 여자가 집안일을 안 하고 놀러 간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나 뭐라나. 그리고 그런 할머니 때문에 아빠는 엄마를 비롯해 우리 가족과 거의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이 없다. 결혼한 지 30년이 되었음에도 짧은 여행에도 이렇게 눈치를 보는 엄마. 이럴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고, 결혼은 나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확신으로 변했다.


엄마는 사실 자유로운 집안에서 길러진 말괄량이 소녀였고, 80년대 후반 당시 "여자가 무슨 독일어야, 예쁘게 보이는 일본어나 프랑스어면 모를까."라는 지금 같으면 신고감이었던 그런 말들을 들으면서도 독일어문학을 전공한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해 수석으로 대학을 졸업했고. 그러다 아빠를 만났다고 했다. 엄마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주고, 시골 출신 남자답지 않게 개방적인 모습에 결혼을 결심했다는 엄마. 그런 아빠의 모습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사진 속에만 조금 남겨있을 뿐이다.


5남매 중 셋째인 아빠. 내가 중학교 2학년쯤이었나 할머니가 살던 곳이 재개발이 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현재는 부평구청 쪽이었던 할머니의 옛 집. 큰 아빠와 고모들이 모두 서울과 인천에 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우리 집이 있는 청주로 내려오셨다. 그때부터 엄마는 아빠를 철저히 할머니에게 빼앗겼다. 아빠뿐 아니라 엄마의 자유도.


할머니와 큰 고모의 등쌀을 못 이겨 졸업 후 독일어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던 엄마는 결혼을 하고 얼마 있지 않아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집안일에 매진하고 애 셋을 낳느라 지금은 독일어를 배웠나 싶을 정도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엄마가 집안에만 있으면서 우울해하는 것이 싫어 같이 공부해 보자고 권유를 했고 엄마의 엄청난 뇌는 다시 가동되기 시작했다. 독일어는 아직 다시 시작을 못 했지만 한자급수 특급을 몇 달만에 쉽게 따 냈고, 현재는 보육교사로 유치원에서 일을 하면서 나름 자신의 삶을 지키고 있는 것 같다.


그 웃음 많고 발랄했던 엄마가 눈치를 보고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똑같이 일을 하면서도 집안일의 99%는 엄마가 하는 걸 보게 되면서, 나는 엄마가 엄마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엄마를 너무나도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우리의 엄마가 아닌 당신의 이름 그대로 살아달라고.

그리고 더 이상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엄마의 소중한 1분 1초를 낭비하지 말라고도.


인생은 길고, 아직 엄마에게는 시간이 있다. 그 시간만큼은 우리의 엄마가 아닌 누군가의 며느리나 아내가 아닌 똑똑하고, 밝고, 도전정신이 있는 그런 김현숙 세 글자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내가 옆에서 있는 힘껏 지켜줄 테니까.



keyword